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4 부 예수님과 함께 지성소에서 (죄의 존재로부터의 자유) 15. 영광의 그룹들 (내가 겪는 모든 도전은 그리스도의 것임)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쉐키나의 광채가 그룹들의 얼굴에서 발하고, 그룹들의 인격에 반사되도록 고안하셨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들의 날개를 통하여, 용모와 손발을 통하여 흘러나와 세상의 흑암 속을 비출 때에, 전 세계 사람들의 뇌리에는 이 상징적 피조물를 통하여 참으로 영광의 그룹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각인될 것이다. (197.6)
 그룹들은 또 최내부(最內部)휘장과 장막의 천장으로 쓰인 휘장에도 그려져 있었고, 정금 벽에도 그려져 있었다. 모세는 “공교히 수놓”다(샤쟈르<shazar>, 출 26:31)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 표현은 무늬를 짜 넣은 비단을 뜻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이것은 비단을 만드는 방법을 뜻한다. 이 과정은 휘장 자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 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방법은 후에 휘장 위에다 수를 덧붙여 놓는 것과는 다르다. 이 휘장이 예수의 육신을 예표 하기에(히 10:20)이 상징 언어는 그룹들이 예수의 “몸의 지체”로서(엡 5:30) 예수의 생애와 사업에 참여하였다는 것과, 실제로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벧후 1:4)였음을 선언한다. 예수께서 천사의 본성을 취하시지 않았기에(히 2:16) 그룹들이 궁극적으로 천사가 아니라는 것이 후에 밝혀질 것이다. (198.1)
 솔로몬의 거대한 두 목재 그룹들
 시내 산에서 장막을 세운지 450년 후에 여호와께서는 다재 다능한 다윗왕이 영감에 따라 수립한 청사진에 의해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도록 승인하셨다(대상 28:11, 12, 19). 솔로몬왕은 감람나무로 18피트(약 5.5 미터)나 되는 거대한 두 그룹들을 만들어서(규빗의 길이에 관하여는 부조와 선지자, 347을 보라), 그 위에 금을 입혔다(왕상 6:23~30; 대하 3:10~13). 그룹들의 날개는 덮개가 되었고(왕상 8:1~11; 대하 5:2~10), 그 덮개 “안에 제사장들이 경외하는 마음으로 거룩한 궤를 가져와 궤가 놓일 자리인, 바닥 위에 서 있는 두 장중한 그룹들의 날개 아래 놓았다”(RH, 1905. 11. 9.). (198.2)
 하지만 이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룹들에게 날개와 얼굴이 있었다는 것(출 25:20)과 큰 높이였다는 것 이외에는 그룹들의 모양에 관하여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구원의 확장되어가는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다른 두 그룹들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그래서 그룹들은 합하여 넷이다. 이 다른 부류의 그룹들 사이의 차이점을 알아야만 한다. 시내산 성막을 위하여 만들어진 두 그룹들은 정금으로 전부 다 만들어졌다. 모리아 산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다른 두 그룹들은 감람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서 그 위에 금을 입혔다. 앞의 두 그룹들은 속죄소 위에 세워져, 속죄소의 필수불 가결한 일 부분이었으나, 후의 두 그룹들은 바닥에 세워졌다. 두 부류의 그룹들의 날개들로 형성된 이중 덮개는 이런 방법을 통하여 은혜와 영광의 보좌를 모시고 있었다. (198.3)
 솔로몬 성전을 지은 후 350년 후에 세상은 혼란 속에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있었고, 성전은 약탈당하여 파괴되어 버려져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아직도 만물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백성들이 믿도록 하기 위하여 에스겔에게 그룹들이 받들고 있고, 운반하는 자신의 영광의 보좌에 관한 이상을 보여주셨다(겔 1:4~28; 10:1~22). (198.4)
 에스겔 선지자는 자신이 “여호와의 영광”에 관한 이상을 보았음을 깨달았다(겔 1:28). 이것들은 근본적으로 에덴의 그룹들 형상의 복사본이었는데, 덧붙여진 것들도 있었다. (198.5)
 루스벨이 “화광석(火光石)”에서 나왔듯이(겔 28:14), 여기서는 “생물”이라고 칭하여진 그룹들은 “불 가운데”에서 나왔다(겔 1:4, 5에서 3번 쓰인 문구). 이 그룹들은 불이 번쩍 번쩍하여 그 빛이 사면에 비취는 단 쇠검(스스로 불붙는 검)을 비추면서 나타났다(겔 1:4). 이 검은 “숯불”“횃불” 모양 같은데 꼭 번갯 불과 같았다(겔 1:13). 그룹들은 영에 의하여 움직였고(겔 1:20),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은 목소리를 가진 하나님의 대변자이었다(겔 1:24, 25). (199.1)
 네 생물
 선지자는 이 그룹들이 “생물”(겔 1:5, 20, ‘생’이라는 형용사는 인간 창조 이야기에 나오는 ‘생령’이란 표현에서도 사용되었다)로서, 그리스도의 삶 자체로 충만하여 있다고 묘사한다(요 1:4; 롬 6:11). 요한은 비슷한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보좌에 배치된 동일한 생물에 관하여 말한다(조에<zoe>, 생물, 계 4:6). 두 선지자가 사용한 히브리어와 희랍어 용어는 동물들과 새들이 누린 단순한 생물학적 생명 이상을 뜻한다. 이 단어들은 하나님의 소유인 생명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께는 생명이 있었고, 그러기에 인간들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것보다 “더 풍성한”(비교 요 10:10)삶을 주실 수 있었다. 그것은 끝이 없는 생명의 시작이다. (199.2)
