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케는 유대인의 묵시문학을 가장 잘 대표하는 문서는 다니엘서이고(당시의 다른 비평가들과 마찬가지로 그 책을 BC 2세기에 쓰인 것으로 여겼지만), 그리스도교의 묵시문학 중에서는 요한계시록이 그렇다고 믿었다. 연구 내내, 그는 정경의 묵시와 비정경 묵시를 구별함으로써, 계시된 종교의 독특성을 보존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묵시는 본질적으로 예언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성경의 예언이 다 묵시문학은 아닌 것으로 인식했다. 그의 견해로는, 묵시의 본질은 역사에 대한 그것의 보편적 개념이었다. (917.8)
 1843년에 출판된 짤막한 기사에서 에두아르트 로이스(Eduard Reuss)는 요한의 묵시록이 묵시문학의 일부로 여겨져야 한다는 신념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뤼케와는 달리, 로이스는 요한의 정경 묵시록과 다른 묵시문헌 사이의 구별을 버렸고, 이후 그것은 역사—비평적인 연구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표준이 되었다. 로이스는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그 문헌들을 검토하고, 역사 가운데 나타난 모습대로 그것들을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917.9)
 유대인의 묵시문학을 다룬 첫 번째 연구서는 1857년 아돌프 힐겐펠트(Adolf Hilgenfeld)에 의해 발표되었다. 힐겐펠트는 묵시문학의 역사적인 발달을 연구함으로써 그것의 본질을 발견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뤼케가 영감 받은 묵시문서와 영감을 받지 않은 문서를 구분했던 것을 없애고, 묵시의 발달을 추적하는데 헤겔식의 구성을 적용하고자 하였다. (918.1)
 가끔씩 관심이 표시된 것을 제외하면, 묵시문학 연구는 힐겐펠트 이후 거의 1세기 동안 쇠퇴하였다. 역사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 것은 1878년에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이 기념비적인 “이스라엘 종교의 재구성”을 발표한 일이 강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본다. (918.2)
 벨하우젠과 그의 제자들은 묵시문헌들에 어떠한 예언의 영이 있는 것도 부인했다. 그 문서의 저자들이 유수(幽囚) 전 선지자들을 모방하였거나, 외국, 특히 페르시아인들의 자료들을 빌려온 것이라고 여겼다. 이전의 학자들은 묵시적 저작들을 구약의 선지서와 신약 그리스도교의 연결 고리로 여겼지 만 벨 하우젠은 고전적 예언자들이 예수의 영적 전임자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개념은 “예언적 연결”(prophetic connection) 이론을 낳았다. 따라서 예언과 묵시문학 사이의 어떤 연결 고리도 거부되었고 묵시문서들에는 거의 가치를 두지 않았다. (918.3)
 주목할 만한 예외 중에는 영국 학자 로버트 H. 찰스(Robert Η. Charles)가 있었다. 20세기 초에 그는 묵시문학의 매력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 찰스는 벨하우젠이 개발한 도구를 사용했지만, 묵시문헌과 외경 본문들을 수집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이 문헌들의 비평적 판본과 번역을 마련하였으며, 묵시 사상의 본질적인 특징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많은 출판물들 중에는 두 권으로 된〈구약의 외경과 위경〉이 있는데, 이후 70년 동안 그 책은 학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가 되었다. (918.4)
 벨하우젠과 마찬가지로 찰스는 일치성(coherence), 일관성(consistency),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등 묵시 문학이나 성경 자료와는 크게 동떨어진 기준들을 전제로 한 문학비평과 자료비평의 원칙을 따랐다. 내용과 문체에서 일관된 관점과 통일성을 기대했던 찰스는 묵시문학에서 눈에 띄게 일관성이 없고 내용이 반복되는 점을 참을 수 없었다. 묵시문헌에 대한 그의 연대 매김은 그의 진화론적 관점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헤겔의 “합리적인 정신”은 묵시문학에 대한 그의 역사적 재구성에서 생생히 살아있다. (918.5)
 벨하우젠과는 달리, 찰스는 예언과 묵시 사이에 유기적인 관계가 있음을 보았다. 따라서 그는 벨하우젠이 제안한 예언적 연결 이론에 반박했고 묵시묵학과 신약 그리스도교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단호하게 주장했다. (918.6)
 뤼케, 로이스, 힐겐펠트, 찰스 등이 제안한 예언과 묵시문학 사이의 연속성은 해롤드 H. 롤리(Harold H. Rowley, 묵시문학의 적합성, 1944년), 데이비드 S. 러셀(David S. Russell, 유대 묵시문학의 방법과 메시지, 1964년), 페터 폰 데르 오스텐-자켄(Peter von der Osten-Sacken, 예언서, 지혜문학과 묵시문학의 관계, 1969년) 등 다수의 연구에서 주장하였으며, 더 근래에는 폴 D. 핸슨(Paul D. Hanson, 묵시문학의 새벽, 1975년), 조이스 G. 볼드윈(Joyce G. BaIdwin, 다니엘서,1978년)등이 있다. (918.7)
