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4 부 예수님과 함께 지성소에서 (죄의 존재로부터의 자유) 15. 영광의 그룹들 (내가 겪는 모든 도전은 그리스도의 것임)
 신실한 이스라엘 사람과 예루살렘 도성, 그리고 약속된 땅은 여호와와 “결혼하였다”는 표현으로 묘사되었다(사 62:1~9; 겔 16:1~5). 이 셋 모두 스스로 선택하여 이혼하였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는 “여호와 <심판자 여호와>”의 감정에 관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엘로힘<Elohim>, 언약을 만드신 위대하신 자)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샬라<shalah>, 말 2:16)을 ∙∙∙ 미워하노라”고 상기시켜 준다. (194.7)
 오늘날 교회에게 하늘 신랑의 신부로서 하나되는 특권이 주어졌다(계 21:1; 고후 11:2). 에덴에서의 이혼 이후에 계속 진행되온 구원의 이야기는 탕녀를 부인으로 둔 남편이 방황하는 부인에게 끈기 있게 구애하는 이야기이고(비교 겔 16:1~63), 그 이야기는 “어린양의 혼인 예식”에서 다시 하나가 될 때야만 끝을 맺을 것이다. (195.1)
 이 땅에 모습을 나타낸 쉐키나
 여호와께서는 에덴동산의 동편에 그룹들을 “두셨다”(샤칸<shakan>). 이 히브리어 단어는 신성의 가시적인 현현(顯現)인 쉐키나와 같은 어근에서 파생한 단어이다(창 3:24). 칠십인역(LXX)은 희랍어 용어 타쏘(tasso)를 사용하여 질서가 잘 잡힌 장소에다가 하나님께서 그룹들을 배치하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모세는 죽음 바로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에게 봉사의 소명을 주신,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샤칸)자의 은혜”를 상기시켜 주었다(신 33:16). “거하다”란 단어는 여호와의 쉐키나 혹은 거처를 빛의 장막에 두다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단어는 사막의 눈부시게 빛나는 가시나무 속에 감추어진 빛나는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다. 요한은 예수의 성육신을 묘사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성 안에 장막을 치다, 또는 “천막을 치다”를 나타내기 위하여 아마도 쉐키나의 희랍어 형태라고 생각되는 용어(skene)를 사용하였다(샤칸<shakan>의 파생어임; 비교 요 1:14, 이 희랍어 단어와 히브리어 단어에는 똑 같은 자음 skn이 나온다). (195.2)
 파크헐스트(Parkhurst)는 모세가 사용한 표현들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야훼 엘로힘께서는 쉐키나, 즉 에덴 동산 동편의 장막 안에 거하시고자 하였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장소에서 일시적인 장막 안에 거하시고자 하는 목적은 성육신을 통하여 완전하고 결정적으로 실현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간이 치고 있는 장막 가운데 당신의 성막을 세우셨다. 그가 사람의 천막 곁에 당신의 장막을 치신 것은 그가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로 당신의 거룩한 품성과 생애를 익히 알게 하기 위하심이었다”(시대의 소망, 23). 화염검으로 생명나무에로 가는 길을 조명하고 있던 에덴동산의 그룹들은, 생명의 “유일한 길”을 걷고자 선택한 모든 이들에게 품성과 봉사로 예수를 분명히 제시하는 데 일조를 하는 이들의 상징이었다. (195.3)
 인간의 첫번째 부모의 후손들은 에덴에서 근접한 거리에서 살았다. “그 들어가는 입구는 파수보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막혔을 뿐 하나님의 영광이 그룹 천사들이 경비하는 낙원의 문에 나타났다. 이 곳으로 아담과 그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나아왔다. 그 곳에서 저들은 저들이 범법함으로 에덴에서 추방당한 그 율법에 대한 순종의 맹세를 새롭게 하였다. 그러나 죄악의 조수가 온 세상을 휩쓸었고, 사람들의 악행이 홍수로 말미암는 저들의 멸망을 결정했을 때에 에덴을 만드신 손이 그것을 지상으로부터 철회하였다. 그러나 만물이 회복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이 생길 최후의 때에 에덴은 태초보다 더 영광스러운 단장으로 회복될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62). (195.4)
 구원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 장면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 600여년 동안(창 7:11)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자주 명상하며 보았을 것이다. (195.5)
 대홍수 후에 함, 셈, 야벳과 그들 형제들의 아내들은 이 에덴동산의 장면에 관하여 그들의 자녀들에게, 손자들에게 거듭거듭하여 말하여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인류가 받은 유산의 한 부분이 되었고, 창조, 뱀의 유혹으로 야기된 타락, 아담과 하와의 행복했던 동산에서 추방됨, 하나님께서 그 문 앞에 천상의 빛인 그룹들과 동물을 잡아 희생 제사로 드리는 번제단으로써 세우신 예배 형태에 관한 인류의 원형적 설화가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식 속 깊이 자리잡은 이 개념들은 각 세대를 걸쳐 전해져 내려왔고, 그 내용이 갈수록 왜곡되어졌다. 이 땅의 인구가 엄청나게 증가함에 따라 이 개념들은 많은 민속 종교들 가운데서 발전하여 나갔다. (196.1)
 그룹들에 관한 이방 사람들의 사실 왜곡
