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4 부 예수님과 함께 지성소에서 (죄의 존재로부터의 자유) 14. 언약궤 (나의 모든 소망은 그리스도의 것임)
 하나님의 보좌의 상징인 궤
 시은소 주위에 있는 정금 장식을 자세히 주목하여 보고, 그것이 말하는 메시지, “우리들의 왕은 승리자이다!”에 귀를 기울여 보라. (180.6)
 이 구원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그림에는 긍휼의 보좌에 좌정하신 등극하신 왕이 예견되어 있다. 이 세상이 저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께서는 회개하는 죄인들이 자신의 나라에 자신과 함께 살도록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은혜와 자비를 제공하여 주실 수 있다. (181.1)
 공의와 자비의 보좌를 나타내는 뚜껑을 가진 법궤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운반되도록 고안되어 있었다. 움직이기 쉽게 금고리를 만들고, 아카시아 나무(조각목)로 만든 채를 궤의 양쪽에 붙은 고리에 끼워 궤를 들도록 하였다(출 25:12~15). 이렇게 하신 목적은 다음과 같다. 영광의 주님께서는 자신의 보좌를 백성의 장막 가운데에 자신이 원하는 어느 곳에든지 치시고, 백성이 사는 곳에서 사시며, 그들의 가장 큰 필요를 충족시켜 주셨다. 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여정이 마쳐갈 때 쯤 해서 자신의 보좌를 저항치 않는 요단이라는 사망의 강의 중심에 던져 넣어 강물을 자신이 임재한 곳으로부터 멀리 몰아 내심으로, 물이 불어 오른 요단강 물결을 정복하셨다. 그 궤는 일관되게 하나님의 백성을 그 모든 대적들로부터 보호하여 기쁨 넘치는 승리에로 인도하였다. (181.2)
 궤 안에 놓아 두었던 세 가지 물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궤 안에 세 가지 물건을 넣으라고 명령하셨다(히 9:4).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손으로 쓰신 율법의 두 돌판과 아론의 기적을 이루는 소생한 지팡이, 그리고 음식으로 먹은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시은소 위에 뿌려진 피를 경건하게 바라보고 서 있는 두 그룹 천사를 시은소 위에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이러한 상징물들은 각각 독특한 메시지를 가지고 법궤의 전체적인 의미를 넓혀 주었다. 궤 전체와 또 궤 안에 있던 물품 각각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은 하늘 성소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특성과 기능을 드러낸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이 물품 각각을 숙고할 때 영원한 성령께서는 이 물품들이 함축하고 있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주신다. (181.3)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여행에서 전진하여 나아가는 것은 궤를 짊어진 제사장들의 발걸음에 달렸었다(출 40:36~38; 민 7:9; 3:31; 10:33~36; 9:16~23; 수 3:13, 15; 삼하 6:13). 제사장들은 이 짐을 지고 앞에서 종소리를 울리며 길잡이 표적을 세웠고, 백성들은 뒤에서 짐을 지지 않고 따라갔다. 우리 모두 우리로 하여금 낙원으로 기쁘게 여행하도록 십자가의 보좌 아래서 비틀거리고 계시는, 무거운 짐을 진 대제사장을 끊임없이 분명하게 기억하자. (181.4)
 운반용 채들은 항상 법궤에 부착되어 있어야 하였다(출 25:15). 이것은 성소 제도를 명상하는 예배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보좌가 항상 그들을 인도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또 복음에 관한 사실도 말하여 준다. 그리스도는 자기 아버지가 지시하는 곳으로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되어 있고, 교회를 인도하는 동안에 아버지의 가장 작은 뜻에도 순종할 태세가 되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순례 여행을 마치고 궤가 시온의 영원한 궁전이 아닌 한시적인 장막에 놓여 졌을 때, 궤 양쪽 고리에 걸어 놓은 이 채를 꼬집어 내어, 성소의 휘장 아래로 그 끝 쪽이 보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채들은 그 곳에서, 하나님의 목표가 성취되어 그분의 백성들은 안전한 항구로 대피하였으며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 나무 아래 앉”(미 4:4)아 있으며, “언약궤를 그 처소에 메어 들”(대하 5:7~10; 왕상 8:6~9)였다는 것을 계속하여 증거하였다. (181.5)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었던 궤
