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4 부 예수님과 함께 지성소에서 (죄의 존재로부터의 자유) 14. 언약궤 (나의 모든 소망은 그리스도의 것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를 경외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법궤를 이곳 저곳으로 옮길 필요가 있을 때에도 레위인들조차도 법궤를 바라볼 수 없었다.” (186.5)
 “다만 일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만이 하나님의 법궤를 바라볼 허락을 받았다. 이교도인 블레셋 사람들조차도 감히 덮개의 뚜껑을 열어 보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천사들이 법궤를 옮기는 모든 기간에 법궤를 수행하였다. 벧세메스 사람들의 불경한 행동은 신속히 처벌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당하였다”(부조와 선지자, 589; 삼상 6:19, 20). 경솔한 호기심과 하나님의 거룩한 신비에 대한 피상적인 생각돌이 세속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더 멀리 밀어 내어, 결국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밖에까지 밀어내 사단의 간계의 먹이가 되게 한다. (187.1)
 벧세메스 사람들은 겁에 질려 기랏여야림 사람들에게 궤를 가지고 가라고 청하였다(삼상 6:21~7:12). 이 기럇여야림의 신실한 경배자들은 “이것을 순종하고 충성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보증으로 알았다. 그들은 장엄한 기쁨으로 법궤를 그들의 성읍에 가져와 레위 사람 아비나답의 집에 안치하였다. 아비나답은 자신의 아들 엘리아살에게 법궤를 돌보게 하였고, 법궤는 그곳에” 축복이 되면서 20년간 머물렀다(부조와 선지자, 589). (187.2)
 궤와 사울왕
 몇 십년 후에 이스라엘에 첫번째 왕으로 이제 갖 임명된 사울에게 선지자 사무엘은 자기가 와서 제사를 드릴 것이니 기다리라고 명령하였다. 그렇지만, 참을성이 부족한 이 군주는 우세한 블레셋 군대가 눈앞에 진을 쳤을 때에 낙담하였다. “사울은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입었으나, 회개함으로 그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자 하지 않았다. 사울은 참된 경건의 부족을 종교적 형식에 대한 열심으로 메우고자 하였다. 하나님의 법궤를 홉니와 비느하스가 진영으로 가져왔을 때에 이스라엘이 패배한 사실을 사울이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나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는 거룩한 궤와 그 수행하는 제사장을 데려오기로 결심하였다”(부조와 선지자, 622). 이 반역적인 자기 의지 행위는 결국 그의 나라와 그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아무리 고위 직책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거룩한 사물을 가지고 놀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자 하였다. (187.3)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마자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원, 즉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 오고자 하였다. “여러 해 동안 법궤는 14.5km 떨어진 기랏여아림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법궤를 나라의 수도로 옮겨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로 영화롭게 해야 타당한 일이었다.” 왕은 각 지파들의 대표자들을 소환하였고, 왕이 직접 선두에선, 광대하고 기쁨 넘치는 행렬에 축하하기 위하여 모였다. 그 중대성에 관한 깊은 생각없이 “법궤를 아비나답의 집에서 가져나와 새 소가 끄는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두 아들이 법궤를 수행하였다”(부조와 선지자, 704). (187.4)
 여호와께서는 시내산에서 확실하게 “행진할 때에 ∙∙∙ 고핫 자손이 멜 것이니”라고 명령하셨다(민 4:15). 여호와께서는 고핫 자손들과 그 후세들이 행진할 때에 수소나 수레를 사용하는 것을 금하셨다. 그것은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께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기 때문이었다(민 7:9). 하나님의 정하신 이 규정은 “제사장들이 법궤를 덮어야 하였고, 고향 사람들은 법궤 양면 고리에 꿰여 있는 채를 들어야 하였고, 그것을 결코 빼지 말아야 한다”고 정하셨다(부조와 선지자, 705). (187.5)
 궤와 웃사
 다윗은 이 지침을 무시하고 믿지 않는 블레셋 사람들의 모본을 따르기로 택하였다. 그 행렬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삼하 6:1~8; 대상 13:6~10). 다윗왕은 충격을 받고, 굴욕을 당하였고, 죄책감으로 가득찼고, “법궤를 그의 곁에 안치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으리라고 느껴 법궤를 있는 그 곳에 머물게 하려고 결심하였다. 가까운 곳에 법궤를 안치할 장소를 발견하였으니 이는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이다”(부조와 선지자, 705). 오벧에돔 집안이 법궤를 존중하고 존경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삼하 6:10, 11).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건들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이 인과 관계를 논리적으로 생각하도록 가르치고, 또 백성들의 마음에 자신의 특별한 지침을 새롭게 하고자 하셨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위협은 똑같이 조건적이라는 것을 배워야만 하였다. (188.1)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법궤 이송시의 규칙을 면밀하게 검토한 다음에 법궤를 “규례대로”(대상 15:13) 3달 후에 운반하였다. 