 세기의 전환기에 묵시문학에 대한 또 다른 역사-비평적인 접근법이 헤르만 궁켈(Hermann Gunkel)에 의해 개척되었다(원시대와 종말시대의 창조와 혼돈, 1895년). 궁켈은 묵시문학에서 신화적인 단편이라고 자신이 믿었던 내용을 분리해내려고 시도했다. 궁켈에 따르면, 이 조각들은 역사적 사건으로 확인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고대 근동 신화의 더 큰 패턴에서 그것들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918.8)
 궁켈이 바벨론 신화에 주목한 반면, 이 접근법을 특징으로 하는 최근의 연구들은 특별히 가나안 문헌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종교사학자들은 예루살렘 왕족들의 제의가 가나안 족의 모티프와 개념들을 이스라엘의 종교에 흡수했고 그것이 묵시문헌에 다시 등장했다고 제안한다. (919.1)
 궁켈이 제안한 방법론과 비교 접근법은 지그문트 모빙켈(Sigmund Mowinckel, He That Cometh, 1954년), 프랭크 M. 크로스(Frank Μ. Cross, Canaanite Myth and Hebrew Epic, 1973년), 존 J. 콜린즈(John J. Collins, The Apocalyptic Imagination, 1984년)와 같은 저술가들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이 방법은 묵시문헌에서 역사와 일치되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묵시적 이미지의 신화적 뿌리로 짐작되는 것들을 조사한 다음 상징적이며 암시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선호한다. 현대 묵시 연구의 세 번째 방향은 헬레니즘과 동양의 종교적 혼합주의의 맥락에서 그 문학을 이해하는 것이다. 묵시문학에 대한 현재의 활발한 관심은 1960년에 작성된 에른스트 캐제만(Ernst Kasemann)의 논문에서 시작되었다. 거기서 그는 “묵시문학이 그리스도교 신학의 어머니”라고 주장했다. (919.2)
 볼프강 판넨베르크(Wolfgang Parmenberg, Revelation as History, 1968년)와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희망의 신학, 1967년)과 같은 조직 신학자들도 그리스도교 신학 초기 단계에서의 묵시 문학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묵시문학과 그리스도교를 이렇게 연결짓는 것은 이전의 학자들이 묵시록과 초기 그리스도교 사이의 유대(細帶)를 거부했던 것을 생각할 때 특히 놀랍다. 점점 더 많은 현대 학자들이 유대인의 묵시문학은 초기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 신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919.3)
 3. 묵시문학에 대한 오늘날의 접근법들
 20세기 후반의 성경묵시문학에 대한 접근은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영적 ·우화적 접근과,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해석의 두 가지 범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919.4)
 대니얼 휘트비의 저서에서 유래된 천년기후재림론(postmillennialism,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기 이후에 일어난다는 개념)은 19세기의 대부분 동안 보수적인 신교도들 사이의 종말론 사상을 지배했다. 그것은 이제 인기를 잃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여건이 악화됨에 따라, 그 사상은 이전에 가졌던 강세를 잃어버렸다. 우리 시대의 증가하는 불확실성 말고도, 성경 또한 천년기후재림론의 입장을 배제한다. 휘트비의 입장과 달리, 요한계시록의 기자는 재림이 천년 이후가 아니라 분명히 그 전에 일어나리라고 하는 것이다(계 19:11- 20:10). (919.5)
 a. 영적인 접근 또는 풍유적인 접근
 성경 묵시문학에 역사—비평적 방법을 적용함으로써, 많은 학자들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을 장래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 경험의 내적인 의미에 대한 제안으로 간주한다. (919.6)
 성경 묵시문학에 대한 이러한 입장이 점점 더 인기가 많아지고, 고대근동 신화에서 묵시의 이미지를 추적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특히 그렇지만, 모든 역사 비평가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묵시의 이미지를 역사상 실체를 가리키는 암호로 보는 경향은(비록 이러한 실체들이 과거에 국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비평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져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919.7)
 성경 묵시문학에 대한 풍유적 또는 영적 해석의 또 다른 형태는 특히 요한계시록 20:1-10의 무천년론적(amillennial) 이해에서 볼 수 있다. 무천년론자들은 역사-비평학의 전제들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요한계시록 20장의 1,000년이 우리 주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그리스도교 시대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천년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어 그의 두 번째 강림으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9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