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적 요소는 자명하다. 사람들의 반응이 결과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들의 말이 야훼께로부터 온 메시지라는 의미에서, 그것을 “예언”이라고 하는 것도 맞다. 선지자는 신성한 충동을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메시지들을 알려지지 않은 미래를 밝히는 의미의 예측적 예언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은 언약의 “율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 율법은 야훼 자신처럼 고정되어 있다. (902.4)
 여기서 예측적인 요소는 다음과 같은 신약의 해당 부분에서보다도 강하지 않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우리는 확실성,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그분에 의해 결정되며, 협상할 수 없다. (902.5)
 이 첫 번째 부류의 예측은 “조건적” 예언이라기보다는 언약적 약속이나 위협이다. 이 말은 또한 아브라함 언약의 조항에도 적용된다. 신명기 28장의 약속들처럼, 그것들은 순종하는 응답을 전제로 한다(참조 창 12:1-3; 13:14-18; 15; 17; 18:17-19; 21:1-13, 22:1-18). (902.6)
 b. 단기적 예측
 구약의 많은 단기적인 예언은 언약 관계의 약속/위협에 포함되지 않는다. 주변 국가들과 관련되어 있거나, 경우에 따라 개인이 관련된다. (902.7)
 비록 한 나라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를 맺으셨지만 야훼는 온 세계의 주님이시다. 그분은 주변 국가들사이에서 그의 특별한 백성 중에 있는 악함을 눈감아주기 위해서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 또한 심판을 받는다(참조 사 13장, 렘 46-51장, 겔 25-32장, 암 1, 2장). (902.8)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웃들에 관한 예측은 이스라엘에 대한 언약의 약속/위협과 같이 해석이 명확하지 않다. 조건성과하나님의 주권이 모종의 긴장속에 서 있다. (902.9)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나 심판이 인간의 결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902.10)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렘 18:7-10). (903.1)
 조건에 대한 언급을 생략한다고 해서 반드시 조건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예언이 언약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인간의 반응이 포함된 축복이나 저주와 관련된다면, 그 예언은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조건적이다(참조 렘 31:35-37). (903.2)
 요나의 경우는 조건적 예언의 가장 뚜렷한 사례이다. 사람들의 변화는 하나님의 계획의 변화를 이끌어온다(욘 3:9. 10). 이 책의 마지막 절은 야훼의 성품을 강조하며, 그것은 그분의 모든 행위에 공의와 자비를 보장한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 4:11). (903.3)
 야훼께서는 변덕스럽게 멸망시키지 않으신다. 이스라엘의 주변국들이 언약 밖에 있지만, 온 땅의 하나님은 그분이 그들에게 가져다 주신 모든 일을 정당하게 처리하실 것이다. 한 국가가 망하게 될 때 그것은 결국 그들의 사악함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니느웨에 대한 요나의 예언이 야훼의 사자들에 의해 그 성읍에 전달된 일련의 기별들 중 하나일 뿐임을 주목해야 한다. 나훔은 니느웨의 최후를 그림처럼 자세하게 예언한다(참조 습 2:13-15). (903.4)
 니느웨의 예는 이방 국가에 관한 예언의 전형이 아니다. 이사야에서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선지자가 직접 운명의 말씀을 전하도록 보내진 사례는 없다. 열방이 어떻게 하나님의 위협(아마도 전달자들을 통하여, 참조 사 21장; 렘 27장)을 들었는지, 또는 그들이 항상 들었는지 여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이 무서운 예측들은 하나님의 확실성이라는 배경에서 온다. 응징을 미룰 수 없다고 야훼는 결정하셨다. (903.5)
 열국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에서 두 가지 놀라운 예를 살펴보라. 10장에서 “앗수르 사람은··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5절)라는 극적인 표현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지정한 도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된 후에는 거만한 앗수르 자체가 최후를 맞을 것이다(12-19절). 이 예측에서는 조건성을 넘어 신성한 주권의 영역으로 갔다. (903.6)
 두 번째 예는 고레스의 경우이다(사 44:28; 45:1-6).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이스라엘을 회복하려는 야훼의 계획이 성취되게 하기 위하여 여기 한 이방의 왕이 태어나기도 전에 지명하여 부르심을 받는다(사 45:4). 이것은 조건적 예언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예지와 주권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903.7)
 신약에는 단기적인 예측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일부는 발생한다. 아가보는 기근을 예언한다(행 11:28). 바울의 친구들은 성령으로 예루살렘에서 그를 기다리는 결박을 예언한다(행 20:23; 21:10, 11). 하지만 가장 중요한 단기 예측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에 관한 것이다(마 24장; 막 13장; 눅 21장). (903.8)
 이들 중 어느 경우에도 조건은 언급되지 않았다. 바울의 경우, “만약”이라는 말은 예루살렘에 가느냐, 가지 않느냐 하는 결정에만 해당된다. 예루살렘의 임박한 함락이 조건적이라는 암시도 없다. 질문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마 24:3)뿐이다. (903.9)
 따라서 언약 조항 이외의 단기적인 예측을 해석할 때, 인간의 반응에 따라 조건적인 예언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결정은 교차하고 상호 작용한다. (903.10)
 c. 장기적 예측
 때때로 장기적인 예측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종말과 관련이 있다. “주의 날”이라는 표현이 그 좋은 예이다. 이 용어는 어떤 도시나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이것은 더 이상 정의를 보류할 수 없는 보복의 날이다. “주의 날”은 보통 이스라엘 국가의 임박한 종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점차 더 폭넓은 양상을 띠게 된다. 어떤 예언에서는 이스라엘의 형벌이 우주적인 규모로 확장됨에 따라 모든 것의 끝을 나타낸다(욜 1:15; 2:1; 3:14; 사 2:2, 12; 34:8; 암 5:18-20; 겔 7:19; 습 1:7, 14, 18; 2:2; 벧후 3:7-12). (9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