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와 로마 군대 제3장 초기 그리스도인 병사와 로마 군대 (A.D. 173-312) C. 로마 군대 종교와 초기 그리스도인 군복무
 이 달력에 특별히 강조된 것은 매 제일에 사용해야 할 제물들에 대한 지시 내용들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이같은 제일력의 체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종교 정책과 유관한 것으로 추측된다.23 종교 행사가 개최되는 날짜들의 간격은 엄격한 규칙성을 나타내고 있지는 않으나 대체로 10일 평균의 간격을 보이고 있다. 이 종교력에 나타나 있는 공식적인 종교 의식들은 제국 전역에 걸쳐 획일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굳이 로마화 정책의 일환으로서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군대의 획일성 자체가 그것을 요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71.1)
 이 제일력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세 범주로 나뉘어진다. (171.2)
 1) 황제 신들과 황후 신들을 위한 제국 축제일들: 즉 1월 3일 서약일 (Vota); 율리우스 신과 제국의 남신들과 여신들(Divi와 Divae) 및 공식적으로 신격화되지 않았던 게르마니쿠스 등의 탄신 축일들(Natales); 트라야누스, 안토니우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 셉티무스 세베루스, 칼라칼라 등 황제들의 기일들(dies imperii); 알렉산더 세베루스와 그 가족들과 관련된 축일들. (171.3)
 2) 국가신들을 위한 일반적인 성격의 공적 축제일들: 정월 1일(Kalendae Januariae); 3월 1일(마르 파테르 빅토르 신의 탄신일. natalis Martis patris Victoris); 3월 19-23일(minerva 여신제. Quinquatria); 4월 21일(영원한 도시 로마의 탄신일. Natalis urbis Rome aeternae); 5월 12일(복수의 아버지 Mar신을 위한 원형경기장 축제일, circenses Martiales); 6월 9일(베스타 여신축제일, Vestalia); 6월 23일(넵투 여신제, Neptunalis); 8월 5일(무병식재[無病息災]를 위한 원형경기장 축제일, circenses salutares); 12월 17 -23일(사투르누스 신의 축제일, saturnalis [이 부분은 파멸된 부분이어서 추측에 불과함]). (171.4)
 3) 군사적인 종교 기념일들: 1월 7일(급료지불 또는 표창 수여일. Honesta Missio); 5월 10일과 5월 31일(군기의 장미꽃 축제일, Rosaliae Signorum).24 (172.1)
 황제 신들 가운데는 생존 황제인 알렉산더 세베루스(Alexander Severus)가 포함되어 있으며, 마리아나(Mariana), 마틸다(Matilda), 파우스티나(Faustina), 마에사(Maesa) 같은 황실 여인들을 위한 제사에 바쳐지는 짐승 희생 숫자가 8-12개로 비교적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국가 신들을 위한 짐승 희생의 숫자는 그 보다 작은 사실이 흥미롭다.25 위의 세 범주 중에 앞의 두 범주는 민간의 종교 습관과 같은 것이며, 따라서 군대종교의 특성과 관련되는 것은 세번째 범주의 것이다. 군사적인 종교의식들 가운데는 예컨데 5월 10일과 31일의 장미꽃 축제(Rosaliae Signorum)와 1월 3일의 서약식 같은 것은 멀리 공화정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26 (172.2)
 본 연구에서는 주로 이 군사적인 종교 의식들을 중심으로 하여 로마 군대 공식 종교의 특성을 살펴보겠다. 초기 교부들이 군대 종교에 대해 주목한 부분들도 대부분 이것들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172.3)
 군사적인 종교 의식들 중에서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군기 경배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로마인들의 병영 종교가 군기 경배로 시종하며 모든 신들보다 군기들을 더높이 받든다고 하였다.27“깃발을 숭배하며 깃발로 맹세하고 깃발을 주피터 신 자신이라고 한다”28고 하였다. 이교도인 타키투스에게도 군기는 로마 군대의 신으로 보였다.29 제일력에 따르면 5월에 두차례(9-11일과 31일)에 걸쳐 군기에 장미꽃 화환을 걸어주는 장미꽃 축제 의식(Rosalia signarum)이 거행되었다.30 (172.4)
 군기에게 봉헌된 비문들도 많다. 그중 몇 개의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73.1)
 “황제들의 신들을 위하여, 제 2군단 아우구스트(The Second Legion August) 수호신을 위하여, 독수리[깃발]에게 경의를 표하여 선임 백인대장이 이 선물을 바쳤다.”31 “바르둘리의 제1충성 보병대(First Loyal Cohort of Vardulli)의 수호신과 군기들을 위하여 . . . ”32 “독수리의 탄신일을 당하여 . . . 제 7제미나 펠릭스(Gemina Felix) 군단의 군기인 주피터 옵티무스 막시무스(Juppiter Optimus Maximus)에게”33[여기서 독수리의 탄신일은 바로 군단의 창설일을 뜻한다]. (173.2)
 군기 중에서 최고의 기는 로마제국 전체의 수호신인 주피터 옵티무스 막시무스(Juppiter Optimus Maximus)를 상징하는 독수리(Acquilia)였다.34 각 군단에 하나씩 배당된 독수리 기는 군단의 신령이 어려있는 성물이었다. 동시에 전투시에는 병사들로 하여금 독수리 기보다 앞서 전진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군단 전체의 행진을 규제하는 전술적 기능도 행사했다. 전투 중에 독수리 기를 상실하는 군단은 가차없이 해체되었으며 제국은 그 독수리기를 다시 회수할 때까지 그 치욕을 결코 잊지 않는다.35 군대에는 독수리 기 외에 보병대(Cohort), 백인대(Century) 등 지대 단위로 군기(Vexilla)가 있었다. 이 모든 군기들에게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와서 프린케프스(Princeps)의 대표성이 부여되었으며 통상적으로는 프린케프스의 상(像)과 군기가 나란히 배치되어 부대의 경의를 받았다.36 그러나 군기는 엄격한 의미에서는 어디까지나 상징일 뿐 신적 실재는 아니었다. 파멸이 가능한 물질적인 대상물이며 회복의 대상이 아니라 대치되는 대상이었다. 군기가 사람의 기도를 듣는 것으로 간주되지도 않았다. (173.3)
