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에 대하여 이해하려면 그 남은 자가 속해 있던 집단에 대한 명확한 묘사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단원은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특별한 역할과 기능에 대한 연구로 시작해야 한다. (974.1)
 A. 이스라엘의 역할
 이스라엘의 역할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종교적 본성과 신학적 의미에 의해 결정된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된다. 한편으로 그것은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를 의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 회중인 야훼의 백성을 지칭한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처음부터 종교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그것은 족장 야곱이 끈질기게 주님께 축복을 간청했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이름이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 32:28;참조 35:9, 10; 호 12:3, 4). 따라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이 드러났다. 그것은 야곱이 하나님과 맺은 새로운 영적 관계를 상징하며, 하나님의 용서하는 은혜로 야곱이 그분과 화목하게 되었음을 표현한 것이다. 용서받고 나서, 야곱의 이름은 “그의 죄를 상기시키는 것으로부터 그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부조와 선지자, 198). 간단히 말해서, 처음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화해를 이룬 개인적인 관계를 상징한다. (975.1)
 구약은 줄곧 이렇게 성스러운 그 이름의 기원이 높은 부르심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예언자 호세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야훼와 씨름한 것이 배도한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라고 지적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앗수르와 애굽의 군마(軍馬)를 더 많이 신뢰하고 있었다.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호 12:6; 참조 3-6절; 14:1-3). 바꿔 말해서, 온 이스라엘이 세상의 빛이 되고 언약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야곱과 같은 하나님과의 종교적 만남과 그 변혁의 경험을 추구해야 한다. (975.2)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모세가 바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에 본질적으로 표현되었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이스라엘은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경배하게] 하라”(출 4:22-23).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그분의 계시된 뜻에 따라 야훼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부름 받았다. 이스라엘은 인종적, 도덕적 또는 정치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을 받기 위해 그분께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신 7:6-9) 다른 모든 나라와 달랐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오로지 그분 자신에게만 결속시키기 위하여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구속하셨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4-6). (975.3)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고 구속함을 받았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하나님과 이방 나라들 사이에 제사장 즉 중보자가 되도록 구별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치명적인 적으로부터 은혜로 구원받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민족들의 구원을 위해 구원받았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이 깊이 종교적인 사명임을 가르친다. 그들은 “하나님 야훼의 자녀”(신 14:1)로서 그들과 언약 맺은 하나님을 전심을 다하여 사랑하고(신 6:5), 기꺼이 그분께 순종하고(6-9, 18절), 그분만을 경배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속 행위에 응답해야 했다. 이러한 종교적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도록, 즉 “너는 네 하나님 야훼 앞에서 완전하라[타밈]”(신 18:13; 13:1-5; 출 20:1-3)는 부름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선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도덕적인 순종에 앞서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었다는 점이다. 모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야훼의 백성이 되었으니 그런즉 네 하나님 야훼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신 27:9, 10). (975.4)
 출애굽 이후로 줄곧 이스라엘은 하나의 민족 집단 이상의 존재였다. 일차적으로 그들은 구속 받은 백성이었으며, 토라에 체현(體現)된 야훼의 거룩한 계시안에서 일치와 사명을 발견한 종교 공동체였다. 하나님 자신의 말씀과 행동은 이스라엘을 예배하는 회중 또는 집회(카할)로 격상시켜서, 구원하고 성결하게 하는 지식을 나머지 인류와 공유하게 했다. (976.1)
 세겜에서 여호수아는 나중 세대를 위해 야훼만을 독점적으로 숭배하는 데 대한 이스라엘의 헌신을 갱신하였다 이 언약을 갱신하면서, 이스라엘은 구속주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따라 그들의 마음을 소생시키고 삶을 개혁하기로 다짐했다.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야훼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하는지라”(수 24:24).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소를 중심으로 하는 연례 절기들의 거룩한 예식을 통하여 계속해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갱신하였다. 그렇게 그 예배의 절기들은 출애굽의 구속과 자유에 대한 그들의 참여를 되살리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로 끊임없이 되돌려 놓았다. (976.2)
