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4세(Heinrich 4)가 1077년 정월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y 7)를 북부 알프스의 높은 산지(山地)에 있는 카놋사로 찾아가 사죄를 구했을 때 그리스도의 대표자라고 자처하고 있던 교황은 이 국왕을 사흘 동안이나 눈 속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사흘 후에 드디어 교황은 국왕을 성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러나, 교황 자신의 서한에 의하면 그나마도 상당한 주저 끝에 베푼 은혜였다.
21 바로 이와 같은 태도 때문에 그리스도의 타밋 즉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하늘의 봉사가 퇴색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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