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사항들을 고려하면, 어떤 예언 구절들은 이중의 초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원래의 맥락에서 그들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것들은 또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 전 세계적인 캔버스에 그려지는, 인간 세상 끝날의 상황에도 적용된다. (904.1)
 신약에는 장기적인 예측으로 보이는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있다. 신약이 매우 강한 어조로 임박함을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에(참조 마 24:34; 롬 13:11, 12; 살전 4:15; 히 10:37; 계 1:3; 22:20), 신약 저자들이 예상한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기 어렵다. 신약의 임박함에 대한 인식에 의해 제기된 질문들은 온갖 신념을 가진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서 많은 토론을 불러 일으켰다.(참조 재림 II. D.) (904.2)
 마가복음 13장(마 24; 눅 21)과 요한계시록 말고도, 교회에 영향을 미칠 발전을 신약이 예측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본다. 예를 들어, 재림 전에는 “불법의 사람”이 등장할 것이다(살후 2:3). 반항이 있을것이다(행 20:29, 30).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이다(딤후 3:1-9). 박해가증가할 것이다(벧전 4:12). 그리고 모든 사건 중 최고의 사건은 구름을 타고 예수께서 돌아오시는 것이다(행 1:9-11; 요 14:1-3; 살전 4:14-18). 이 사건은 단지 묵시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신약 전체에 퍼져, 희망과 기대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904.3)
 이러한 장기적인 예측에 조건성의 원칙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예언들은 하나님의 예지(豫知)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아버지 외에는 어느 누구도 파루시아의 정확한 날짜를 알지 못하지만, 그 사건은 확정되어 있다. (904.4)
 d.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예측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기록하였다(갈 4:4).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초림, 즉 성육신(成肉身)은 우연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일어났다. 비록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사람들이 메시아의 출현을 수 세기 동안 기다려 왔지만,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시간표를 가지고 계셨다. 그 때가 충분히 되었을 때 그분은 나타나셨다. 교회의 역사가들은 종종 예수의 탄생을 위해 “세상”이 준비된 방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 너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계획을 실행하신 것을 깨달아야 한다. (904.5)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땅의 모든 족속이 축복을 받을 메시아(창 12:3)의 오심은 분명히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 약속의 일부이다. 하지만 메시아는 모든 민족을 위한 분이지, 이스라엘만을 위한 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언약을 초월한다. 언약의 약속들과 위협들을 지배하는 조건성의 원리가 그 초월성에 종속된다. 이스라엘이 그분을 위해 세상을 준비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메시아의 강림이 지연되었던가? 우리는 그것을 전혀 모른다. 그들의 준비는 분명히 미약했지만, 메시아는 오셨다. 그는 오셔야 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은 그를 보내셨다. (904.6)
 조건 원리를 메시아 예언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하게 보인다. 그분이 유다 지파로 오리라는 것(창 49:10) 다윗의 자손이 되리라는 것(사 11:1),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는 것(미 5:2), 그분이 구주이며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주는 분이 되리라는 것(사 53장)—이러한 예측들에 조건성을 말할 수는 없다. 마태는 반복적으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마 1:22; 2:15, 17, 23; 4:14; 8:17)이라는 공식과 함께 구약을 인용한다. 그의 이름까지도 탄생 이전에 마리아에게 전해졌다(마 1:21)—이는 분명히 메시아의 초림에 대한 하나님의 사전 계획의 축소판이다! 메시아 예언으로 분류될 수 있는 특정한 예언들을 넘어서, 구약 전체는 그분을 바라본다. 그것은 신약에서 경축되는 그 탄생을 향하여 점점 기대가 진전되고 범위를 좁혀가는 작업이다.(구약의 일부 메시아 예언에서는 두 강림이 합쳐져 있다[참조 사 11:1-9]) (904.7)
 e. 결론
 성경 예언의 비묵시적인 부분을 분류하는 것은 데이터의 복잡성을 보여 준다. 조건성은 고전적 예언의 중요한 원리로 나타난다. 그것은 실제로 언약의 약속과 위협을 반복하는 구약의 많은 부분에 적용된다.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에 대한 예언의 일부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모든 비묵시적 예언이 조건부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단기 및 장기 예측 모두에서 인간의 반응에 관계없이 성취의 확실성을 발견한다. (905.1)
 2.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측들
 성경의 묵시를 검토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묵시는 이스라엘이나 소아시아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이스라엘이나 소아시아의 경계를 넘어선다. 처음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포로가 된 나라에 전해지든지(다니엘), 또는 박해를 받는 교회에 전해지든지(요한계시록), 그것이 발생한 직접적인 환경을 초월한다. 묵시는 우주적인 범위를 망라하며, 마지막 때에 초점을 맞추고 연속되는 세계 역사를 내달린다. (905.2)
 a. 다니엘
 다니엘 2, 7, 8, 12장과 이사야, 예레미야, 또는 에스겔의 예언들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다니엘서에서 이스라엘의 위치는 희미해졌고, 위협이라는 요소도 그렇게 되었다. 대신에 그 자리에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국가들의 행진을 묘사하는 파노라마가 있다. 우리는 세계 무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관객이 되어있으며, 하나님의 예지는 미래의 흐름을 펼쳐 놓았다. (905.3)
 야훼께서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신다(단 2:20-22) 그분은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고, 후에 될 일을 알려주신다(28, 29절). 그분은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자기 뜻대로 행하”시며, 아무도 그분의 계획을 방해할 수는 없다(단 4:35). 그분이 “사람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자리에 세우”신다(단 5:21). (905.4)
 이러한 관념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예지력에 중심을 두고 있다. 여기서 역사의 인간적 측면은 하나님의 백성의 성쇠(盛衰) 속에서 묘사되는 한편, 역사의 주(主)이신 야훼의 통치 개념 속에 모여있다. 조건성의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905.5)
 예언적인 기간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그것은 긴 것들이다. 그것들은 그들이 주어진 역사의 파노라마 범위와 일치하며, 또한 그래야 한다. 우리는 신성을 모독하는 “작은 뿔” 권력이 통치하는 1,260일의 기간이 있을 것과(단 7:25), 작은 뿔의 악한 행위 후에 성소가 오염을 씻을 때까지 2,300저녁과 아침[야주]이 지나야 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단 8:14). 주어진 배경을 감안할 때 이러한 기간 예측들을 문자적인 의미로 볼 수는 없다. (905.6)
 고전 예언에 대한 연구에서, 언약적 배경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므로, 다니엘서에도 그 주제가 있는지 주목해 보아야 한다. 언약의 개념은 사실 9장11장의 두 예언에 나온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조건성이 어떤 의미에서든 그 책의 숨겨진 의제라고 제시하지는 않는다. (905.7)
 먼저, 우리는 다니엘 자신이 희망하고 이해하는 사항과 역사의 주재인 야훼께서 그에게 소통하는 미래의 전개 사이를 명확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다니엘은, 공직에서는 지위가 높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동포들과 함께 잡혀 온 한 사람의 포로일 뿐이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있고, 성소는 황폐하다. 이 상황에서 다니엘은 그의 백성과 성읍과 성소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다(단 9:1-19). 그의 기도는 언약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 황폐는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위협의 성취였으며, 마찬가지로 그 율법은 야훼의 자비에 대한 희망도 제공한다. (905.8)
 그러나 다니엘에게 주어진 예언은 이스라엘 역사를 훨씬 넘어섰다. 실제로 다니엘은 성소를 언급하는 8장의 환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27절). 마찬가지로,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도 성읍과 성전의 회복을 훨씬 넘어서 메시아에게까지 이르렀다(단 9:24-27). (9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