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이스라엘 - 세대주의 예언해석학 비판 - 제 12장 예언된 환란과 교회를 위한 희망
 신약은 예상되는 배도와 환란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축복된 소망을 기대하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살아 있는 의인들을 구원하고, 포악한 적그리스도를 멸하기 위해 거룩한 영광중에 하늘로부터 돌아오실 것이다. (202.1)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202.2)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 17).
(202.3)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살후 1:6, 7).
(202.4)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 2:8).
(20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 15:51-54).
(202.6)
 신세대주의 종말론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두 사건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먼저 어느 때라도 일어날 수 있는 교회의 비밀 휴거가 있다. 그리고 이어서 7년 후에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재림을 하시고 적그리스도를 멸하신다. 이 중간의 칠년 동안 유대 백성들(민족적 이스라엘)을 위한 큰 환란이 일어날 것이다. 환란 전 휴거 때에 그리스도는 오직 성도들을 위하여 오신다(요 14:3 참조). 영광스러운 파루시아(parousia)나 에피파네이아(epiphaneia)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과 함께 오신다(살전 3:13 참조). 간단히 말해, 이것이 환란 전 세대주의자들이 가르치는 사건 프로그램이다. 1 (203.1)
 만일 이 프로그램이 믿을만한 성서주석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교회를 분리하는 편견에 사로잡힌 교리에 의해 성경에 억지로 부과된 것이라면, 성경으로 성경을 비교하는 주의 깊은 연구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누릴 참되고 복된 희망과 마지막 환란과의 관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휴거”“영광스러운 오심”이 분리된 다른 두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영광스러운 사건임이 성경으로 확인되는 순간 임박한 환란 전 휴거는 홈 많은 견해이며 오도된 희망임이 증명될 것이다. (203.2)
 교회의 복된 희망
 신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하기 위해 세 가지 헬라어 단어를 취한다. 파루시아(coming), 아포칼룹쉬스(revelation), 그리고 에피파네이아(appearing) 이다. (203.3)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데살로니가전서 3:13; 4:15-17; 데살로니가후서 2:8; 그리고 마태복음 24:27에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들을 비교해보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는 교회의 휴거와 죽은 의인의 부활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 즉 불법의 사람의 멸망도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8에서 바울은 “(예수께서)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문자적으로는, 그의 파루시아에피파네이아)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파루시아를 극적이고 영광스러운 사건으로 묘사한다. 사도에게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심은 교회의 축복된 희망이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그리스도는 심지어 그의 파루시아를 동에서 서까지 번쩍이는 번개에 비유하기도 하셨다. 이것은 파루시아가 모든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명백한 사건임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마 24:27 참조). (203.4)
 신약에는 교회가 비밀스럽고, 눈에 보이지 않게 순식간에 휴거한다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역으로 데살로니가전서 4:15-17은 그 정반대의 입장을 보여준다. “호령”“천사장의 소리”“하나님의 나팔”“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 성도들은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휴거하여)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된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51절) 교회가 썩을 몸에서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는 비밀을 밝히고 있다. 바울에 따르면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은 이 변화이지 지상에서 공중으로 올라가는 휴거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파루시아는 인간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지구를 흔드는 사건이 될 것이다. 