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2, 3 — 그리스도께서 일곱 교회에 편지하심 1. 그리스도께서 그을음 투성인 교회를 돌보심
 예수님은 또,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의 이름과∙∙∙나의 새 이름”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앞에서 말했듯이 한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특성을 반영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은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협조하면 우리들의 성품을 하나님의 성품과 같게 개발시켜 주시겠다는 약속과 같은 말이다. 얼마나 고마운 약속인가? (111.5)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성의 이름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우리를 하나님의 우주 왕국의 수도인 새예루살렘의 시민권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히 11:14~16; 빌 3:20). 이것은 다니엘 7장 27절“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바 되리니”라는 약속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111.6)
 환난 속의 보호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해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고 약속해 주셨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 약속인가. 이시험의 때는 다니엘 12장 1절에 나오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의” 때를 말하는 것이다. 다니엘 12장 1절에서 말하기를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하였다. 요한계시록 3장 10절에서도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 빌라델비아 교회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케 하시겠다는 약속은 환난이 시작 되기 전에 그리스도가 그들을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가겠다는 말이 아니다. 요한복음 17장 15절에서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다” 라고 하신 예수님의 기도를 생각해 보면 자명해진다.
(111.7)
 환난의 최종적인 때는 세상의 끝날에 닥칠 것이다. 그때 재림 전 심판에서 책들의 조사가 끝나서(단 7:9~14) 대군 미가엘이 일어설 것이며(단 12:1), 죽은 의인들의 부활이 뒤따를 것이다(단 12:2). (112.1)
 이제 서머나 교회는 십 일 동안의 환난을 치렀으며 그 환난에서 “죽도록 충성” 해야 했다. 이 환난은 참된 그리스도인에 대한 대 박해였으며 이 기간에 일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당해야 했다. 두아디라 교회도 환난에 대해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 환난은 악한 이세벨의 무리에게 내린 처벌이었다. (112.2)
 이렇게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세 개의 다른 환난 기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1) 일부 성도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는 서머나 교회의 박해,

 (2) 이세벨의 무리들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바 두아디라 교회에 대한 징계,

 (3) 온 세상의 거민들을 시험할,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조될 마지막 환난의 때가 그 세째이다.

 일곱 교회가 교회 역사의 일곱 시대를 상징하는지를 토의할 때 각기 다른 환난 기간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112.3)
 그러나, 그 앞서 장래의 환난에서 구원받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앞에서 말했듯이 요한계시록의 약속은 “귀 있는 자” 곧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112.4)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고 하셨다. 이 구절의 희랍어 원문에서 열쇠가 되는 낱말은 “기별”, “지시”, “명령” 이란 뜻의 말이다. 새 국제 번역 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너희가 참을성 있게 견디라고 한 내 명령을 지켰으므로 나도 너희를 지키리라”로 번역했다. 여기에서 요점은

 (a)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나날의 시련을 참고 견디라고 지시하셨다는 것과,

 (b) 만약 우리가 그의 도우심으로 나날의 시련을 극복하여 예수님을 굳게 붙잡으면 예수님께서도 그 큰 환난의 날에 틀림없이 우리를 붙드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112.5)
 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소개한 것은 이 교회가 열린 문의 교회라는 사실이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로 소개하셨다. 이 묘사는 이사야 22장 22절에서 취해 온 것이다. 이사야 22장 22절은 봉직 기간이 짧았던 한 정부 관리 엘리아김에 관한 진술이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진정으로, 그리고 영원히 열쇠를 가지신 분이시며 초월적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요한계시록 3장 8절에서 “내가 네(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고 하셨다. 열린 문의 개념에 대해서는 “두 개의 열린 문”이란 항에서 다시 취급하게 될 것이다. (112.6)
 7. 김빠진 라오디게아 교회(계 3:14~22)
 배경
 그리스도의 일곱 편지의 마지막이며 일곱번째 수신자인 라오디게아는 사업가들의 낙원과 같은 도시였다. 라오디게아는 대단히 부유한 도시였으며 그 사실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112.7)
 기원 후 60년에 지진으로 말미암아 크게 피해를 입었을 때에도 라오디게아는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로마의 재난 구조금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재건하였다. (113.1)
 라오디게아의 주요 재원은 상업과 은행의 이윤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특히 양질의 검은 색 양모(羊毛) 시장이 유명했으며 값비싼 의류와 양탄자 제조업도 발달했다. 라오디게아는 또 의과 대학과 이 지방 재료로 생산되는 안약(眼藥)으로 유명했다. 뿐만 아니라, 라오디게아는 유흥 도시였다. 남쪽으로 몇 마일만 내려가면 좋은 온천이 있었다. 긴 수도관을 통해 이 뜨거운 물을 시내로 끌어 썼기 때문에 시내에서는 늘 미지근한 물을 사용하게 되었다. 마시기에는 상쾌하지 못했으나 목욕물로는 안성 마춤이었다. (113.2)
 책망
 라오디게아 교인들도 이 도시의 자족(自足)에 대한 자부심을 함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부심은 당치 않은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대단히 뼈아픈 책망을 보내셨으며 칭찬의 말씀은 전혀 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뿐만 아니라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너희가 “미지근”하도다. (113.3)
 그리스도께서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자신을 소개하여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라 하신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그분은 자기 기만적인 라오디게아 교인들과 더불어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에 이같은 칭호를 선택하셨다. 그분은 이 교인들이 당신의 뼈아픈 진단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셨다. (113.4)
 그분은 또 자신을 “아멘”이라고 소개하셨다. “아멘”은 히브리 말로서 “진실로” 라는 뜻이다. 이것은 자기 기만적인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미망(迷妄)을 깨우치는 분임을 상기시키는 또 하나의 표현이다. (113.5)
 

라오디게아의 파괴된 수도교는 하나님께서 뜨뜻미지근함을 좋아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