 군기와 같은 성물의 하나로 신상(神像)들이 있었다. 이것들은 신적인 인물들에게 봉헌되거나 신들을 대표하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군기들과 신상들은 신 자체라기 보다는 신표(Numena)였지만37 일반 민중의 심리에서는 신 자체와 동일시되기도 했다.38 따라서 초기 교부들의 주장도 이같은 민중의 심리를 반영한다고 하겠다. (174.1)
 군기 못지 않게 중요한 종교 의식이 바로 서약(Sacramentum)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하나님의 사크라멘툼과 인간의 사크라멘툼 사이에 일치점이 없다”고 하였다.39 로마병사들은 군 입대시에 입대식의 일환으로서, 그리고 군복무 기간에 해마다 두차례씩 즉 1월 3일과 황제의 즉위 기념일에 서약(Sacramentum)을 했다. 이 서약은 멀리 공화정 시대까지 소급되는 것으로써 공화정 때에는 사크라멘툼이 서약 또는 증서로 표시된 쌍방간의 협약을 뜻했다. 따라서 이 단어는 군대의 충성 서약을 뜻하면서 또 그리스도교의 성만찬이나 침례식 같은 성례전 의식을 뜻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40 (174.2)
 군대의 서약은 공화정 시대에 군단 사령관에 대한 충성 서약으로 존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정기(帝政期)에 와서는 군대를 야심적인 장군들에 의한 사병화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황제에 대한 군인들의 충성심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황제에 대한 충성 서약으로 바뀌어졌다. 공화정 이래의 서약의 정확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라이안(E. A. Ryan) 교수는 각주에 간접자료만을 제시한 글에서 베제티우스(Vegetius)를 빙자한 정보를 전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omniaque facturos quae praeciperet”(사령관이 명령한 모든 것을 이행하겠다), “Jurare in nomen imperatoris”(황제의 이름에 맹세한다), “Jurant autem milites omnia se strenue factruos quae praeceperit imperator, nunquam deserturos nec strenue factruos quae praeceperit imperator, nunquaam deserturos nec mortem recusaturos pro Romana republica”(군인들은 황제가 명령한 모든 것을 강력히 이행할 것이며 절대로 배반치 않을 것이며 로마 공화국을 위하여 죽음을 거절치 않을 것을 맹세한다)라는 것이었다.41 (175.1)
 폴리비우스에 의하면 공화정 시대에 병사들이 호민관에게 “최선의 기능을 다하여 상관의 명령을 이행할 것을” 서약했는데 각 병사들은 차례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 때 “본인도 동일함”(idem in me)라고 복창하였다고 한다.42 서약은 또 황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군기에 대해서도 행해진 증거들이 있다.43 (176.1)
 로마의 고대 비문이나 문헌에는 명예(Honos), 덕(Virtus), 경건(Pietas), 기강(Disciplina) 같은 추상적인 덕목들도 신격화하여 숭배한 증거들이 있다.44 또 테르툴리아누스의「병사의 화관론」(De Corona Militis)의 주인공과 병사 순교자인 백인대장 마르켈루스(Marcellus)의 경우에는 병사의 화관, 허리띠, 검, 지휘봉 따위의 군장들도 종교적 의미를 띠고 있다.45 (176.2)
 b. 로마 군대의 비공식 종교
 로마는 어떤 종교이든지 국가생활에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 한 그 종교를 박해하지 않았다. 또 그 종교가 국가 권력으로부터 받고 있는 그 관용을 다른 종교 단체에게도 베푼다면 그 종교는 국가의 인정을 받았다.46 진작부터 로마는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찍부터 로마는 세상의 온갖 민족들을 자기 안으로 흡수하여 왔고 그 민족들과 함께 그 신들도 수용해왔다. 그리고 그 민족들과 신들은 그 나름대로 로마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47 카일리쿠스(Caelicus)는 말하기를 로마는 “모든 민족들의 신성한 것들을 수용함으로써 마땅히 그 왕국들까지 차지할 자격을 갖추었다”고 하였다.48 (176.3)
 로마 군대는 “전쟁을 수행하는 로마국민들이었다.”49 따라서 로마인들의 종교적 태도는 로마 군대의 종교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병사들의 개인적인 신앙은 그것이 군대 본연의 생활과 기강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그리고 병영의 울타리 밖에서 그 종교 행위가 이행되는 한 허용되었다. 그리고 병영 밖의 비공식 종교들에 대한 귀의자들 중에는 장교들도 많았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로마 군대의 종교에 나타나는 비공식 종교의 특성들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군단 주둔 지역 내에서 신병을 모집하게 한 이후에 더욱 현저하게 되었다. (177.1)
 로마 군대의 비공식 종교들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신봉되었던 것은 마트라(Mithra)교였다. 미트라 신앙이 로마에 처음으로 들어온 시기는 제정기 이전이지만 이 종교가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한 것은 A.D. 2세기 이후이었다. 그리고 미트라교를 전파시킨 중요한 매체의 하나는 군대였다. 미트라교는 이 종교를 신봉하는 백인대장의 전출과 함께 효과적으로 여러 부대로 파급될 수 있었다.50 (1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