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교리·신학 핸드북 제21장 건강과 치유(조지 W. 리드, 설대환) V. 그리스도교 역사에 나타난 질병과 치유: 역사적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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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은 그분의 제자들의 사역 뿐 아니라(막 6:7-13; 마 10:1-5; 눅 9:1-6; 눅 10:1-9) 사도교회에서도 계속되었다. 이레나이우스(130년경-200년경), 오리게네스(185년경-254년경), 유스티노스 마르튀로스(165년경 사망), 테르툴리아누스(160년경-220년경),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 같은 여러 교부들은 치유 사역이 그때까지 여전히 교회에 남아있다고 묘사했지만 주로 그것을 육체적인 관점에서 정의했다. 몬타누스주의자들의 잠깐 동안의 부흥이 있었지만 그것은 쇠퇴하였다. (885.1)
 그리스도교의 치유 사역이 침체하게 된 네 가지 요인이 있었다.

   (1) 성경에 대한 풍유적이고 환상적인 해석을 무분별하게 채택하는 일과 더불어 일어난 영지 주의적인 이론들이 인간의 몸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2) 점차적으로 헬라의 이원론적인 견해를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을 불멸하는 영혼과 몸으로 분명하게 분리하는 개념으로 성경적 전인론(wholism)을 대체하였다. 그리하여 영혼은 영원한 영적 중심이며, 몸은 임시적이며 때로는 제멋대로 구는 감옥으로 폄하되었다.

   (3)고통을 하나님의 훈련으로 합법화시켰다. 영혼의 대적인 몸과 마음의 욕망들은 악과 유혹만을 제공했고, 따라서 그것들은 몸에 금욕적인 고통을 주어 억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엄격한 생활을 통해 육신과 싸우기 위해 은둔처로 향했으며, 수도원과 수녀원에서 그런 전통을 이어받아 확립했다.

   (4) 제도화된 예식 중심의 교회에서 일어난 성례전주의와 성직 제도는 치유의 개념을 제쳐놓았다. 선행은 성례전이라는 옷으로 입혀지고, 육체적인 것은 주로 무관심하게 방치되었다. (885.2)
 특히, 동방에서는, 인도주의적인 구호 사역이 그리스도교의 자선 활동으로 한동안 계속되었다. 갑바도기아의 가이사랴 주교 대 바실리우스(Basil the Great, 329-379년)는 도시 교외에 큰 병원을 세웠는데, 그곳에서 일련의 기적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Theodoret Church History 4. 19. 1-13).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그러한 기적들이 사도시대에 중단되었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후기 저서에서는 기적들이 일어난 몇 곳을 발견했다고 기록했다(참조 On the Profit of Believing 1.34; Retract b. i. c. 14.5). (886.1)
 6세기 비잔티움의 강력한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483-565년)는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의과 대학들을 폐쇄시켰다. 하지만 아랍 의사들에 의해 명맥을 이어가던 제한적인 의료 지식들이 후기 중세에 의료 센터였던 무어인의 스페인(Moorish Spain)에서 행해진 많은 시술로 이어져 가고 있었다. 중세기동안 어떤 교회들과 수도원들은 병자들과 죽어가는 자들과 이단으로 배척받는 소수의 무리들을 치유해 주기 위해 간단한 쉼터를 운영했다. (886.2)
 하지만 12세기에 이르러 일련의 교회 칙령은 의학을 거절했으며, 1163년에 투르 공의회(Council of Tours)는 교회의 인사들이 외과 의사로 일하는것을 금지시켰다. 병자들은 성물과 성자들의 공력을 주장하는 것에 기초한 헌신에 의존되었으며, 이 때문에 의료적 치료는 경쟁적인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1566년까지 교회법은 어떤 병자라도 발병 후 3일 이내에 그의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의사가 치유하는 것을 멈추도록 요구했다. 신체를 절단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해부학과 생리학에 대한 지식은 제한되었다. 세르베투스(1511-1553년)와 관련된 유명한 사건은 그가 절단을 금지하는 교회법을 어기는 것으로 부분적으로 시작되었고, 그의 발견들은 몸에서 피가 순환하고 있음을 증명한 하비(1578-1657년)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886.3)
 칼뱅(1509-1564년)과 루터(1483-1546년)는 사도 시대까지만 치유 기적들이 주어졌다는 전통적인 전제를 따랐지만, 후에는 기도의 응답으로 멜란히톤이 회복된 것에 큰 감명을 받기도 했다. 웨슬리의〈기본생리학(Primitive Physick)〉은 여러 판으로 출판되었으며 치유 지침서로 각광을 받았다. 18세기 후반에서부터 근대 과학의 발전과 함께 건강관리가 서서히 과학적 범주로 들어욌으며, 그 전환은 1850년 무렵까지 대부분 끝마쳐졌다. (886.4)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1850년대 후반과 1860년대 초반에 건강에 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부분은 엘렌 G. 화잇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녀가 1863년 갓 태어난 교회를 향해 교회를 위한 사역으로 건강에 깊은 관심을 갖도록 호소함으로써 발전되었다. 북아메리카에서 진행된 활발한 건강 개혁운동의 영향 아래, 재림교인들은 담배와 술뿐 아니라 당시 유행했던 중금속과 마약 성분을 사용한 치료를 거절하는 것을 포함한 개혁을 선택했다. 이것들은 채식으로 개혁하는 식단과 천연 치료(특히 수치료)에 대한 홍보로 이어졌다. 건강에 대한 재림교회의 신학은 하나님의 치유 계획의 일부로 과학적 발전을 받아들이며, 재림교회는 전인적 원칙에 집중하는 건강 사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886.5)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어느 정도 독특한 점을 지니고 있으나 치유에 있어서 기도와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의지하는 한편, 천연 법칙의 적용을 이해하는 것을 하나님의 치유의 수단 가운데 포함시킨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는 예방적이고 치료적인 방법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천연계 가운데서 여러 가지 방법을 제공하신다. 육체적 건강은 자연의 정화 작용과 치유 원리가 상호작용함으로써 증진된다. 그러므로 예방을 위해서는 신선한 공기, 깨끗한 물, 균형지고 온전한 식단, 충분한 햇빛, 운동과 노동 적당한 휴식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나오는 긍정적인 효과에 주목한다. 동시에, 모든 증명된 치유법이 질병과 장애에 대처하기 위해 적용되어야 한다. 전인적 회복은 건강관리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삶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계획에 되도록 가까이 돌아가려고 할 때만 대부분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 (886.6)
 인간에 대한 이런 전인적인 이해는 인간이 몸을 떠나서는 실재 혹은 존재가 없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복합적이고 상호적인 결합체이며, 신체와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정신의 기능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으므로 모든 측면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8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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