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2 장 중보적 치유의 기적들 기적 5 ► 아이야 일어나라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거라사에서 다시 서쪽 해안(海岸)으로 돌아오셨다. 갈릴리 호수 서쪽은 싱그러움이 넘치는 들판이었다. 오늘날도 디베랴를 지나 가버나움으로 가는 해안은 온통 짙푸른 과원 지대이다. 기름지고 거무스름한 옥토에 눈길을 빼앗기고 만다. (116.1)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문을 들은 그 지역의 사람들은 대환영을 하며 점점 예수님의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병자를 고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다가 레위 마태의 집을 향해 발길을 돌리셨다. (116.2)
 도중(途中)에 지체가 꽤 높아 뵈는 어떤 사람이 불쑥 나아와 예수님 발 앞에 넙죽이 엎드려 절하며 간청하는 게 아닌가! (116.3)
 “주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116.4)
 그는 다름 아닌 회당장(會堂長) 야이로였다. 회당에서 행정적 수반(首班)으로 매 안식일마다 드리던 공중 예배 때 사회자, 기도자, 설교자를 초청, 배정했고 장로회(長老會) 의장이었으며, 유대인 사회에 꽤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마태는 야이로를 일컬어 “한 직원”이라고 했지만 마가는 그를 여러 회당장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116.5)
 야이로에게 12살 난 딸이 있었는데 그만 몹쓸 병에 걸려 사경(死境)을 헤매게 됐다.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딸을 데리고 이 의원 저 의원 용하다는 의원은 다 찾아가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모든 것이 무위(無爲)로 끝나 버리고 결국 불치병이라는 선고만 받았다. 사랑하는 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자 야이로는 애간장이 탔다. 자포자기하는 절망의 순간을 맞이한 그는 애태우며 노심초사(勞心焦思) 하다가 가족 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 딸의 치유를 예수님께 부탁하기로 결정하고 자신이 직접 나섰던 것이다. 그래서 딸을 살릴 마지막 방법으로 예수님께 찾아와 딸의 치유를 부탁한 것이다. (116.6)
 마태는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니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누가는 야이로가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 감이러라”고 기록했다. (117.1)
 오늘날 유대인 남자들은 13살, 여자들은 12살이 되면 바르 미쯔바(Bar Mitzvah) 성년식(成年式)을 행한다. 바르 미쯔바는 “율법의 아들”라는 뜻인데 성년식을 하고 그때부터 책임감을 갖고 율법을 수호(守護)해 나가게 한다. 성년식은 주로 친척들과 함께 통곡의 벽 앞 광장에 와서 행한다. 작년에 필자가 그곳에 들러 성년식에 참여한 소년의 복장을 보니, 머리에는 키파를 쓰고 이마에는 테휘린(Teffilin)을 어깨에는 탈리드(Tallith)를 두르고 있었다. 야이로의 딸이 이제 막 12살로 성년이 되려고 하는데 죽게 됐다. 그 당시 여자는 보통 12살이나 13살이 되면 시집을 갔다. 아직 시집도 못 가고 죽어 가는 가련한 딸을 보고 야이로는 예수님께 나가 간구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놀란 것은 첫째로, 야이로가 예수님께 엎드려 굴복하여 간원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유대 장로요 랍비였는데 그 부류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오만하고 예수님을 경멸하고 증오했기 때문이다. 야이로는 편견과 자존심을 버렸고 특이하게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간구한 것이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 딸에게 손을 얹어 기도하면 딸의 병이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행한 치병(治病) 기적에 대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자기 딸도 나을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졌다. 둘째로, 모든 사람들이 놀란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예수님께서 오만한 랍비의 간원을 물리치지 아니하고 야이로의 집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대개 그런 경우 사람들은 말하기를 “네가 잘 될 때는 나를 죽이려고 온갖 중상모략을 하더니 네가 어쩔 수 없는 절망 속에 빠지자 나에게 도움을 청하니 너는 나쁜 놈이다. 나는 너를 도와 줄 마음이 없다”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야이로의 간구를 거절하지 않으셨고 적극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야이로의 믿음과 간절한 탄원은 동정심 많은 주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117.2)
 예수님께서 즉시 회당장을 따라 그의 집을 향해 떠나자 많은 사람들이 에워싸며 따라갔다. 회당장의 집은 그리 멀지 않았지만 이 사람 저 사람을 도와주고 위로하시며,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천천히 나아가셨기 때문에 시간은 꽤 지체됐다. 그런데 갑자기 군중을 헤집고 한 사환이 급한 전갈(傳渴)을 가지고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회당장에게 말했다. (118.1)
 “주인님, 당신의 딸이 이미 죽었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게 마소서.” (118.2)
 회당장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18.3)
 “아이구, 그 어린 것이 결국 죽었구나!” (118.4)
 솟아 오르는 눈물을 가눌 길 없어 잠시 돌아서서 울었다. 마음이 아파 찢어지는 것 같았다. 12살 꽃다운 나이에 한번 활짝 피지도 못한 채 그만 요절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가련한 아이인가!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았고 가슴이 미어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야이로는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 듯한 허탈감에 망연자실(范然自失) 하였다. 하지만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야이로를 위로하며 희망찬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닌가! (118.5)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118.6)
 “제 딸은 이미 죽었는데요.” (118.7)
 “아무튼 얼른 네 집으로 가자” (118.8)
 사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인 것이다. 야이로의 딸은 이미 죽었지만 예수님은 가던 길을 포기하지 않고 회당장의 집으로 가셨다. 이미 그곳에는 피리 부는 사람들과 곡하는 자들이 와 있어 훤화(왁자지껄) 했으며 가족들과 함께 애곡(哀哭)하고 있었다. (118.9)
 유대인 장례법에는 뚜렷한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겉옷을 찢는 것으로 서서 가슴 쪽에서 주먹이 들어갈 만큼 찢어서 피부를 드러내야 한다. 둘째, 죽은 사람을 위해 애곡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직업적 울음꾼을 샀다. 셋째, 피리를 부는 일이었다. 야이로의 집에는 벌써 이와 같은 일로 떠들썩했다. (118.10)
 야이로의 집에 당도한 예수님께서 거기 모여 애곡하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죽은 자를 두고 실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말을 하셨다. (1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