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떠남으로 초래될 사망의 길의 실상을 보게 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죄악의 길을 고집한다면 그들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며 그 결과 하나님이 그들에게 내릴 멸망과 죽음을 맞게 될 것임을 그들은 알아야 하였다. 심판은 또한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세우는 기능을 하였다. 하나님은 찌끼를 정결하게 하고 혼잡물을 제거하기 위한 정련의 불로 심판을 사용하신다(사 1:22-25). 심판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들의 악한 행위에 대해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었다. 그들의 죄와 허물과 악은 정의를 위해 처리되어야 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하였다. (939.1)
 이스라엘은 반역의 길을 고집했고 심판을 맞이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많은 기별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방 이스라엘은 마침내 BC 722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남방 유다도 많은 선지자들의 경고와 권면의 목소리를 거절함으로 결국 BC 586년에 피할 수도 있었던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939.2)
 유명한 다니엘의 기도에는(단 9:4-19)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4절) 하나님이 나온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저지른 “배도”에 대해 말한다(7절). 다니엘의 기도는 또한 이스라엘이 “그의 종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복종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10절). 다니엘은 “주의 율법을 범하고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다면서 언약의 저주에 대해 말한다(10절). 그러면서 모든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구하며(9, 19절), 하나님의 “큰 긍휼”을 구한다(18절).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동정과 자비와 은혜를 이스라엘에게 베푸사 그들로 예루살렘과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하시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하신다(스 1:2-4; 6:6-12; 7:11-26; 느 1, 2). “칠십 이레” 또는 490년(III. B. 1. a. [2])의 특별한 은혜의 유예 기간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 이 기간의 끝에 오실 메시아는 죽임을 당할 것이고 “제사와 예물”은 폐지될 것이다(단 9:24-27). 이 모든 경험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분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기꺼이 순종하고자 할 때마다 그의 백성들을 지도하셨다. 그분은 자신의 신비한 방식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궁극적으로 주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악에 대해 눈감아 주시고 인간이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이 그들을 사랑하시는 감성적이고 사랑이 많은 신이라는 오늘날의 보편화된 믿음은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과는 전혀 일치되지 않는다. (939.3)
 C. 재판장으로서의 하나님의 지위
 성경의 일관된 증언은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사탄과 그의 악한 천사들뿐 아니라 인간들에게 그들이 행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재판장으로서의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의 지위에 대해 말하는 주요 구절들을 살펴 보고자 한다. (939.4)
 아브라함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쇼페트]가 공의[미쉬파트]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라고 하나님께 질문을 제기한다. 하나님을 가리켜“세상을 심판하시는 이”라고 말하는 이런 강력한 선언은 하나님은“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939.5)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계시하셨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6, 7).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심판, 사랑과 처벌을 상호 연계시키신다. 그는 또한 은혜롭고 자비로운 하나님께서는 죄 지은 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내버려두지 않는 의로운 재판장이시라는 것을 선언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곳곳에 나타나 있다(민 14:18; 신 5:10; 시 86:15; 욜 2:13; 욘 4:2; 나 1:3). (939.6)
 십계명의 제2 계명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하실 것이라고 명백히 선언한다(출 20:5). 하나님은 재판장이시며 그분은 사랑과 긍휼을 가지고 심판하신다 오직 “나를 미워하는 자”(시 69:4),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를 거절한 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940.1)
 시편 기자들은 재판장이신 하나님에 대해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야훼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시 9:7, 8). 그분이 “의로운 재판장”(시 7:11)이기 때문에 “공의로”[미쉬파트] 그리고 “의로움으로”[체데크 ] 세상을 심판하신다. 그의 보좌의 기초는 “의와 공의”(시 89:14; 참조 97:2)이다.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재판장이심이로다”(시 50:6). 주는 “땅을 심판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시 96:13).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시 82:8)라고 기도한다. (940.2)
