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가하면 이 기사의 두가지 특징적 사실에 의하여 이 사건의 연대가 A.D. 286의 바가우다 전투보다 상당히 늦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첫째로 이 기사에 등장하는 세 명의 군인 순교자의 직책 이름으로 나타난
“위병장”(Primicerius),
“군사 교련병”(Campidoctor),
“병사 평의원”(Senator militum) 중 고대 문헌에 가장 일찍 등장하고 있는 병사 평의원의 경우가 겨우 기원 359년이라는 점이다.
11 둘째는 이 세 직책이 모두 기병대의 직책인데도 이야기 자체는 보병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12 콘스탄티누스 이후까지는 기병대가 광범위하게 이용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이 사건의 신빙성을 의심스럽게 하는 문제들은 많다. 즉 테베 군단 자체의 연대문제
13와 군율로써 열 명에 한 명 꼴로 죽이는 형벌이(Decimatio)이 A.D. 286년 이후에 철폐된 사실,
14 그리고 집단 순교가 발생한 장소 등에 대한 시비가 아직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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