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III부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심 (5-12) 제 9 장 선한 목자가 생명의 빛을 가져옴 (9:1-10:21)
 ■ 말씀에 들어감
 요한복음 10:1-21을 적어도 두 번 읽은 후에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219.2)
 1. 성구 사전을 사용하여 요한복음에서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이 나오는 모든 구절을 찾아보라. 이 모든 구절들의 목록을 만들고, 각 구절 옆에다 이 말이 그 정황에 어떻게 부합되는지 간단히 요약해 보라. 이것이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는가, 아니면 앞의 사상을 강조하는가? 그것이 강론이나 토의의 처음에 오는가, 아니면 중간이나 끝에 오는가? (219.3)
 2. 요한복음 10:1-21누가복음 15장마태복음 18장과 비교해 보라. 세 장의 종이에 잃은 양의 주제에 관한 이 세 관점 사이에서 그대가 발견할 수 있는 유사점과 차이점을 기록해 보라. (219.4)
 3. 양, 목자, 타인, 그리고 강도는 무엇을 대표하는가? 이 문단이 요한복음 9장과 어떻게 관계되는가? (220.1)
 ■ 말씀을 탐구함
 문단의 구조
 요한복음 10장의 첫 부분(1-21절)은 요한복음 9장의 사건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것은 원문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이 장은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시작하지 않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헬라어로 아멘 아멘[amēn amēn], 「제임스왕역」에는 ”verily, verily“) 너희에게 이르노니”로 시작하고 있다. 이 복음서에서 이 표현을 강론의 초반에 사용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다른 곳에서는 언제나 강론이나 토의의 중간에서 강조하는 말로 나타난다(예를 들면, 6:26, 32, 47, 53; 8:34, 51, 58을 보라). 요한복음 10:1-21에서 예수께서는 소경을 치유하여 그를 종교 지도자들의 영적 학대로부터 구출해 내신 이야기(9장)를 발판으로 삼고 있다. 치유받은 소경이 예수께 보인 반응은 10:4에 나타난다. 소경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기쁨으로 그를 따랐던 양이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는 모든 양—심지어 양 우리에서 쫓겨난 양이라 할지라도—을 돌보시는 선한 목자이다. (220.2)
 그러므로 요한복음 9:39-41은 양방향적(duodirectional)이다. 이는 요한복음 9장의 영적 교훈의 요약과 결론인 동시에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에 관한 교훈을 위한 출발점의 기능을 하고 있다. 세상의 빛은 자칭 목자들인 바리새인들의 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목자로서 양을 진심으로 돌보는 일은 하지 않고 스스로 삯꾼임을 드러내었다. (220.3)
 요한복음 10:1-21은 자연스럽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6절은 고대 세계의 실재 삶에서 나온 유비(類比)를 제공하고(1-5절), 이어서 결론적인 진술이 나타나 있다(6절). 그런 다음, 10:7 이후에서 예수께서는 1-5절의 유비에 풍유적(諷諭的)인 설명을 제공하셨다. 그는 자신을 문으로(7-10절), 자기의 양의 발자취를 놓치지 않는(참고 26-30절) 선한 목자(11-18절)로 말씀하신다. 19-21절에는 그곳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의 엇갈린 반응이 나타난다. (220.4)
 문단의 배경
 요한복음 10:1-5는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비유와 가장 가까운 형식으로 하신 말씀이다. 이 문단 이외에도 다른 여러 진술들이 희미하게나마 비유처럼 들린다. 아마도 이것을 표현하기에 더 좋은 말이 유비(類比, analogies)일 것 같다. 예수께서는 바람(3:8), 결혼식의 들러리(3:29), 추수(4:35-38), 종과 자유자(8:34, 35), 밤에 다니는 자(11:9, 10), 밀알(12:24), 그리고 포도나무(15:1-7)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이것들은 그 진정한 의미에 있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종류의 비유는 아니다. 10:1-5의 유비는 실제로 고대의 수수께끼(riddle)와 많은 유사성을 지닌다. (221.1)
