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심판
 몇몇 근대 사상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심판과 대립시켜서 이해한다. 사랑과 심판사이의 이러한 이분법은 이미 2세기에 그리스도교 이단인 마르키온에 의해 표현되었다. (965.8)
 현대의 입장은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분이라는 것을 고수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미래심판에 대한 종말론적이고 마지막 때의 개념은 현대에는 적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고대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에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랑의 하나님의 사상을 강조함으로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들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새로운 결론에 이르게 한다 어떤 신학자들은 사랑이 하나님의 본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지배적인 힘이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은 멸망시키실 수 없다고 말한다. (965.9)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조화를 이루어 심판을 하나님께 반역한 자들로부터 하나님이 떠나는 것이라고 재해석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인간은 스스로 타락하게 되고 마침내 멸망을 자초하게된다. 하나님의 떠나심이 심판이다. 그들은 사랑의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정죄하거나 처벌하지 않으며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현대의 이러한 신학적인 견해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와 의를 서로 적대적인것으로 본다. 이러한 견해는 적어도 부분적인 면에서 죄와 그 결과물인 악에 대한 하나님의 적대심의 심각성을 부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인간 행위와 그 결과 사이의 도덕적인 관계를 부인한다. 그것은 죄인을 대신하여 죄인을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죽음의 필요성을 부인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신 것이 아니고 그분은 우리의 대속자가 아니라 단순히 대표적인 인간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또한 죄인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이 있으며 하나님은 심판 때에 그 죄의 결과를 다루실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이러한 부인은 성경의 계시에 나타난 매우 핵심적인 부분들 곧, 죄와 심판의 본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본질 그리고 성경적인 종말의 본질을 파괴시킨다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품성의 다른 속성들로부터 분리되어 최고의 지도 원칙과 최고의 기준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사랑은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인간의 온갖 악한 영향과 추함과 상관없이 온갖 종류의 인간행위를 모두 덮어주며 모든 것을 수용하는 가림 막으로 확장되어 버린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성경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 현대 사상의 철학적인 관념들에 기초하여 사랑은 추상적인 원칙이 되고 만다. 다시 말하면 사랑은 “정경 속의 정경”이 되어서 최고의 기준이 되며 성경의 다른 부분들은 구식이고 원시적이고 열등하며 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재해석되어야 하는 것으로 전락되어 버린다. 이러한 과정들의 최종결과로 성경의 전체 계시와 관계가 없고 아주 동떨어진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을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965.10)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하나님의 보응은 어떠한 충돌도 없이 역동적으로 서로 교류하는 속성들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대쟁투의 결론에 대해 하나님과 그분의 행동을 제한하는 현대적인 개념들보다 훨씬 풍부하고 더 심오한 것을 보여 준다. (966.1)
 하나님의 말씀은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과 의로운 자들의 옹호가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심판의 모든 국면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은 만물의 재판장이시며 심지어 그분의 심판과 그분의 존재에 대해 사람들이 상상으로 세운 가설까지도 심판하신다. (966.2)
 b. 보편구원론과 하나님의 심판
 과거와 현재의 많은 사상가들이 모든 인류가 마침내 구원받게 된다는 보편구원론을 주장해왔다. 어떤 사상가들은 성경 자체가 모든 인간 존재의 구원의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나타나는 그분의 공평과 정의의 문자 그대로의 요구 조건보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목적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배도하는 상태에 머무르는 죄인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 것에 하나님은 얽매이지 않는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966.3)
 역사적으로, 모든 인간 존재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지 구원 받을 것이라는 가르침인 보편구원론은 최종구원론(아포카타스타시스)으로 알려져 있다. 이이론은 신약시대 이후에 닛사의 그레고리우스와 스코투스 에리게나(Scotus Erigena), 근원적 종교개혁 시대에 한스 뎅크(Hans Denck) 의해 그리고 현대 신학에서 쉴라이어마허, 스키너, 카를 바르트와 다른 신학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966.4)
