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이스라엘 - 세대주의 예언해석학 비판 - 제 12장 예언된 환란과 교회를 위한 희망
 분명히 그런 임박성의 교리는 주의 날이 다가옴을 알리는 묵시적 징조들을 살피라는 경고와 함께 참기 어려운 긴장을 만들어 낸다. 월부어 드는 심지어 환란 전 그리스도의 오심이나 “징조” 둘 중 어느 것을 살펴야 할지 우리를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그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나심’(딛 2:13)을 찾으라는 권면은 고난이 먼저 끼어들면 의미를 잃고 만다. 그 경우에 신자들은 징조를 찾아야 한다”12고 말한다. 어느 때라도 오실 수 있다는 임박성의 개념은 그리스도의 환란 후 오심에 대한 믿음과 양립될 수 없다. (211.2)
 그러나 주의 재림를 기대하는 태도는 지정된 징조들을 살피라는 성서적 권면과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이방인 교회를 위하여 기록된 누가 복음은 예루살렘 멸망에서부터 주의 오심까지의 미래 사건들에 관한 그리스도의 예언을 전해준다. 여기에는 전 세계의 혼란한 상태와 환란뿐만 아니라 해 달 별들의 징조도 포함되어 있다(눅 21장). 그리스도는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눅 21:28)고 결론을 내리셨다. 그리스도는 교회가 예언된 징조들을 살피고 고난을 경험하는 동안 그의 오심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경고하셨다. 그런 징조들은 임박한 휴거 교리와 조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환란 후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를 고대하는 태도를 격려한다. (211.3)
 많은 사람들이 세대주의자들은 40절과 41절을 제외하고는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예수의 전체 설교를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에 적용한다는 것을 알고서 놀란다. 월부어드는 “환란에서 남은 경건한 이들은 교인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인들로 묘사되어 있다”13고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함으로써 교회의 지체가 되었다. 이러한 결론의 힘을 제거하고자 세대주의자들은 그 장 전체가 오직 유대인에게만 해당된다고 간단히 선언하고 만다. 그러므로 이 견해에 따르면 “천국복음”(14절)은 다윗의 민족적 왕국의 회복을 칭하는 것이며, 성도의 환란(15-22절)은 유대인 신자들에게만 적용시킨다. 결국,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에 있을 택한 자들의 휴거는(31절) 오직 이스라엘인 신자들만을 포함한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의 문맥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예언 설교를 그의 제자들에게 행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교회의 대표로 서 있다. 결국, 마태복음 24장의 전체 설교는 교회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거기 예언된 환란 중의 성도는 사도 들이 첫 번째 증인이었던 교회에 속하여 있었다. 이것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모두 이방인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설교를 반복하고 있는 사실 로도 확인된다(막 13; 눅 21장). “천국복음”은 바울이 이방인과 유대인들에게 전한 바로 그 복음이다(행 20:25; 28:23, 31; 골 1:13 참조). (212.1)
 마태복음 24장에 나타난 미래 사건들에 관한 그리스도의 예언적 조망은 교회의 환란 전 휴거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나팔소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파루시아 때에(31절) 하나님의 천사들이 택한 자들을 모으는 것이 틀림없는 교회의 휴거이며, 그것은 환란 후에 온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는 본문은 환란 이후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모으실 복음의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모두를 지칭한다(마 24:31; 눅 21:28 참조). “택한 자들” 이라는 일반 용어는 유대인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벧전 1:1; 2:9 참조). 세대주의가 마태복음 24장을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적용하기를 원하면서도 40절과 41절만을 떼어 교회의 휴거에 적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구절들에 나타난 “데려감을 입으리라”는 표현을 교회의 휴거와 연결시킨다면(마태복음 24:40, 41에 사용된 것과 같은 동사 어근 paralarbanein이 사용된 요한복음 14:14이 언어적 지지를 한다). 이 휴거는 아직도 택한 자들의 휴거(31절)와 연결되어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환란 후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를 언급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래드(G. E. Ladd)가 내린 “환란 전 교회의 휴거는 하나의 가정이다. 그것은 감람산에서 가르치신 바 되지 않았다”14는 결론에 동의하게 된다. (212.2)
 그리스도는 다니엘 9장“미운 물건”을 어떻게 적용하였는가?