거룩한 궤는 기뻐함이 넘치는 가운데 하나님이 임명하신 사람들의 어깨에 메여 오벧에돔의 집으로부터 이송되었고, 이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명하신 규칙에 순종하면 항상 축복이 뒤따른다는 점을 깨달았다. (188.2)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의 결과로 예루살렘에서 나와 도망을 갔다. 다윗과 그의 수행원들이 잠시 쉴 때에 “거룩한 제복(祭服)을 입은 한 무리가 가까이 나아오고 있었다.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왔다(삼하 15:24) ∙∙∙ . 법궤를 보자 잠시 동안 기쁨과 희망이 다윗의 마음을 전률케 하였다. 그러나 곧 다른 생각이 그에게 떠올랐다 ∙∙∙ . 그룹들 사이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하여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시 132:14)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권위 없이는 제사장이나 왕이라도 당신의 임재의 상징을 거기에서 옮길 권리가 없었다 ∙∙∙ . 다윗은 사독에게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고 명하였다”(삼하 15:25; 부조와 선지자, 732~735).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단순하고 겸비한 순종으로 인하여 결국 다윗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다. (188.3)
 성전으로 옮겨진 궤
 솔로몬은 여호와의 성전을 완성한 후에 국가적인 봉헌식을 올리기로 작정하였다. 왕은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백성 중에 유력한 사람들과 함께 법궤를 “광야에 건축한 성막이 여전히 있던 기브온”(선지자와 왕, 27, 30, 38; 왕상 8:1~19; 대하 5:2~6)에서 “이동하는 건물 대신에 건축된 장엄한 건물 속의 영구적인 거처”에로 옮기었다. “노래와 악기 소리와 큰 의식으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내전 지성소’(대하 5:7)였다”(선지자와 왕, 38). 바닥에 세워 놓은, 감람목으로 만들고 그 위에 금으로 입힌 두 거대한 그룹의 펼친 팔 아래 브사이 만든 궤는 여호와 예배 제도의 중심물로서 놓여져 있었다. (188.4)
 채는 길어서 궤에서 나오므로 그 끝을 성소에서 휘장 밑으로 볼 수 있었다(왕상 8:8; 대하 5:6~10). 이것은 그후 내내 경배자들에게 항상 법궤의 오랜 순례 여행이 끝마쳤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이 성전은 “여호와의 언약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등상을 봉안할 전”이었다(대상 28:2). (189.1)
 영감을 받은 역사가는 이 사건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왕상 8:9; 대하 5:10)고 적었다. 싹난 지팡이와 만나가 들은 금 항아리가 어떻게 되었는 지에 관한 기록이 성경과 역사 문헌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엘렌 화잇은 싹난 지팡이와 만나가 담겨있는 항아리가 하늘에 있는(초기문집, 32) “주께서 베푸신” “참 장막”(히 8:2)이 있는 궤 안에 있다고 말하였다. (189.2)
 솔로몬 성전에 지팡이와 만나가 없었던 이유는 시간이 지남으로 인하여 발생한 바뀌어진 상징 묘사 때문이다. 영구한 성전이 지극히 단명하는 성막을 대신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순례 여행 동안에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기억을 강화하는데 한때 필요하였던 소생한 지팡이와 하루 분의 만나는 그 역할을 다하였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그리스도의 영원히 유지시켜 주는 능력을 새롭게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의 기초의 없어서는 안 될 부분으로서 하늘 성소에 두어야 하였다. (189.3)
 그리고 세상 끝에 그리스도께서 금도성의 진주문을 통하여 속죄함을 받은 무리들을 인도하여 나오실 때에 그리스도의 정부의 자리는 영광의 자리가 될 것이다. 그 때에는 더이상 사망이 없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소망을 주고 약속을 하여 주는 소생한 지팡이도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다. 구속받은 자들은 더이상 굶주리지 않을 것이며, 그렇기에 더이상 행할 임무가 없는 만나는 존재하기를 영원히 그칠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 땅 소산”을 먹고 나서 더이상 만나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수 5:12). 이제부터 영원히 지팡이와 만나가 전하여 주는 메시지가 오로지 예수님에게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189.4)
 궤 안에 있었던 십계명
 오직 하나님의 율법만이 그분의 보좌의 토대일 것이니, 그 이유는 율법이 그분 마냥 영원하기 때문이다. 율법의 불변하는 원칙들은 과거에 주께서 자신의 피조물을 치리할 때에 그랬던 것과 같이, 끝없는 미래에 하나님의 온화한 정부의 기초일 것이다. (189.5)
 첫번째 성전 봉헌 후 350년 후에 남방 유다 나라가 끝을 맞이하였고, 예루살렘과 그 성전은 느브갓네살이 파괴하여 버렸다.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예루살렘에 있는 의인들 중의 어떤 이들은 십계명이 기록된 돌비가 들어 있는 법궤를 무자비한 자들의 손이 닿지 못할 곳에 두고자 결심하였다. 이 일을 그들은 행하였다. 그들은 슬픔과 비애 가운데에 거룩한 궤를 한 동굴에 감추었고, 그 법궤는 그 장소에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이 지은 죄로 인하여 그들로부터 숨겨져야 하였고, 발견되지 말아야 하였다. 그 법궤는 아직도 숨겨져 있다. 이것은 감취진 이래 결코 침해를 당하지 아니하였다”(선지자와 왕, 453). (18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