 모든 인간을 최종적으로 구원한다는 보편구원론은 몇몇 성경 구절(롬 5:18, 19; 고전 15:22; 엡 1:9, 10)의 잘못된 적용과 해석에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보편구원론은 성경의 어떤 가르침들을 부인하고 잘못 적용하는 것이다. 보편구원론은 악한 자들의 마지막 심판을 부인하며 이에 따라 당연히 하나님의 죄에 대한 보웅을 부인한다. 그것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당할 영원한 죽음에 대해서도 부인하다. 그것은 마지막에 구원 받는 자와구원 받지 못하는자의 두 부류가 있음을 부인한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둘째 사망”을 부인한다. (966.5)
 보편구원론은 성경 계시의 진리에서 떠난다. 그것은 성경의 모든 진리를 아우를 수 없다. 보편구원론은 겉보기에 매력적인 특징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의 진리를 축소시키는 또 따른 형태이다. 그것은 점진적인 계시에 대한 비성경적인 관점을 받아들이거나 현대 신학적인 입장에 일치하지 않는 성경의 부분들은 성경에 대한 낡은 이해로 치부해 버리는 관점에서만 통하는 것이다. (967.1)
 현대의 정신이 침투하여 형성된 신학의 이러한 경향은 성경 자체의 증거에 비추어볼 때 합당하지 않다. 심판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은 심판이 변덕스럽지 않고 감정적이지 않으며 그것은 원시적이지도 않고 신화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심판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실제적이며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그것은 성경에서 부수적인 주제가 아니다. 심판은 죄의 문제와 그 해결,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 사랑과 심판의 연합 무죄한 자의 고통의 문제, 구원의 문제 그리고 기타 등등에 깊게 연관되어 있다 심판은 주변적이고 중요하지 않으며 구시대적이고 원시적인 어떤 것처럼 한쪽으로 밀쳐두어도 되는 것이거나 그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되는 그런 주제가 아니다. 심판 없는 구원은 헛된 것처럼 심판은 구원에 포함되어 있다. (967.2)
 이 시대의 심각한 도덕적 타락의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의 심판 주제는 매우 의미가 깊다. 악한 자들이그들의 웅당한 대가를 받을 것인가? 대량 학살자와 오늘날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살인범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을 것인가? 인간의 정의 실현에는 한계가 있지만 모든 일들이 온전히 이해될 완전하고 정의로우며 총체적인 심판이 참으로 있을 것인가? 이와 같은 그리고 이와 유사한 많은 질문들이 오늘날 제기되고 있으며 그것은 응당 질문해 보아야 할 것들이다. (967.3)
 불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다루는 신정론의 주제는 현대 사상가들을 크게 불쾌하게 만드는 원인이며, 불가지론과 무신론으로 기울어지는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의 해결할 수 없는 불공평의 문제에서 핵심 요소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한 복음”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는 것이다(계 14:6). (967.4)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7절)는 명령과 더불어 창조주를 경배하라 는 마지막 부르심은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을 선언하라고 요구한다. 심판은 “영원한 복음”(6절)의 한 부분이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심판은 땅에 거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힘 있게 전해져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선포는 그분의 공의에 대한 선포와 병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선언은 항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그들이 심판대 앞에서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Buchsel 941) (967.5)
 2. 복음주의 신학의 경향
 복음주의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주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세대주의자들은 전환란, 중환란 그리고 휴거설 등 그들 자신이 가진 묵시적 종말론의 토대에서 마지막 심판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각각의 이러한 이론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심판,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민족들에 대한 심판, 대환난 심판들, 재림에 관련된 심판, “크고 흰 보좌”에서의 심판 그리고 사탄과 그의 천사들과 죄인들에 대한 마지막 심판 등 여러 해석들이 있다(참조Pentecost 156-218; 412-426). (967.6)
 비세 대주의 복음주의자들은 무천년주의자들(예를들면, Konig 128-137)이든지 아니면 천년 전 재림론자들(참조 Ladd 87-102; Martin 1977, 187-205)이든지간에 큰 차이 없이 일반적으로 최후의 심판을 고수한다. 무천년주의자들은 문자적인 미래의 실제적 천년기를 고수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심판을 그리스도 재림 때로 귀결시킨다. 반면에 천년 전 재림론자들은 재림 때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과 천년기 끝에 있을 악인의 영원한 형벌 선고를 내리는 “크고 흰 보좌”에서의 심판을 지지한다. (968.1)
 C. 재림교회의 이해
 최후 심판에 관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가르침은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두 가지 교리에 대한 초기 역사 발전에 대한 간단한 개요는 ‘성소’ V. D를 참조하라. (9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