 고대 팔레스타인에서 양 우리는 대개 천연의 동굴이었다. 양떼들이 저녁에 동굴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면 목자는 동굴 입구에 자리를 잡고 거기서 잠을 잤다. 양들에게 접근하려는 어떤 강도나 들짐승도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목자와 육신적인 접촉을 해야 했다. 어둠 속에 나가 돌아다니기를 원하는 양들도 마찬가지였다. 동굴이 없는 곳에서는 들판에 있는 돌로 울타리를 치고 목자가 잠을 자면서 그의 몸으로 막기에 충분한 크기의 출입구를 만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와 양의 문으로 묘사하셨을 때, 듣는 사람들은 이런 개념들이 동일한 행동을 묘사하는 두 개의 다른 방식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221.2)
 구약에는 선한 목자에 대한 강화(講話)와 평행을 이루는 여러 구절들이 있다. 모세가 그의 삶의 종말이 가까워오자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적합한 후계자를 찾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민 27:12-23). 그는 하나님께서 그 단체를 인도할 사람을 임명하셔서, 목자가 양들을 인도하듯이 그들을 인도하여 나가고 들어오게 하시기를 기도했다(16, 17절). 이 역할은 히브리어로 예수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여호수아에게 넘겨졌다. 미가 2:12, 13에서 야훼는 친히 이스라엘의 목자의 역할을 취하신다. 그리고 에스겔 34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목자는 유다의 왕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직무의 요구에 불성실했다(2-6절). 그래서 야훼께서 친히 그들의 목자가 되려는 계획을 세우셨다(11-16절). 그런 후에 그분은 소홀히 여겨지고 잘못 다루어진 일들을 바로잡을 것이고(17-22절), 이스라엘 위에 그의 종 다윗을 두어, 야훼의 계획대로 그들을 통치하게 할 것이다(23, 24절). 그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형통할 것이다(25-31절). (221.3)
 그러므로 구약에서 선한 목자의 개념은 야훼 자신과 모세의 후계자들, 그리고 다윗과 연관되어 있다. 이 모든 개념들은 분명히 참 모세이시며(요1:17, 등), 다윗 계통의 왕이시며(1:49; 12:13, 15; 18:33-39; 7:42), 아버지와 동일하신 분이신(1:1; 10:30) 예수께 적용된다. (222.1)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더욱 흥미로운 것이 있다. 고대 유대인의 회당 의식 가운데서 초막절(草幕節)이 지난 뒤에, 수전절(修殿節)이 다가오는 어느 안식일에 에스겔 34장이 낭독되었다. 요한복음에서 선한 목자 강화(講話)는 초막절(7:1-11, 14, 37) 바로 뒤에, 예수께서 수전절에 방문하신 것을 묘사한 문단(10:22) 바로 앞에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선한 목자 강화는 역사적인 정황에 의해 정해진 것처럼 이 복음서에서 그 예측된 위치에 꼭 들어맞는다. (222.2)
 문단의 세부 사항
 요한복음 10:1-5의 수수께끼(riddle)는 목자와 양의 관계를 강조한다. 목자는 언제나 출입구를 통하여 들어오지, 강도가 하듯이 다른 길로 들어오는 일은 결코 없다(1, 2절). 양들이 그를 따르는 것은 그들이 그의 음성을 알고 그가 그들의 이름을 각각 부르기 때문이다(3, 4절). 그들이 낯선 자를 따라가지 않는 것은 그들이 그 음성을 모르기 때문이다(5절). (222.3)
 그런 후 예수께서 그가 방금 나눈 유비(analogy)와 수수께끼(riddle)를 설명하셨다(6절). 그는 양의 문인데 그보다 먼저 온 자는 다 도적이요 강도이지만(7-10절), 참 양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8절). 그 문은 구원의 문이다(9절). 그보다 먼저 온 “절도와 강도”는 마카베오 시대 초기(152 B.C.)로부터 성전 제도를 장악하고 있는 사두개인들과 대제사장들을 지칭하는 것일 것이다. 사실 10절에서 “죽이고”라는 단어는 성전에서 희생 제물에 자주 사용되는 것이다. 비록 종교 제도를 장악하는 것이 허용되기는 했지만 사두개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초기 유대교 안에서 일반 사람들의 마음을 사지는 못하고 있었다. (2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