 참 하나님 경배를 포기하기를 택한 자들은 본래 실제 사실이었던 이 기억들이 희미해지게 놔둬 버렸다. 바울은 몇몇 사람들이 일부러 자신들의 공상에 맞도록 옛 기억들을 왜곡하기도 하였다고 상기시켜 준다(롬 1:19~24). 창조와 인간의 타락, 낙원과 대홍수, 희생 제사 제도와 하나님 경배 방법에 관한 이 왜곡된 사상은 오래되어 황폐된 건물들에 있는 수백개의 조각에, 파괴된 신전들에 있는 신(神)형상 조각 작품들, 중동과 극동에 퍼졌고 오늘날에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인(印)들과 그 파편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인류학자들은 이 이야기들을 여러 다양한 문화들의 민속 이야기에서 유사한 종류의 내용을 찾아내어 기록으로 남기는데, 이 모든 사실들은 옛날 옛적 어느 한때 인류가 실제로 진리를 알았다는 것을 말하여 주고 있다. 인류 학자들의 발견은 배교의 씁쓸한 이 이야기가 사실임을 입증하여 준다. (196.2)
 이 신화론적 옛 이야기 중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신성한 장소에 있는, 노하여 있고 기괴하기 조차한 수호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방 사람들의 전승 속에 나오는 그룹들에 관한 이 이야기의 내용은 여러 다양한 얼굴과 많은 날개와 손을 가진 새들과 동물들에 관한 내용이 합쳐져서 구성되었다. 종종 공통으로 나오는 장면 중 하나는 이방 사람들이 하늘 빛에 둘러 쌓인 신성한 경내(境內)에 있는 나무 앞에서, 동물 희생 제사와 채소 제물을 드림으로써 달램을 받고 있는, 빈틈없이 경계하는 뱀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196.3)
 하지만 이 왜곡된 장면에도 창세기에 기원을 둔 사항들이 나와, 연구자들로 공통된 근원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도록 하여 준다. 파버(G. Stanley Faber)는 널리 퍼졌으나 상당히 왜곡된, 인간과 신에 관한 최초의 민속 이야기가 영감으로 기록된 창세기 설화를 확증하여 준다고 오래 전에 제시하였다(G. Stanley Faber, The Origin of Pagan Idolatry). 엘렌 화잇도 이 견해에 동의한다. “이방 사람의 제사 제도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도의 왜곡된 형태이다”(시대의 소망, 28). 그러므로 일신론(一神論)은 다신론(多神論)을 순화시켜 놓은 것이 아니다. 다신론은 일신론이 왜곡된 형태이다. 구원사가 히브리 성경에 정확하게 기록된 것은 오로지 성령의 간섭에 의해서였다. (196.4)
 화염검
 에덴동산 문에 배치된 그룹들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에로 가는 길을 “지킨” “회전하는 불길” “스스로 불붙어 있는 검”이 있었다(창 3:24; 비교 겔 1:4). 이 단어가 첫번째로 나오는 곳은 아담과 하와가 그들이 거룩한 정원지기인 하나님으로부터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라(샤마르<shamar>)는 명령이 주어진 구절이다(창 2:15).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책임을 매일매일 이행하는 것을 뜻하며, 자신의 양무리를 돌보고 먹이는 목자와 같은 맥락에 속한다. (197.1)
 “지킨다”는 또 가까이서 관찰하는 것, 언약의 조건들을 이행하는 것, 또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같은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순종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언외(言外)의 뜻은 에덴의 화염검의 기능을 명료하게 밝혀 준다. 광채나는 좌우에 날선(히 4:12)검의 봉사 없이 “생명나무에로의 길”은, 흉악한 신화라는 외양 속에 가리워져 우리의 시야에서 금방 사라질 것이다. 가브리엘은 이 봉사를 행하기 위하여 영감받은 말씀의 검으로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춤으로 예언적 진리의 빛을 계속하여 퍼뜨리었다(요 1:9). (197.2)
 성막을 건설하라고 명령을 받은 모세
 창조 후 약 26세기가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이 자기 백성들 가운데에 “거하”도록 또는 샤칸하도록” 거룩한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하셨다(출 25:8).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그룹들이 휘두르는 화염검을 사용하시어 직접 행하신 일을 이제는 자신의 성소에 드러난, 그룹들이 감싸고 있는 영광을 통하여 행하시고자 제안하시는 것이다. 아삽은 이 목적을 시로 표현하였다.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야사프<yashay>, 즉 “사이”는 번역자가 집어넣은 표현이다(사 37:16; 왕하 19:15; 시 80:1; 비교 시 91:1). 시인은 그룹들의 날개를 하나님의 보좌 위에서 빛나는 영광의 덮개로서 상상하였다. (197.3)
 모세는 오경에서 그룹들에 관하여 설명하여 주지 않는다. 이 점은 그룹들의 형태를 브사렐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장인(匠人)에게는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 라는 지시만이 주어졌을 뿐이다(출 25:18, 19; 비교 사 53:5). 이 말은 정금판으로 만들었다는 뜻으로, 그 판은 주조(鑄造)만큼이나 단단하지는 않지만, 움푹 들어가 있었다. 금을 “치는” 행동은 인자가 당하신 아픔과 학대를 상기시켜 준다. 이런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그룹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채우”는 것으로서 묘사되었다(골 1:24). (197.4)
 그룹들은 속죄소의 양 끝에 서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대하고 경건하게 머리 숙여 법궤를 내려다 보”았으며 그룹의 자세는 “하늘 천사의 무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가지는 존경과 구속의 경륜에 대한 저들의 관심을 나타냈다”(부조와 선지자, 348~349). 그룹들의 자세는 그들이 “하나님의 거하시는 장소”와, 조명하여 주는 성령의 보좌를 형성해 주었다. 훗날 참 교회는 이 기능들을 실행하여야 하였다. (197.5)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는 자이었던 그룹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