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2, 3 — 그리스도께서 일곱 교회에 편지하심 1. 그리스도께서 그을음 투성인 교회를 돌보심
 구약 성경의 이세벨의 시대에, 7천 명의 유대인들이 이교 문화와의 타협을 용감하게 거부하였다(왕상 19:18). 다행스러운 것은 두아디라 교회에서도 이세벨의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배우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격려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하셨다. (107.5)
 재림 전 심판
 예수님은 심판에 관한 말씀을 하신 직후에,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를 갚아주리라”하셨다. (107.6)
 구약 성경에서는 심지어 선지자 엘리야까지도 바로 전에 언급한 7천 명의 진실한 신앙인들이 굳건히 하나님의 도리에 서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 혼자 하나님의 신앙에 서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7천 명을 모두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부단히 우리의 행위를 감찰하고 계신다. (107.7)
 예수님께서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심판을 말씀하고 계셨다. 그분은 모든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 교회에 대한 재판장으로서의 그분의 역할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다. (107.8)
 요한복음 5장 24절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최후의 심판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어 개역 표준 성경(R. S. V.)에서는 요한복음 5장 24절“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번역되었다. 근대의 일부 다른 번역들도 비슷한 뜻으로 번역하였다. (107.9)
 그러나,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을 것이라 하였다. 따라서 여기 요한계시록 2장 23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모든 교회는 내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이며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줄 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107.10)
 영어 흠정역 성경에는 요한복음 5장 24절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심판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정죄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번역하였다. (107.11)
 

사데의 시민들은 적군이 절벽을 기어올라와 안에서 성문을 열 때까지도 1천 피트가 넘는 낭 떠러지 위에 세운 사데 성의 난공 불락만 믿고 방심하고 있었다.
(108.1)
 이것이 옳은 번역이다. 이 번역은 신약 성경의 원어인 희랍어 단어들의 뜻에 부합한다. 분명히 이것이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이며 또 성경의 여타 부분과 두아디라 교회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 씀과도 일치한다. 다니엘 연구에서는 최후의 심판의 첫 단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 첫 단계를 가끔 “조사 심판”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일어나는 것이라 하여 “재림 전 심판” 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모든 “이스라엘” 즉 참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일이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최후 심판의 이제 일단계의 한 목적은 자신들의 첫 언약에 끝까지 충실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우주 앞에 드러내는 데 있다. 또 하나의 목적은 신실치 못한 신자들에 의하여 박해를 받아온 진실한 신앙인들의 신원(伸寃)을 풀어 주는 데 있다. 얼마 후에, 그리고 요한계시록 14장을 다룰 때 이 심판에 대해 더 자세히 언급하게 될 것이다. (109.1)
 보상
 어떠한 희생을 치른다 해도 세속적인 문화와의 타협을 거부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능력과 친교와 영광을 약속하셨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쇠 지팡이)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릴 것이며∙∙∙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109.2)
 “철장” 이란 고대의 목동들이 사용하던 “쇠 지팡이”를 말한다(시 23:4). 이 쇠지팡이는 양떼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모든 악인들이 멸망함으로써 죄없는 자들의 안전이 영원히 보장될 것이다. 다시는 더 이상 야유와 위협과 음란이 성도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109.3)
 예수님의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새벽별”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다!(계 22:16) 그분은 이에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 이시지만(계 19:16), 우리의 친구가 되시겠다고, 심지어는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종이 되시겠다고 하셨다(눅 12: 37, 22:27).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무서운 압력과 가까운 친구들의 상실 등 타협의 유혹을 물리침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이같은 약속들이야말로 가장 설득력 있는 힘이 아닐 수 없다. (109.4)
 5. 침체된 사데 교회(계 3:1~6)
 배경
 사데는 난공 불락의 도시로 자처하였다. 버가모처럼 사데도 높은 산봉우리 위에 위치했다. 도시의 중심부는 골짜기 바닥으로부터 300 m 의 높이에 달했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벼랑을 이루고 있었다. 고대 세계에서 전설적인 부(富)를 누렸던 리디아의 크로이수스(Croesus)왕은 사데를 수도로 삼고 그의 보고를 이 곳에 쌓았다. 최초로 경화(硬貨)가 주조된 곳도 바로 이 곳이었다. (109.5)
 어떤 군대도 이 도시를 방어하는 벼랑을 기어오를 수 없었다. 그러나, 고레스(키루스) 대제(Cyrus the Great)는 기원 전 547년에 사데를 함락하고 크로이수스 왕으로부터 그 보물들을 탈취해 갔다. 그리고 안티오쿠스 대제도 기원 전 218년에 이 도시를 정복하였다. 두 경우 모두 대담한 지원병이 벽같이 가파른 벼랑을 타고 올라가 성안에서 성문을 열었다. 그 동안 사데 성 주민들은 난공 불락의 벼랑만 믿고 단잠을 자고 있었다. (109.6)
 책망
 요한의 시대에 살았던 사데 교인들은 안전하다 안전하다 하면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예수께서 이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일깨지 않으면 내가 도적같이 임하리라”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하셨다. (1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