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계 3:8)고 하셨다. (132.1)
 라오디게아 교회에게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계 3:20)리라고 하셨다. (132.2)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늘에 있는 하나의 문은 이미 열렸고 땅에 있는 또 하나의 문은 이제 열려야 한다. (132.3)
 하늘의 문은 우리 중 누구도 닫을 수 없다. 땅에 있는 또 하나의 문은 우리만이 열수 있다. (132.4)
 첫번째 문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여셨고 두번째 문은 우리가 예수님이 들어오시도록 열어드려야 한다. (132.5)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예수님은 또한 하늘에서 내려온 세일즈맨으로서 우리의 문을 두드 리시며 “돈 없이, 값 없이” 자신의 의로우심을 우리에게 제공하시고 계시다.
(133.1)
 그리스도께서 문을 여신다. 사도 바울은 선교 봉사의 기회를 말할 때 자주 열린 문으로 말씀하였기 때문에(고전 16:9; 고후 2:12) 일부 성경 주석가들은 빌라델비아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 있는 열린 문을 선교적인 기회의 문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선교의 문들은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닫아 버릴 수 있는 문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3장 8절의 문은 “능히 닫을 사람이 없는”문이다. (134.1)
 이 열린 문의 신원을 밝히려면 요한계시록을 좀더 눈여겨 보는 것이 좋다. 요한계시록 4장 1절에 말하기를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다고 했다. (134.2)
 예수님은 산상 설교에서 말씀하시기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마 7:7)라 하셨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문을 두드리라”는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기도할 것을 강조하셨다. 그분의 충고는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미 열려 있는 문을 소개하고 계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으로 그 문을 통해 걸어 들어가는 것 뿐이다. (134.3)
 미리 약속 시간을 정할 필요도 없다. 줄지어 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다. 비서가 나와서 “미안합니다. 지금은 사장님이 바쁘셔서 만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일도 없다. (134.4)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아무 중재인도 필요하지 않다(딤전 2:5).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노라”고 하신다. (134.5)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4세(Heinrich 4)가 1077년 정월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y 7)를 북부 알프스의 높은 산지(山地)에 있는 카놋사로 찾아가 사죄를 구했을 때 그리스도의 대표자라고 자처하고 있던 교황은 이 국왕을 사흘 동안이나 눈 속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사흘 후에 드디어 교황은 국왕을 성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러나, 교황 자신의 서한에 의하면 그나마도 상당한 주저 끝에 베푼 은혜였다.21 바로 이와 같은 태도 때문에 그리스도의 타밋 즉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하늘의 봉사가 퇴색되었던 것이다. (134.6)
 공공 건물에 있는 문들을 보면 “문을 꼭 닫으시오” 라는 푯말이 자주 눈에 띈다. 그러나, 하늘 성전의 문은 항상 열려 있으며 “어서 오십시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134.7)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 (134.8)
 우리는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걱정거리들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 각사람이 시련과 유혹에 봉착할 때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하늘 만큼이나 넓게 열린 큰 문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라신다. (134.9)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열린 문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항상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신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은 너무 현명하시고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가 없다. 그분이 뜻하시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진실로 염려하고 계시며 우리를 위해 우리가 간청한 것보다 더 나은 것을 마련해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히브리서에서 읽은 그대로 하나님은 확실히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신다. (134.10)
 우리의 문은 열렸는가? 하늘의 문은 활짝 열렸다. 그러나, 우리의 문은 어떠한가?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하셨다. (134.11)
 물론 예수님 자신은 하늘 성소에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 바로 전에 히브리서 4장 14~16절에서 읽은 그대로이다. 그러나 지상(地上)에서는 성령이 충실하고 충분하게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대해 말씀하실 때 마치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시듯 하셨다(요 14:16~18). 그래서 우리도 성경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문밖에 계신 예수님에 대해 말할 것이다. (135.1)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갖고 계시다(계 3:7). 예수님은 어떤 문이든 열 수 있는 권세를 갖고 계시다. 그런데, 왜 우리의 문을 열고 자진해서 들어오시지 않는 것일까? (135.2)
 그분에게는 우리를 강요할 마음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신다. 실상 그분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함이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6). 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를 위한 하늘의 계속적인 봉사는 그분이 우리의 자유를 얼마나 깊이 존중하고 계신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1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