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2, 3 — 그리스도께서 일곱 교회에 편지하심 1. 그리스도께서 그을음 투성인 교회를 돌보심
 배경
 버가모 시(市)는 외침에 대한 방비가 용이한 높은 산 위에 위치했다. 기원 전 2, 3 세기에는 버가모 왕국의 수도였으며 뛰어난 문화 중심지였다. 그 도서관에는 20만 권의 장서가 소장되어 있었다. 이 두루마리 장서 중 상당수는 양질의 양피지로 된 것들이었다. 양피지 산업은 이집트와 프톨레마이오스 5세가 파피루스 두루마리의 유출을 금지시킨 이후 버가모에서 발달했다. 경제적 제재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별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경제적 제재는 더 나은 상품을 제조하려는 경쟁심을 유발시켰다. 양피지는 버가모의 개량품이다. (103.6)
 국왕 아탈루스 3세(Attalus III)는 자신의 사망과 동시에 버가모를 로마 제국에 합병시키도록 유언에 명시했다. (103.7)
 기원 전 113년에 이 병합이 이루어졌다. 이제 버가모는 아시아 속령의 새 수도로써 로마 총독의 주재지(駐在地)가 되었다. 세월과 함께 버가모에는 여러 이교의 사원들이 건립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봉헌된 신전이 최초의 것이며 후에 트라야누스(Trajan) 황제를 위한 신전이 건립되었고, 훨씬 후에 세베루스(Severus) 황제의 신전도 건립되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황제 숭배의 강요는 요한의 시대에 광범위한 박해를 유발했으며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104.1)
 예수님께서 버가모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안다”“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 하셨다. (104.2)
 칭찬
 그리스도는 버가모 교회가 그처럼 불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칭찬하셨다. 안디바가 누군지 궁금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알려진 것이 없다. 이 충성스러운 증인이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으로부터 “나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라는 칭찬을 들을 때 얼마나 기쁠 것인가? (104.3)
 책망
 안디바는 칭찬을 들었으나 버가모의 다른 교인들은 칭찬을 들을 수가 없었다. 버가모 교회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발람은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하였”던 자였다. 예수님은 이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하셨다. (104.4)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을 배척하였는데 버가모 교회는 그렇치 못했다. 에베소 교회를 이야기할 때 말했듯이 니골라 당은 예수를 믿으면 간음이나 우상에 관한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있다. 발람의 가르침과 유사했다. (104.5)
 “발람”은 여기서 은유로 사용되었다. 역사상의 발람은 구약의 악명 높은 선지자였다(민 25:1~9, 31:16). 발람은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섬긴 후에 모압의 왕 발락의 뇌물을 받았다. 발락은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게 하여 전쟁에서 모압 족을 이기지 못하게 하려 했다. (104.6)
 하나님은 발람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지 못하도록 기적으로 막았다. 그러나, 발람은 뇌물을 놓치지 않으려고 단호히 결심한 나머지 발락 왕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을 술과 여자들이 준비된 이교의 축제론 초청케 하였다. 그 축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크게 탈선케할 수만 있다면 그때는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을 저주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4.7)
 발락은 발람의 음험한 충고를 따랐고 상당 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혹에 넘어졌다. 물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발람과 야합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목매달라고 요구하셨다. 수천 명의 이스라엘측 참가자들도 질병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104.8)
 요한계시록 2장 16절에서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의 지도자(“천사”)로 하여금 발람의 당에게 “회개하여” 생활을 돌이키도록 촉구하기를 원하셨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가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엄숙히 경고하셨다. (104.9)
 버가모 교회의 사정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부딪쳤던 이와 유사한 사정을 감안한다면 좀더 이해가 쉬워질 것이다. (104.10)
 고린도의 이교 사원에서는 사회 클럽과 상인 조합들이 후원하는 대중 연회가 자주 개최되었다. 이교 신전들은 매력적인 곳인데다가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에 충분한 공간과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우상이란 것은 미신과 같은 것으로서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며 그리스도는 그 죽으심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104.11)
 그들은 신전 연회에 참석하고 싶어서 참석한다고 해서 그들의 신앙에 해가 될 것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그러한 행동이 시험이 되어 심신이 연약한 형제들이 이교주의에 완전히 빠져들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책임이라는 것이다(고전 8:4~13). (105.1)
 사도 바울은 우상들이 아무런 인격적 현존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마귀는 인격적 존재라고 대답했다. 이교의 축제에 참석하는 것은 주님의 만찬에 가는 대신에 마귀의 만찬에 참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도 좋지만 그 자유가 약한 그리스도인들로 죄에 빠지게 하는 시험거리로 사용된다면 이는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구원한 사람을 멸망케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고전 10:14~33, 8:9~13). (105.2)
 분명히 버가모 교회가 예수님을 고통스럽게한 문제는 이와같이 왜곡된 기독교의 가르침 즉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심지어 그 행위가 십계명에 위배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의 자유이며, 우리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나쁜 영향을 끼치든 그것은 그들이 책임이지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상이었다. (105.3)
 그러나, 오늘날도 버가모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나쁜 습관에 빠질 수 있는 시험거리를 안기기 보다는 차라리 문제가 될만한 오락 장소를 멀리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신앙의 뿌리가 약한 사람들에게 읽고 보는 문제로 상처를 입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독서나 TV 프로그램의 선택에 신중을 기하는, 성숙한 신자들이 있는 것이다. (1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