 시편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야훼께 예배드리는 집회를 가리키는 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50번 이상 사용한다(시 147:19, 20; 148:14; 149:2). 시편은 이스라엘의 종교가 모세의 토라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노래들은 과거의 하나님의 구속 행위를 기념할 뿐만 아니라, 그분이 주시는 모든 혜택에 대하여 야훼를 찬양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부르심과 선택의 본질임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쳐준다(시 103). 시편 기자들은 예루살렘이나 다윗이나 이스라엘이 아니라, 만유의 창조주이시며 이스라엘의 구속주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린다. 그분은 시온 산을 그분의 우주적인 왕국을 위한 지상의 중심으로서 선택하셨다(시 2:87). (976.3)
 에스겔은 “주 야훼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겔 5:5)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예배는 기본적으로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메시아, 즉 왕-제사장에 대한 소망에서 영감을 받았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3; 참조 갈 3:8). (976.4)
 이스라엘의 시편의 궁극적인 염원은 온 인류가야훼의 주권적 통치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야훼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 150:6). 위대한 역사적 시편들(77, 78, 105, 106, 107편)은 그들의 역사가 대체로 하나님이 주도하신 구원의 계획에 적절히 응답하지 못한 기록임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쳐주었다. 에스겔은 반역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이스라엘 역사의 거울을 배도한 예루살렘 앞에 보여 준다(겔 16:23). 선지자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을 반항적이고 불순종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하나님의 백성을 구성하는 충성스러운 남은 자가 여전히 있고,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의 대상이 되었다. (976.5)
 이스라엘을 통해 열방을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성취될 것이나, 하나님의 혁신적인 방법으로, 즉 이스라엘의 신실한남은 자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남은 자들은 세상을 계몽하는 언약의 약속과 책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목적은 유효하고, 성취될 것이다. 앗수르와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선지자들의 예측은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국가가 아니라(겔 20:32-38), 회복된 신정국가이며 영적으로 정화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에 초점을 둔다(사 56장; 겔 36장; 렘 31장). (976.6)
 유수기 후의 이스라엘은 왕의 보좌가 아니라, 재건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 공동체였다. 말라기는,“야훼를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사람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만이 마지막 심판에서 하나님 자신의 보배로운 소유로 인정된다는 점을 강조했다(말 3:16- 4:3). 미래의 남은 자들에 대한 구약의 약속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언약 축복이 실현되리라, 함을 확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국가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오직 야훼께 신실하며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신뢰하는 선택된 이스라엘을 통해서만 그러하다. 이스라엘의 사명의 근본적인 목적은 이사야의 예언적인 “야훼의 종에 관한 노래” 네 편에서(사 42:1-4; 49:1-6; 50:4-10; 52:13- 53:12)에서 가장 명확해진다. 여기서 그 종은 이스라엘의 신실한 메시아를 상징하며, 그는 이스라엘의 대표로서 그 백성을 체현하고 있다. 이스라엘 전체가 선교사 공동체로 부름 받았지만 궁극적으로 오직 한 사람만 이사야가 서술한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 선택 받은 종은 참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것(사 42:1-4)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실한 남은 자들을 하나님께 모으는 일로 야훼를 섬기게 될 것이다(사 49:5, 6). 이사야는 “맹인”이며 “못 듣는” 야훼의 종이었던 이스라엘(사 42:19, 20)과 야훼께 순종하는 고난 받는 종(42:1-4; 49:1-6; 50:4-10; 52:13-53:12)을 구분했다. F F. 브루스(86)가 말했듯이 “그러나 그 종이 어떤 면에서는 이스라엘의 대표자 또는 체현인 반면, 그는 그 국가 전체와는 구분된다. 참으로 그의 사명은 일차적으로 그들을 향한 것이었지만,(나아가) 이방 세계로도 향한다. 그 종 개인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강화되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반대에 의한 거짓 혐의에 대해 정당함을 옹호 받는다(사 50:4-9). 야훼의 종의 네 번째 노래, 이사야 52:13- 53:12는 그 종을 자세히 묘사한다. 그는 고난과 멸시 뿐만 아니라 순종의 최고 행위로서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며, 그 행위로써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사람들에게 축복과 해방을 보장해 줄 것이다.”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야훼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야훼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8-10). 그러므로 이방인들을 위하여 이스라엘에게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은 좌절되거나 연기되지 않고, 메시아를 통하여 성공하였다(사 53:10). (976.7)
 B. 이스라엘의 남은 자
 구약에서는 “남은 자”(셰아르, 셔에리트)라는 말을 사용하여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즉

   (1) 역사적의 남은 자, 재앙의 생존자

   (2) 하나님과 적극적인 언약의 관계를 유지하고 하나님의 선택 약속을 수행하는 신실한 남은 자

   (3) 미래에 메시아의 충실한 신자들로 구성된 종말론적 남은 자로서, 교회 시대가 끝날 때까지 인내하고 궁극적으로 승리를 얻는다.