 선지자 이사야는 “대저 야훼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야훼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야훼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사 33:22)고 말한다. 재판장—입법자—왕—구원자라는 순서는 포괄성과 절묘한 간결성에 있어서 매우 놀랍다. (940.3)
 하늘의 재판장은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사람이 볼수 없는 것을볼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에 대한 모든 동기와 이유를 다 아신다. 그분은 인간의 내면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 동기의 측면 그리고 인간성의 일부인 유전적인 측면의 모든 면까지 이해하고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시편 기자는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시 44:21)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야훼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들 즉 학대받고 억압당하는 자들을 옹호하신다(시 10:18; 35:24). 다윗은 사울 왕의 생명을 살려준 후 사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야훼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야훼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삼상 24:12). 다윗은 또한 “그런즉 야훼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주사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15)라고 덧붙인다. (940.4)
 메시아의 “의로운 가지”(렘 23:5)는 “야훼∙∙∙우리의 의”(6절)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메시아는 그의 백성들에게 구원과 의를 주신다. 구원과 심판 이 두 가지가 그분의 의의 기초이다. 하나님의 의는 “마르지 않는강”과 같다(암 5:24). (940.5)
 하나님의 심판에 나타나는 그분의 성품의 또 다른 본질은 하나님의 공의이다. 시편 89:1497:2에 나오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하나님의 심판에 기초한 공의로 이해된다. 여기에서 “공의”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죄 없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은 그들이 의롭다고 심판하시며 그들을 옹호하신다 신실한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며 그 안에서 즐거워한다(시 48:11; 97:8). “의로운 자들”은 최후 심판에 있을 “심판/공의”를 애타게 기다린다(사 26:8). (940.6)
 구약에서 이미 나타난 하나님의 재판장 직분이 신약에서도 계속해서 나타난다. 하나님은 “만민의 심판자”(히 12:23)이시다. 사도 바울도 “의로운 심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롬 2:5), 그.심판은 진노의 날에(참조 3절) 이루어질 것이며 그날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언한다(롬 3:6). (940.7)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은 그의 아들에게 심판의 권세를 넘겨주셨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 5:22). 또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27절)고 말씀하셨다. 베드로와 바울도 그렇게 가르친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행 10:42)이라고 주장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라”(행( 17:31)고 선언한다. 더 나아가 바울은 하나님께서 재판장이신 한편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롬 2:16)다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통하여 심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5절)과 “그리스도의 심판대”(고후 5:10)는 서로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941.1)
 구약에 나오는 약 20개의 심판에 관한 구절은 하늘 또는 지상에 있는 성소나 성전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이 구절들 중 3분의 2 이상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두 무리, 곧 신실한 자들과 신실하지못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룬다. 나머지 구절들은 여러 민족들에 대한 심판을 다룬다(Shea 1992, 1-29). 이 모든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께서는 성소 또는 성전에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941.2)
 D. 행위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
 행위에 따른 심판의 개념은 구약의 가르침 속에 스며들어 있고 예수님(마 7:17, 18; 25:31-46; 요 15:1-11)과 바울(롬 2:13, 고후 3:8, 13-15)의 가르침에도 나타난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도 반복하여 제시되고 있다(계 20:12; 22:12). (941.3)
 신자들의 믿음의 삶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살전 1:3)를 통하여 열매 맺는다. 의롭게 된 신자들의 “믿음의 역사”는 성화의 과정에서 성령에 의해 인도되는 삶의 표현이며 칭의의 열매이다. 인간의 행위는 신자의 구원에 어떤 방식으로도 기여하지 않는다. (941.4)
 칭의는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하나님의 심판은 행위로 말미암는다는 주장 사이에 항상 팽팽한 긴장감이 있다. 어떤 구절을 문맥과 상관없이 따로 떼어서 읽는다면 혼동을 초래 할 수 있다 레위기 18:5“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야훼이니라”고 말한다. 이 본문의 본질적인 의미는 누가복음 10:27, 28; 로마서 10:5; 갈라디아서 3:12에서 도드러난다. (9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