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바울은 위기일발의 상황에 직면한 사람에게 하듯 권고하고 있다. ‘정신을 차리라!’(2:1), ‘생각하라!’(3:1), ‘단단히 붙들라!’(3:6, 14; 6:18), ‘열심을 내라!’(4:11; 6:11), ‘피차에 권면하라!’(3:13; 10:25; 13:19, 22), ‘상기하라!’(10:32), ‘참으라!’(10:36; 12:1). (15.1)
 6. 중심내용
 1)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지존하심과 인성의 우월성은 이 책에 나타난 경륜들의 기조가 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3).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속성이시며 하나님의 본체 및 본질의 형상이셨다. (15.2)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임과 동시에 완전한 인성을 동시에 지닌 분이셨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그가 인성 가운데 계실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이시며 그 보좌는 영원하’(1:8)신 분이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천사 중 어느 누구보다도, 어떤 형제들보다도 크신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인성의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은 분으로서 그들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 모세, 혹은 여호수아보다 뛰어나신 아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분의 인성은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5:8-9)신 구원의 근원으로서의 인성이었고, 인류의 선두로서의 인성이었다. 그의 육신 안에서 모든 죄는 정복을 당하였고,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을 이기심으로 그분은 하나님 앞에서 인류의 맏아들이 되셨다(1:9; 4:15). 그는 인성으로 율법을 마음에 두시고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셨다(10:7, 16). 그는 죄 없는 완전한 인성으로서 대제사장이 되셨다(10:26, 28). 그러므로 그는 단번에 모든 죄를 정결하게 하시고(10:10)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영원히 온전하게 하”(10:10)실 수 있으시다. (15.3)
 2) 하늘 성소의 유일하신 중보자
 땅의 대제사장(3:1; 4:14~5:10; 6:19~8:6; 9:6~10:22; 13:11~13)은 1년에 한 번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지만, 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신다. 우리가 기도하면 항상 들으시는 분이시다. (16.1)
 3) 지성소에 들어가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제시
 구약의 희생제물은 완전해야 했다(1:3; 2:9; 7:27; 9:12~14, 24~28; 10:5~22). 하나님의 성전에 드려지는 예물이 완전해야 했던 것처럼 그리스도는 완전하셨다. 그의 생애가 완전했기 때문에 지금은 하나님 앞에 인성을 대표하는 분으로 서 계실 수 있으시다. 우리는 앞서 가신 예수님을 따라 그분께서 계신 곳에 들어가야 한다. 히브리서는 ‘죄로부터 정결케 된 양심’만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완전한 믿음’(10:19-22)이라고 강조한다. 로마서의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는 권고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히 10:22)가라는 히브리서의 권면과도 같다. (16.2)
 또한 생활 속에서의 실천적인 믿음은 하나님의 순례 백성을 특징 짓는 특성이다. 많은 믿음의 노독들이 비난과 박해와 고문과 순교를 당하였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환경이나 보상에 관계없이 완전한 믿음 안에서 그분께 나아오고, 또한 완전한 믿음으로 살기를 바라신다. (16.3)
 4) 죄는 심각한 문제임
 히브리서는 죄를 가지고는 하늘에 갈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스도는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9:28)만을 데리러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이기 때문이다. 옛 언약 시대의 율법 아래의 죄보다 새 언약 아래서의 죄는 더욱 큰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한다. 옛 언약은 짐승의 피로 체결된 반면에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체결되었기 때문이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10:28~29). (17.1)
 뿐만 아니라 연속적으로 고의적인 죄를 범하면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되는 것을 경고한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10:26)다. (17.2)
 더욱 진리를 많이 알고 범죄한 자는 그 형벌이 크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6:6)이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17.3)
 5) 순례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생애
 그리스도인들은 외국인과 나그네(11:13)로서 이 땅에 잠시 순례의 장막을 치고 있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11:16). (17.4)
 6) 예수님은 언약에 대한 보증
 히브리서는 하나님을 언약(4:1~11; 6:13~20; 7:18~25; 8:6~9:22; 10:15~16)의 하나님으로 나타낸다. 옛적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거룩한 ‘언약’(covenant)을 맺으셨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후손들은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얻으리라는 언약을 받았다(창 12:7; 15:7; 15:18; 24:7). 그 언약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좇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대마다 반복적으로 제공되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롬 4:13)이라고 말했고, 히브리서에서는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4:1)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안식에 들어갈 약속’을 누리는 것은 ‘세상의 후사가 될 자’들의 경험이 된다. (17.5)
 ‘가나안의 안식’은 현재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가야 할 ‘하나님의 안식’에 대한 모형이다. 모세는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중보적 모델(출 34:17)이었다. 하나님의 언약의 완전한 성취를 위해서는 원형이요 약속의 “씨”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야 하였고(신 18:15; 3:21-22), 예수께서 그 일을 이루심으로 그들을 영원한 안식으로 데려가실 보증이 되셨다. 그러므로 새 언약 시대인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약속이 아직 남아 있는 때이다. 지금은 그 안식에 들어가는 때이다. (18.1)
 오늘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경험은 ‘안식일 안식’‘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는 안식이다. ‘안식일 안식’은 주께서 우리의 창조주로서 주시는 안식의 경험이며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 얻는 안식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주시는 안식이다. 안식일 안식이 시간의 성소에 들어가는 경험이라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안식은 공간의 성소에 들어가는 경험이다.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