그것은 모든 성도들이 구원을 받는 것과 목이 곧은 세계와 적그리스도에 대한 심판을 동시에 가져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신 때 마지막 나팔이 울리면 일어날 것이다(51-55; 행 1:6-7 참조). (204.1)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한 악인들의 멸망도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 중에 임하시는 아포칼룹쉬스에 일어날 것이다(살후 1:6, 7). 교회가 핍박으로부터 구원과 안식을 받는 것은 이 때이지,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7절)시기 칠년 전 “비밀 휴거” 때가 아니다. (204.2)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신자들에게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아포칼룹쉬스]을 기다”(고전 1:7)리라고 가르쳤다. 이것이 그 영광스러운 아포칼룹쉬스를 교회의 복된 소망이 되게 하였다. 이 사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8절)에 일어날 것이다. 또한, 베드로는 교회의 구원을 위한 소망을 휴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나심이라고 불렀다(벧전 1:7, 13; 4:13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파루시아, 아포칼룹쉬스, 그리고 에피파네이아를 구분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용어들은 모든 신자들에게는 구원과 영광스러운 불멸을, 악한 핍박자들에게는 심판을 가져오는 단 한 번의 나눌 수 없는 그리스도의 강림을 가리킨다. (204.3)
 신약의 용어들은 두 번의 재림이나, 칠년간의 환란으로 나누이는 재림의 두 국면 개념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은 환란의 끝에 적그리스도로부터 교회를 구원하기 위해 영광중에 오시는 단 한 번의 그리스도의 강림을 확증한다.1 영감의 글은 그가 “두 번째”(히 9:28) 나타나시리라고 하였지 “두 번 더” 오신다고 하지 않았다. (205.1)
 이스라엘과 교회에 대해 예언된 환란
 그러면 세대주의는 어떻게 성경에서 “비밀 휴거” 개념을 얻게 되었는가? 근본적으로 그것은 “이스라엘”에 대해 선입견에 사로잡힌 문자주의 해석학의 결과이다. 라이리(C. C. Ryrie)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분은 교회가 환란(이스라엘과 관련된)이 시작되기 전에 지상에서 취함을 받으리라는 믿음에 이르게 한다”2고 설명하였다. 이에 누군가 왜 환란의 때가 교회는 아니고 오직 문자적 이스라엘이나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느냐고 묻자, 월부어드는 큰 환란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준비의 때”3(신 4:29, 30; 렘 30:4-11)라고 대답하였다. (205.2)
 그러나 신명기 4:2930:1-10에서 말하는 이 준비의 때는 어떤 기간인가? 대 환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의 계명에 새롭게 순종하며 그를 찾는 때이다. 모세는 이 영적인 준비를 이스라엘이 흩어져 있는 암울한 때에 약속의 땅과 신정의 회복으로 돌아가기 위한 분명한 조건으로 제시하였다. 바벨론 포수기 동안에 하나님께서 신실하고 영적인 남은 자들을 위하여 야곱의 환란의 때(렘 30:7)를 준비하신다는 확신은 그렇게 신실한 남은 자들이 축복과 번영의 땅으로 돌아오기 전에(신 30:1-10 참조) 필요한 참된 회개에 대한 하나님의 선결 조건을 무효화하거나 애매하게 하지 않는다. (205.3)
 예레미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30장31장은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가 된 열 두 지파를 위한 유명한 회복 약속 선집임이 드러난다. 이 구절들은 회개한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의 심령에 여호와께서 자원하여 순종하는 새 영을 주신다는 새 언약의 약속을 포함하고 있다(렘 31:18-19, 31-34; 30:9). 그것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환란으로부터 회복하기 전에 영적으로 준비하는 그런 성질의 시기이다. 성경은 현재나 미래의 이스라엘을 위해 다른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아니한다. 하나님의 이러한 조건적 약속은 변화하지 않으며 마지막 심판 때까지 이스라엘에게는 취소할 수 없는 것이다. (206.1)
 그러면 왜 몇몇 지도급 세대주의 저자들은 교회는 적그리스도에 의한 마지막 환란이나 핍박을 겪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가? 왜 교회는 영화롭게 되기 위해 그런 준비의 때가 필요하지 않는가? 월부어드는 “환란에 관한 신약의 구절들(마 24:15-31; 살전 1:9-10; 5:49; 계 4-19장) 중 교회를 언급한 것은 없다”4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 모든 구절들은 의문의 여지가 없이 교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침묵으로부터의 논증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군드리(R. H. Gundry)가 적절하게 대답하였다. (2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