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2, 3 — 그리스도께서 일곱 교회에 편지하심 1. 그리스도께서 그을음 투성인 교회를 돌보심
 우리가 꽤 의지하고 있던 것이 소용없게 되었을 때 우리의 실망이 얼마나 크게 되는가. 그것이 식당이든 백화점이든 유명 상표가 붙은 도구이든 아니면 인기 높던 교사이든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찾았을 때 예전과 같지 않음을 알고 실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지난 날의 평판에 안주한 나머지 나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항상 전에 우리가 알던 그대로 훌륭한 자질을 유지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110.1)
 사데 교회는 이미 얻은 영광에 만족하고 있었다. 이 교회의 설립자들은 그 영성으로 평판이 자자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교회로 인도한 전도자들은 탁월한 설교가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교회가 이전의 좋았던 때로 돌아가야 할 때가 이른 것이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하라.” (110.2)
 사데 교회의 처지는 심각하였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각 개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훈훈하고 세심하다. 마치 예수님이 그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죽으신 것같이 여겨진다. 그리하여, 자기 만족에 빠진 이 그을음 투성이인 이 교회에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다. (110.3)
 보상
 사실 이 교회의 어느 누구에게도 때가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모든 교인들을 향해 격려하시기를 “이기는 자는 이와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 하리라” 하셨다. (110.4)
 사데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기는 자” 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졸음을 이기고 깨어있는 자는 누구나”란 뜻이다. 예수님은 “만약 네가 깨어나 이전의 활력 넘치는 종교 생활로 돌아간다면 생명책에서 네 이름을 지우지 아니하고 내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 그 이름을 인정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110.5)
 만약 깨어 일어나면 그 이름을 지우지 않으리라는 말씀은 만약 사데 교회가 정신을 일깨지 못하면 그 이름을 지워버리겠다는 말씀이나 같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책에 대해 언급하시며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그 이름들을 시인하시겠다고 하신다. 이는 앞에서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한 바 있는 재림 전 조사 심판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110.6)
 이것은 다니엘 7장의 심판이다. 즉; (110.7)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9, 10).
(110.8)
 이것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똑같이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110.9)
 그 심판에서 니골라 당과 발람의 무리들이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있다. 이세벨의 무리도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잠에 빠진 그리스도인들도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110.10)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영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죽으셨다. 그때 예수님은 놀이를 하신 것이 아니다. 지금도 놀이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들에게 진지하고 정직하시다. 따라서 우리도 똑같이 그분에게 진지하고 정직하기를 기대하신다. 그분은 그렇게 기대할 권리를 갖고 계시다. (110.11)
 6. 문이 열린 빌라델비아 교회(계 3:7~13)
 배경
 사데로부터 그렇게 멀지 않은 남쪽에 두아디라처럼 두 개의 비옥한 골짜기 사이의 넓은 언덕 위에 빌라델비아가 위치했다. 동쪽으로 골짜기가 뚫리어 있어서 빌라델비아가 상업 및 문화적으로 발전하는 데 크게 유리하였다. 앞에 언급한 여러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빌라델비아도 지진의 피해를 자주 겪었다. 빌라델비아 사람들은 그 중에도 어느 한 지진에 의해 특별히 타격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것은 빌라델비아 사람들이 그 긴 여진(餘震) 기간 동안 성밖 들판의 오두막에서 지낸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4 (111.1)
 빌라델비아는 “형제의 사랑” 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매력적인 이름은 버가모의 국왕 아탈루스 2세(Attalus II)가 그의 형 유메네스 2세(Eumenes II)를 기념하여 이 도시에 붙인 것이었다. 이 도시가 지금은 알라세히르(Alasehir) 즉 “붉은 도시” 란 이름으로 이만여 명의 인구를 거느리고 같은 장소에서 번영하고 있다. (111.2)
 칭찬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칭찬하시고 그들의 결함은 탓하지 않으셨다.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책망을 하지 않으셨다. 비난하는 대신에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고려해 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시기 직전에 우리 모두가 무력한 사람들임을 지적하셨다. 그때 말씀하시기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요 15:5)다고 하셨다. 빌라델비아의 교인들에게는 “너희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평가하셨다. (111.3)
 보상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풍성한 약속을 하셨다. 말씀하시기를 “사단의 회”가 네 발 앞에 절하고 그리스도가 그들을 사랑하는 줄을 알게 될 것이라 하셨다. 사단의 회는 배교한 유대인들이거나 거짓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고 결코 다시 나가지 않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여기서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영생의 안정성과 보장은 지진 후에 빌라델비아 사람들이 안절부절하는 모습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