 성경에서 “남은 자” 모티프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며 구약의 매 책마다 발견된다. 그 용어는 구약에서만 540번 이상 사용된다. (977.1)
 1. 역사적 남은 자
 종종 “남은 자”는 어떤 국가적인 재앙으로 살아남은 이스라엘(또는 유다)의 역사적 생존자들을 가리킨다(왕하 19:31; 25:11; 대하 34:21; 렘 24:8; 52:15; 겔 9:8; 11:13).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이 BC 586년에 바벨론으로 추방되었을 때, 유다 땅에 남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왕하 25:22; 렘 40-44장). 이 마지막 남은 자들이 애굽으로 피신했을 때, 예레미야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렘 42:17; 44:7)고 예언했다. 나중에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 바벨론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간 유대인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수기 후의 선지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남은 백성으로 묘사되었다(학 1:12, 14; 2:2; 슥 8:6, 11, 12). 이 구절에서 “남은 자”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의 국가적 재앙의 생존자를 지칭한다. 그 남은 자에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새로운 언약 관계를 세우고,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는다(슥 8:3). (977.2)
 2. 신실한 남은 자
 남은 자 사상은 선지서에서 명시적으로 신학적 특성을 띤다. 남은 자 모티프를 선지자들이 신학적으로 사용하는 한 예가 엘리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야훼께 충성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정치적 국가 또는 민족으로서는 자동적으로 충실한 남은 자들과 동일시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그분을 경배하는 자들만이 이스라엘 내의 신실한 남은 자들이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하나님의 남은 백성은 온 마음을 다하여 그들의 언약의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것이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었다(신 30:1-3; 왕하 21:14, 15; 대하 30:6). 대표적인 예가 그 시대의 남은 자에 대한 스가랴의 호소이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야훼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슥 1:3). 하나님의 응답은 회개한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그분의 거룩한 칭의의 행위에 묘사된다(슥 3:3-5). 에스라는 유수 후 남은 자의 진실한 회개의 태도를 이렇게 표현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스 9:15). (978.1)
 에스라의 간구는 하나님의 남은 백성에게 겸손하고 회개하는 태도가 지속적으로 필요함을 나타낸다.그러한 남은 자는 언약 약속과 책임을 둘 다 지닌다. 모든 문서 선지자들은 국가적인 이스라엘 안에 배교한 이스라엘과 신실한 남은 자를 구분한다. BC 8세기에 기록된 아모스와 이사야는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면서 구체적인 남은 자 신학을 발전시켰다. 이모스는 임박한 야훼의 날에 북방 왕국(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종말을 맞을 것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그들이 그분을 찾고 선을 구한다면(4, 6, 14절) 하나님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암 5:15)라는 희망을 나타냈다. 그와 같이 아모스는 이스라엘 전체가 언약적 축복을 자동적으로 확보하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면제된다는 대중적 견해와 단절하였다(18-27절). 그는 이스라엘이 택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오용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하나님의 약속이 무조건적이라는 생각은 틀렸음을 폭로했다(암 3:2; 9:7-10). (9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