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사내아이를 낳은 여자가 광야로 피신하고,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양육을 받았다고 기록한다(계 12:6). 같은 장에서 뒤에 여자는 광야에서 그녀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보살핌을 받는 것으로 다시 한번 묘사된다(14절). 그 다음 장에서 용으로부터 능력을 얻은 짐승은 “마흔두 달” 동안 권세를 부린다(계 13:5). (907.9)
 이러한 시간적 언급들 중 몇은 동일한 상황 즉 하나님 백성의 억압에 대한 서술에서 나오므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일천이백육십 일”“마흔두달”은 다 같은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니엘과 요한은 같은 시간 간격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상징적인 시간 언급은 무엇을 의미할까? (907.10)
 먼저 이러한 시간적 언급이 상징적인 문맥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해석학적 일관성을 따르자면, 그 시간적 요소들도 나머지 상징적 이미지와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야만 한다. 해석하는 천사는 두 뿔을 가진 숫양이 메대와 바사의 왕들을 상징한다고 지적했다(단 8:20). 그 숫염소는 헬라의 왕(나라)을 상징했다(21절). 요한계시록 12장의 상징에서 큰 용은 사탄을,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 (908.1)
 분명히 그 이미지는 상징적인 것이다. 짐승과 여자, 그리고 시간에 대한 언급들은 문자 그대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수명이 짧은 짐승들이 역사 속의 오랜 기간 동안 존재하며 지배권을 가진 나라들을 상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상징적 짐승들과 관련된 시간 요소도 장구한 기간을 나타내는 것이 분명하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908.2)
 다니엘 9장은 이러한 표현들의 본질과 의미를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다니엘 9:24-27의 이상은 문자적으로는 “일흔 이레”라고 하는 기간으로 시작된다. 그 “일흔 이레”는 예루살렘을 복구하고 재건하라는 법령의 포고와 함께 시작되어,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도래, 그의 죽음, 그리고 성읍과 성소의 파괴까지 계속된다. (908.3)
 역사—비평학자들과 보수적인 학자들 모두는 24-27절에 명시된 다양한 국면들이 성취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기 위해서는 “일흔 이레”의 기간을 연(年) 단위로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구절에 자세히 나와있는 사건들의 전개에는 “일흔 이레”를 날 수(즉 490일)로 계산했을 때 나오는 1년 4개월 10일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일반적인 주석가들과 일부 성경들(참조 RSV)은 “일흔 이레”“해”라는 단어를 첨가하여 “해로 쳐서 칠십 주일”(seventy weeks of years)이라고 읽는다. (908.4)
 “일흔 이레” 또는 “칠십 주일”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더 큰 맥락에서 지지를 받는다 다니엘 9:242절로부터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보낼 것으로 예레미야가 예언한 “칠십 년”의 개념을 가져와 사용한다(참조 렘 25:11, 12; 29:10). 실제로 다니엘은 다니엘 9:24-27에 언급된 사건들에 배정된 시간은 예레미야가 말한 칠십 년의 7배에 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다니엘 9:2“칠십 년”에 대한 언급은 24절“칠십”이라는 단어도 또한 수년의 단위로 이해되어야 함을 암시한다. (908.5)
 이상에 나오는 다양한 시간 언급들과 이상들의 평행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감안할 때, 과거의 역사주의 해석자들과 마찬가지로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묵시적인 장들에서 상징적인 하루는 문자적으로 한 해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908.6)
 윌리엄 H. 셰이(William H. Shea)는 1일—1년 원칙을 세심하게 검토하였다. 그는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예언에서 이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23가지 성경적 이유를 제시하였다. 또한 그는 BC 2세기부터 쿰란 이후 시대까지 유대인 해석자들이 연—일 원칙을 알고 적용했음을 입증했다(Shea 56-92; 다니엘서의 세 가지 주요 기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심판 III. B. 1, a.(2)를 참조하라). (908.7)
 E. 상징성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장기적인 예측들은 상징으로 가득한데, 그것들은 때때로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아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제공된 해석은 모든 세부 사항을 강조하거나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메시지의 핵심을 명확하게 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다니엘 2장의 인간을 닮은 신상은 그 신상의 발가락수나 그것들의 정확한 신원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제국과 통치자들이 연속됨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908.8)
 마찬가지로, 요한도 자신이 사용하는 상징적인 이미지와 관련된 모든 세부 사항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세부적인 것들은 연상력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다 세세히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밝혀지지 않은 의미를 현대의 해석자들이 발전시키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허황된 해석은 종종 역사주의적 접근을 거부하는 학자들의 비난만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정당화해 주었다. (908.9)
 묵시적 상징의 해석은 우선 성경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다니엘이 이상 중에 본 숫양과 염소의 의미를 듣거나(단 8:3-5, 20, 21), 요한이 큰 음녀가 앉아 있는 “물”“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계 17:1, 15)이라고 깨닫게 될 때와 같이, 때때로 해석은 바로 그 구절 안에 주어져 있다. 그러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는 경우 외에, 묵시는 성경의 이미지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 의미를 탐구해서 찾아낼 수도 있다. 그와 같이 요한계시록은 다니엘의 상징주의를 반향한다. 그 책 은 고전적인 예언으로부터 상징과 암시들을 끌어다 쓴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역사적 배경 또한 묵시적 상징들의 해석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의미는 우선 성경 안에서 찾아야 한다. (908.10)
 F. 반복(Recapitulation)
 다니엘과 요한은 둘 다 그 책의 이상들을 병렬시킨다. 동시에, 이상들은 이미 주어진 주제를 되풀이하고 확장한다. 그리하여, 다니엘 7장다니엘 2장이 서술한 내용을 다시 다루지만 앞의 기록에는 없는 자세한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요한계시록의 구조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 같은 연속체가 서로 병행하고, 사도 시대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독자를 이끌어 감을 보여 준다. 다양한 연속체의 이렇게 반복되는 본질은 다니엘 8장의 사건들이 다니엘 7장의 사건들에 시간적으로 이어지거나, 요한계시록의 일곱 나팔이 일곱 인을 뒤따르는 것처럼 그 장 들을 연속적 또는 직선적으로 읽는 것을 배제한다. (908.11)
 이상을 받는 예언자는 때때로 반복을 하거나 주제보다 앞서 빠르게 진행한다(참조 계 14:1-5; 20:9). 그는 역사의 모든 특징을 상세히 설명하는 포괄적인 설명을 하는 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목적에 가장 적합한 사건들을 선택한다. 성경 기자들의 특징이기도 한 이러한 관행들 중 어떤 것도 순차적인 역사적 과정을 무효화시키지 않는다. (9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