 마태복음 24:15-30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말씀들은 교회가 지상에서 하늘로 휴거한 이후 칠년 동안 현대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이 겪을 종교적인 핍박을 예언하고 있는가? 세대주의자들은 구주께서 “멸망의 가증한 것”“큰 환란”을 언급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렇다고 대답한다.15 맥클레인(A. J. McClain)에 따르면, 그리스도는(다니엘 9:27의)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미래에 있을 “그의 영광스러운 재림 직전”(마 24:29, 30)의 종말에 두셨다.16 월부어드(J. F. Walvoord)는 마태복음 24:15-22에서 예수께서 다니엘 9:27에 예언된 이스라엘의 일흔 번째 이레 혹은 사백구십년의 절정에 관한 예언을 마음에 두고 계셨다”17고 동의하였다. 그리고 새 스코필드 주석 성경(NSRB)의 마태복음 24:15-20의 주석에서 “미운 물건이 나타난 이후 예루살렘에 있을 미래의 위기”18에 대해 언급하였다. (213.1)
 마태복음 24장의 예수의 말씀이 정말 교회가 하늘로 휴거한 이후에 유대인들이 겪을 미래의 환란을 언급하고 있는가? 그와 같은 입장이 객관적인 성경 주석으로 유지될 수 있는가? 마태복음 24장에 대한 세대주의 주석은 공관복음(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상호보완적 기능을 부인하는 교리적 미래주의의 인상적인 하나의 예다. 예수의 예언 설교는 세 공관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세 기록 모두의 조명 아래 연구해야만 한다. (214.1)
 그러나 세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감람산 설교를 해석할 때 누가복음을 제외한다. 그 이유는 누가의 기록이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한 그들의 주석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신약 학도들이 누가의 내러티브를 다른 두 복음서보다 역사적으로 좀 더 정확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 길이와 완성도에 있어서 누가의 기록이 가장 앞서 있다. (214.2)
 새 스코필드 주석 성경(NSRB)는 심지어 누가복음 21:20-24(마태복음 24:15-22과 병행하는 것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에 기록된 예수의 예언의 말씀은 그가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신 것과 정반대라고 까지 하였다. (214.3)
누가복음의 구절들은 직접적인 용어로 AD 70년에 성취된 예루살렘 멸망을 언급한다. 마태복음의 구절들은 ‘가증한 것’의 출현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있을 미래의 위기를 언급한다∙∙∙. 전자의 경우에 예루살렘은 이미 파괴되었다.19
(214.4)
 그런 이원론은 교리적 개념을 유지하기 위해 공관복음의 유기적 통일성을 깨트린 주석의 결과이다. 군드리(R. H Gundry)는 마태복음을 교회에 적용시키기보다 유대인들에게 억지로 적용시키는 것 즉 마태복음 24장을 미래의 세대와 연결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인정하였다.20 그는 “감람산 강화는 마가복음에 본질적으로 같은 형태로 나타나고 누가 복음에 약간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 있다. 결국 나중 두 복음서에서도 여전히 그것은 교회와 관련이 있다.”21 더 나아가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설교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유대 민족이 아니라 교회를 대표하였다. (214.5)
 세 명의 공관복음서 기자들 모두 가증한 것이 예루살렘에 나타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그리스도들, 전쟁과 전쟁의 소문, 기근과 지진으로 인해 환란을 경험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마 24:4-8; 막 13:5-8; 눅 21:8-11 참조). 이러한 예언들은 AD 35년과 AD 55년 사이에 역사적으로 실현되었다.22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8; 막 13:8과 비교)고 하셨다. (215.1)
 이어서 그리스도는 두 번째 종류의 환란에 대해 언급하셨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 의한 핍박, 친척의 배신, 주의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받는 미움 등이다(마 24:9-14; 막 13:9-13; 눅 21:12-19 참조). 보 리키(Bo Reicke)는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전에 이 모든 환란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상세한 보고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마태가 예상한 상황들은 AD 50년과 64년 사이에 팔레스타인에서 기독교에 대해 알려진 것과 일치한다”23고 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소동 중에서도 바울은 복음이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골 1:23)라고 확언하였다. 이 사실은 마태복음 24:1-14마가복음 13:1-13누가복음 21:5-19과 병행하며, 그 문자적 성취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예루살렘 멸망 사이에 이루어졌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24 (215.2)
 그러면 이 모든 징조들을 “재난의 시작” 이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때가 가까웠다”(눅 21:8)고 선언하는 거짓 그리스도들에 대해 제자들을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재림이 곧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진리를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환기시켰다.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눅 21:9). 로마 군단이 예 루살렘을 포위하였을 때, 열심당원들은 묵시적 구원에 대한 예언으로 불 타올랐고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때 하셨던 것처럼(BC 701년) 그 도성을 초자연적으로 구출하시리라는 거짓 기대 속에 저항을 계속하였다.25 (215.3)
 이 거짓 선지자들과는 반대로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이 멸망 할 때에 그가 영광중에 오신다고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그들이 성전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그것이 즉시로 그 도성과 유대에서 도망가야 할 신호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요엘(3장), 다니엘(12:1), 그리고 스가랴(12장14장)가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아야 했다. (216.1)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이 묵시적 예언들은 신실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시온 산에 설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신실한 남은 자들은 운명이 선고된 도시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메시아적 무리였다. 예루 살렘은 다니엘 9:26, 27의 예언을 따라 파괴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도성 이 언약의 하나님이신 메시아를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께서는 특별히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을 지적하셨다. (216.2)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15-21).
(216.3)
 여기에는 스코필드 성경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개입”에 의해 예루살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전망이 전혀 없다. 그 정반대로 신실한 남은 자들은 가증한 침입자들이 이스라엘 경내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나와 도망하여야 했다. 왜 도망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멸망케 하는 로마 군대가 메시아와 그의 사도들을 거절한 그 도성과 그 성전에 임하는 하나님이 정하신 복수자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9:26, 27눅 21:22 참조). (216.4)
 공관복음서의 병행구절들을 자세히 비교해보면 이 결론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분명하다. 예수의 경고에 대해 마가복음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217.1)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 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막 13:14-19).
(2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