 성령께서는 역사상 첫번째로 여기서 에스겔에게 그룹들의 모양을 기록하도록 허락하셨다. 이 그룹들의 전체 모양은 의인화된 모습이다. 그들은 인간이외의 다른 피조물들의 모양과 혼합되어(겔 1:6~14)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겔 1:5). (199.3)
 그룹들의 송아지 발바닥
 그룹들은 송아지 발과 같은 발 위에 서 있었다. 성경의 언어 사용에 비추어 보면 “발”은 소유와 지배를 뜻한다. 예를 들자면, 아브라함은 자신의 발을 둘만한 땅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행 7:5; 비교 수 1:3; 시 31:8). 즉 그에게 땅이 없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에게는 미래의 어느 날 그들의 발을 그들의 적들의 목 위에 올려 놓는 날(사 14:25) 그들이 영토를 소유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졌다. (199.4)
 룻과 보아스, 그리고 기업무를 자의 이야기에는 재산권 이전 문제가 거론된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발 대신 신이 사용되었다(룻 4:7, 8). 소유자가 구매자에게 신을 넘겨주었을 때에 그것은 발, 즉 소유권을 뜻한다. 소유자는 이런 제스쳐를 보임으로써 자신의 땅을 마음대로 걸어다닐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며, 소유권이 양도되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이런 관습은 아직도 몇몇 나라에 남아 있다. 그 한 예를 들자면, 캘리포니아의 글렌데일 시에 있는 한 교회의 사무실 문 바로 밖의 인도쪽 벽에 붙어 있는 동판에는 그 길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다는 고지문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방법으로 소유주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199.5)
 그룹들의 황소 발은 광낸 구리와 같이 빛났다(겔 1:7; 미 4:13; 신 25:4). “구리” 또는 놋쇠는 내구력을 시사한다. “놋 산(山)”은 매우 오래 견디는 힘이라는 인상을 준다(슥 6:1; 비교 욥 40:18). 그리스도 자신이 빛난 주석 발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계 1:15). 그룹들의 발은 황소같은 우세성, 놋쇠같은 내구력을 상징하여 주고, 이 땅을 그룹들이 공고히 또 영속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예증하여 준다. (199.6)
 그룹들은 사람의 손을 가지고 있었다(겔 1:5, 8; 10:12). 아마도 네 개의 손을 가지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그룹들의 창조성과 기술을 알려주려고 한 것 같다. 그룹들의 손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탄원하는 모습으로 들려져 있었으며, 하나님의 크신 목적을 위하여 봉사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룹들의 손들은 잃어버린 자를 가리키면서, 도움이 필요한 자의 어깨에 메여 있는 짐을 덜어 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룹들의 손은 외로운 자들을 사랑으로 부둥켜 안아 주기 위하여 펴 있었다. (200.1)
 그룹들에게는 “육신” 혹은 “몸”이 있었다. “영”은 이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눅 24:39). 그들의 앞쪽과 뒤쪽, 그리고 몸 자체에는 “눈이 가득차” 있었다(겔 10:12; 계 4:8). 이 점은 완전한 이상—묘안과 선견지명, 그리고 통찰력—을 뜻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인, “일곱 눈”을 가진 예수의 시각을 가지고 인생과 세상을 바라본다(계 5:6; 4:5; 슥 3:9; 4:10). 여호와께서는 “눈은 몸의 등불이”고(마 6:22; 비교 눅 11:34), 그룹들은 이 세상의 유일한 빛으로 가득 차 있다고 설명하셨다. 그룹들은 여호와와 비슷하기 조차 하다(겔 1:13). (200.2)
 에스겔은 “생물의 모양은 숯불 ∙∙∙ 모양 같”다고 말하였다(겔 1:13). 이것은 스랍들(seraphim)이란 단어의 근원어인 히브리어 동사 사랖(saraph)의미를 메아리 쳐준다(겔 1:13). 타락 전의 아담과 하와처럼 그룹들도 죄된 육신의 옷으로부터 깨끗하였고, 영광으로 빛났다. “이는 생물의 신(神)이 그 바퀴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겔 1:20; 10:17). 이 광채를 그리스도께서 변화산에서 나타내셨다. (200.3)
 그룹들의 여섯 날개
 몇 개의 날개가 있었는지가 약간 불 명확한 것 같다. 날개가 몇 개 있었는 지에 관한 언급이 에덴동산과 성막, 그리고 성전에 있었던 그룹들에 관하여 나오지 않는다. 에스겔은 비록 모호한 어구를 사용하여(겔 1:8, 넷이란 숫자는 날개 숫자가 아니라 얼굴 숫자일 수도 있음, 11절) 적어도 네 개의 날개가 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룹들 스랍들에 관한 이사야의 확장된 견해와 요한의 “네 생물”에 관한 묘사에는 각각 여섯 개의 날개를 갖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사 6:2; 계 4:8). 한 쌍의 날개로는 경외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얼굴을 가리고, 다른 한 쌍의 날개로는 공손하게 자신들의 발을 가리웠다. 마지막 한 쌍의 날개를 가지고는 하나님께서 주신 심부름을 행하려 날쌔게 날아간다. 서 있을 때에는 겸허의 표로서 날개를 내리고 있다(겔 1:23, 24). 양 편에 마주보고 서서, 완전한 조화를 나타내기 위하여 “서로 입을 맞추고 있”는 그룹의 날개는 서로 맞대고 있었다.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