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회는 전통적으로 1,260일/년을 교황이 최고주권을 누리던 시대로 말해왔다. 그 기간의 첫째가는 특징을 그렇게 규정함으로써, 마치 교황권의 유럽에서 그 정치적인 최고권을 538년에 쟁취하고 1798년에 상실하였다는 오해를 가지게 되었다. 538년은 교황권이 유럽 정치 세계에 미치는 정치적인 영향력이 증대되어가는 길을 연 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것은 1100년에서 1300년 사이에 정치권력의 절정에 도달하였으며, 그 뒤에는 점차적인 쇠퇴에 들어갔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는 동안에 교황권은 마지막 정치적인 영향력을 잃어버렸다. 그것은 모든 종교, 특별히 가톨릭교회에 반대하는 거센 세속적 폭동이었다. 1798년 2월, 프랑스의 장군 베르티에는 교황 비오 6세를 감금하였으며, 그 교황은 1년 여의 유배생활 중에 사망하였다. 그 후 백여 년 동안 교황들은 그들의 정치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하여 속을 태웠으나, 실제로는 거의 속수무책이었다. 바티칸이
“교황권에 대한 세상의 주요 세속 권력들의 강요로 200년간 활동하지 못하는 기간을”7) 겪었다고 1990년 예수회 소속의 저술가 맬러카이 마틴(Malachi Martin)은 말했다. 1990년은 1798년으로부터 200년이 되기까지 10년이 채 남지 않은 해라는 것을 주목하라. 재림교의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마틴은 과녁에 적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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