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2, 3 — 그리스도께서 일곱 교회에 편지하심 1. 그리스도께서 그을음 투성인 교회를 돌보심
 

고린도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교 신전에서 베풀어지는 연회에 참석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확신했으며 다른 그리스도인들까지 꾀어서 함께 데려가려 하였다.
(105.5)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니골라 당이 아니다! (106.1)
 보상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106.2)
 여러 비서구적인 문화권에서는 사람의 이름을 선택할 때 그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 혹은 그 사람의 생활에 일어난 사건을 고려한다. 여러 해 후에, 그 사람의 성격이나 경력에 변화가 발생하여 이름이 변경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106.3)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시몬의 이름을 시몬 베드로로 고치셨는데 이는 그의 개성이 돌이나 바위와 같은 것을 나타내려 하심이었다(막 3:16; 마 16:18). 베드로는 “돌”을 뜻한다. (106.4)
 그리스도의 이름 예수는 “구원하는 사람”을 뜻한다(마 1:21). (106.5)
 구약에 나오는 야곱이란 이름은 속임수로 다른 사람의 자리를 차지한 “찬탈자”란 나쁜 뜻을 가지고 있다. 야곱은 “교활한 사나이” 였다. 그러나, 그는 변화했다. 그가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하여 이긴 후에 그의 이름은 “이스라엘”로 바뀌어졌다. 하나님의 천사가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 32:28) 하였다. 야곱은 이제 사기꾼이 아니었다. 따라서 더 이상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승리자, 이긴자, 정복자로 부르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이런 이름에 합당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긴자, 승리자, 정복자 곧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 (106.6)
 우리는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교활한 사람들이 아닌가? 발람의 무리나 니골라 당의 무리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내 권리라고 주장할 그럴듯한 구실을 찾는 데 명수가 아닌가? 그러나, 우리가 성경 연구와 기도를 통해 신앙으로 하나님을 굳게 붙들면 우리도 변화되어 이기는 자, 승리자, 정복자, 곧 이스라엘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이 그 때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신다. (106.7)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추인 만나” 를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구약에 보면 “만나” 라고 하는 신비스럽고 영양분이 있는 식품이 소개된다. 이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여행하는 동안 매일 아침(안식일을 제외하고) 광야에 이슬처럼 내렸다. 요한복음 6장 31~35절에서 예수님은 그의 무리에게 그분 자신이 영적 의미에서 하늘에서 내린 진정한 떡 곧 만나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우리가 니골라 당이나 발람의 무리와는 달리 의심스러운 활동이나 오락에 끼기를 거부한다면 매일마다 “만나를 모으는” 시간, 즉 성경을 연구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삼는 시간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106.8)
 4. 이세벨을 용납한 두아디라 교회(계 2:18~29)
 배경
 두아디라 시(市)는 에베소나 서머나같은 항구 도시가 아니었다. 버가모처럼 산악으로 둘러싸이지도 않고 완만한 언덕에 자리잡은 도시였다. 두 계곡이 만나는 국도(國道)변에 위치했기 때문에 상업이 융성했다. 염색공들과 상인들은 근처에서 자라는 꼭두서니 나무 뿌리를 이용한 연붉은 염색 사업으로 분주했다. 이 물감은 고대 세계에서 자주색으로 알려진 것이다. 빌립보에서 그리스도를 신앙하게된 “루디아”라는 여자 상인도, 두아디라에서 구입한 자주 상품 즉 연붉은 빛깔의 직물과 물감을 팔고 있었다(행 16:11~15). (106.9)
 칭찬
 그리스도는 두아디라 교회에게 그들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칭찬하셨다. 그분은 그들의 선행이 세월과 함께 더 나아진 것을 주목하셨다.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 2:19)고 하셨다. (106.10)
 책망
 두아디라 교회는 여러 가지 선행과 창찬받을 만한 덕성들을 갖추고 있었으나, 라오디게아 교회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교회보다도 하늘의 등불 관리자의 도움을 많이 필요로하고 있었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을 배척했고 일부 버가모 교인만이 발람의 무리를 용납했던 반면 두아디라 교회는 전체가 교인들을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하는” 거짓 여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했던 것이다(계 2:20). (107.1)
 역사상의 이세벨은 발람과 마찬가지로 구약 성경에서 악명 높은 사람이다. 그는 북방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결혼하여 이스라엘의 여왕이 되었다. 이방 나라인 두로 왕의 딸이었던 이세벨은 이스라엘로 시집오면서 이교 사제들을 데리고 왔으며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꾀어 부도덕한 바알 신(神) 예배에 참예케 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굳게 선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순교시켰다(왕상 16~21장). (107.2)
 두아디라 교회에 발생된 이세벨 문제 즉 부도덕성과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은 똑같이 이방 문화와의 타협과 관계된 문제로서 니골라 당과 발람의 무리들이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타협의 정도는 황폐스러울 만큼 심각했다. 이세벨의 반역은 무르익어 갔다. 회개의 기회가 부여되었는데도 그는 완강히 자신의 길을 고집하였다. (107.3)
 그 결과, 그는 끔찍한 병을 앓게 되었다. 부절제로 인한 병이었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터이”라.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그의 무리들이 큰 환난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1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