 격리된 성역에 위치한 그 거룩한 궤는 단지 호기심만으로 가득찬 인간이 볼 수 있어서는 결코 안되었다. 히브리인들은 이동할 때에 이 궤를 옮긴 제사장들 조차도 궤를 최내부(最內部) 휘장으로 가리운 가운데 뒷걸음으로 운반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였다. 궤는 왕이고 심판자인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정부의 상징으로서 성전 밖에서 운송될 때에는 윤곽만 볼 수 있었고, 궤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경건한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었다. 자연인이 이 신성의 대표물을 직접 보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182.1)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에 사람들로 하늘이 세상에 대하여 내리는 조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와 상징을 주셨다. 그 이유는 “ ∙∙∙ 하나님의 심판과 목적들은 알아낼 가망이 없고, 그분의 지혜는 탐구하여 낼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나타내신다면, 신비의 짙은 구름 가운데에서 자신을 감추심으로써 일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자신의 모습을 인간으로 알게 하도록 하는 것보다 자신을 감추시는 것이다”(3BC, 1141). 진리 탐구자가 애정 어린 기도를 하면서 시간과 관념, 거룩한 문서에 기록된 말과 상징이라는 외적인 덫을 통과할 때에만 그 사람의 믿음은 구세주의 귀중함을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의 “휘장들”은 예수의 “육신” 마냥 계획된 계시의 매개 수단이다(히 10:20). (182.2)
 속죄소
 궤의 덮개는 정금으로 덮인 아카시아 나무(조각목)로 만들어진 널판지이었다. 이 널판지는 “속죄소”라고 칭하여 졌다. “이것은 비록 율법을 범한 형벌이 사망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개하고, 믿는 죄인들을 용서하는 자비가 주어졌다는 것을 뜻한다”(SD, 66). 이 덮개는 신약성경에서는 “은혜의 보좌”(히 4:16)로 칭하여지기도 하였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롬 3:24)고 강력하게 권고하면서 “속죄소”(힐라스테리온<hilasterion>, 롬 3:25)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하여 “화목제물”(propitiation)이란 단어를 사용하였고, 그리스도를 죄인들이 드려야하는 희생의 대속물이자 혈족 구주(kinsman-redeemer)로서 묘사하였다. (182.3)
 “화목제물”이라고 번역된 희랍어 용어 힐라스테리온은 히브리어 카파르(kaphar, 출 25:18~21 등등)의 칠십인역 상당어구로서, 특정 장소를 칭하는 단어이다(H. Cremer, Biblico-Theological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305). 성전 자체가 “속죄소의 자리<집, 거처>”로 표현되었다(대상 28:11), 속죄소는 속죄의 장소로서, 궤의 속죄하는 덮개뿐만 아니라, 궤 안에 담겨 있던 율법의 속죄하는 덮개이다. 그러기에 십계명에 기초한 것으로서 나타내어졌다. 대제사장은 속죄소 위에 속죄하는 피를 뿌렸다. 피에 적셔진 속죄소는 쉐키나 또는 은혜롭고 자비한 하나님의 임재의 중심 보좌이고, 그분이 하시는 구원 활동의 목적이자 초점이다. 여호와께서 그 위에 주재하신다. (182.4)
 이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되었다. 열왕기상의 저자(왕상 6:5)는 지성소를 데비르(debir, 내실)라고 칭하였는데(개역 성경은 ‘지성소’로 번역함), 탈굼(Targum)은 이것을 “속죄소의 집”이라고 설명하였다. (183.1)
 궤 위에 뿌려진 피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피를 뿌릴 때에(레 16:14) 속죄소는 그것이 행하는 봉사의 절정에 이르렀다. 대제사장의 행위는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의 보좌에 다달았다는 것과 “죄인의 생명을 요구한 율법의 요구가 충족되었다”(부조와 선지자, 356)는 것을 뜻하였다. 그리스도께서 궤 안에 놓여 있던 두 돌비에 기록하신 십계명은 사람의 율법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의 토대임을 나타내었다. 그 피는 율법을 범함으로 빛지게 된 죄값을 치른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적 죽음을 가리키고 있다(히 9:12~14). 이 피묻은 보좌가 부르는 노래,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다(시 85:10)는 노래는 우주에 잔잔히 울려 퍼진다. (183.2)
 움직이는 구름과 불에 의하여 인도된 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성막 위에 더욱더 높이 올라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동할 시간이 왔음을 알았다. 랍비들의 기록에 의하면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서, 네 기둥에다가 네 사닥다리를 걸치고 뒤로 올라가서 내부 휘장을 거두어 내렸다. 계속하여 뒤로 움직이면서 법궤와 그룹 위에 이 태피스트리(색색의 실로 수놓은 벽걸이나 실내 장식용 비단<tapestry>, 여기서는 ‘휘장’을 칭함)로 덮었다. 이 태피스트리 위에는 성막의 지붕인 해달의 검은색 가죽의 일부분을 놓고, 또 그 위에다가는 순청색 보자기를 덮었다(민 4:5, 6). 임명된 봉사자들은 이동할 때 사용하는 채를 잡고, 어깨 위에 걸친 다음 성소를 통과하여 뜰로 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행을 인도할 준비를 갖추었다. 제사장들은 움직이는 구름을 계속 쳐다보면서 앞으로 걸어 나갔고, 모세와 아론은 선두에 섰고, 백성들은 주께서 명하신 질서대로 따라갔다. (183.3)
 덮어져 있는 모습만 볼 수 있었던 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