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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서론
 엘렌 화잇은 자신이 신학자라고 주장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글들은 깊은 신학적 통찰을 보여 주는 증거를 내비친다. 계시와 영감과 성경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매우 깊은 통찰을 보여 준다. 그녀는 그녀의 저술 전체를 통해 이 주제들에 대해 가르치지만 가장 폭넓은 논의는 그녀가 후반부(1880-1915)에 기록한 책들에 나타난다. 그녀가 시종일관 지녔던 가장 큰 관심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최고 계시로 높이고 독자들에게 성경을 영감 받고 권위 있는 무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도록 촉구하는 데 있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품성의 계시이고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시는 일에 관한 신뢰할 만한 기록이며 신앙과 실천의 틀림없는 표준으로 성경을 지지했다. (80.1)
 B. 계시
 엘렌 화잇에 따르면, 하나님을 아는 참지식은 “이생과 내세를 위한” “모든 참된 교육 및 모든 참된 봉사에 필수적인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대로 그분을 알아야 한다.”(치료봉사, 409). 그렇다고 이것이 그녀가 각기 다른 형태의 계시들을 동일하게 명료하고 충분한 것이라고 간주했다는 뜻은 아니다. (80.2)
 엘렌 화잇은 창조 사업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관해 빈번하게 언급했다. 그녀는 〈교육〉이라는 책의 “천연계 속에 나타난 하나님”이라는 장을 이런 주장으로 시작한다. “모든 피조물에는 하나님께서 치신 인(仰)이 보인다. 삼라만상은 하나님을 증거한다.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주의 경이와 신비를 볼 때 무한한 능력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교육, 99). 비슷한 맥락에서 그녀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헤아릴 수 없는 증거로써 우리의 마음을 당신에게 붙들어 매셨다. 천연계의 사물을 통하여 또는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깊고 자애로운 인간적 결연(結緣)을 통하여 그분은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고자 하셨다.” 그런 다음 그녀는 진지한 생각으로 이런 말을 덧붙인다. “이런 것들도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지만 불완전한 것이었다.”(정로의 계단, 10). (80.3)
 엘렌 화잇은 천연계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능력의 계시에 관해 숭고하게 말하곤 하지만이 계시 자체만으로는 인간이 유일하신 참하나님을 알고 경배하기보다 우상숭배와 회의주의로 이끌리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한편으로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그분의 손으로 지으신 창조물에 나타난 그분의 품성을 더 이상 분별할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론 “죄의 저주로 인해 손상된 천연계는 불완전하나마 창조주에 관한 증언을 전달할 수 있다.”(교회증언 제8권, 256). 따라서 자신의 지혜로써는 “인간은 그분의 창조물을 통해서 그분에 관한 불완전한 지식을 모으고, 이런 지식은∙∙∙인간을 우상숭배자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눈먼 상태에서 천연계 및 그것의 법칙을 천연계의 하나님보다 더 높인다.”(위의 책, 257). (80.4)
 죄로 어두워진 정신을 지닌 인간 존재 및 하나님과분리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인격적인 계시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그런 필요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족시켰다.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와 품성을 나타내기 위해 천연계보다 더 확실한 계시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위의 책 265). 이런 계시는 충분한 것이다. 엘렌 화잇은 이에 대해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하고 알수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삶과 품성에 계시되었다.”라고 요한복음 1:18을 인용하면서 주장한다(위의 책, 286). 이렇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품성과 존재에 대한 온전하고 충분한 계시라는 점은 그녀의 글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강조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런 계시는 “십자가에 그 중심이 있다. 그것의 온전한 의미는 말로나 펜으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인간의 마음도 이해할 수 없다.”(위의 책, 287; 치료봉사, 423). (81.1)
 엘렌 화잇의 글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에 대한 최상의 계시라고 강조하면서 또한 족장과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서 주어진 계시도 지지한다. 그녀는 분명하게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인정한다.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계시하셨다.”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족장과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나눠주셨다. 구약의 계시들은 복음 곧 무한하신 아버지의 목적과 뜻을 힘 있게 드러냈다.”(RH Jan. 7, 1890). 엘렌 화잇에게 하나님의 계시는,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진술에 나타난 대로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81.2)
 “구약은 신약에 빛을 비추며, 신약은 구약에 빛을 비춘다. 각각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계시이다. 족장들에게 나타난, 희생제사제도에 상징된, 율법에 묘사된, 선지자들에게 계시 된 그리스도는 구약의 부요이다. 삶과 죽음과 부활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드러나신 그리스도는 신약의 보화이다 구약과 신약은 모두 진지한 구도자에게 의미의 새로운 깊이를 계속적으로 드러낼 진리들을 제시한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증언, 462). (81.3)
 엘렌 화잇은 성경의 기록을 토대로 족장과 선지자들에게 주어진 예언의 선물을 이상 및 꿈과 긴밀하게 연계시켰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에게 반항적으로 도전한 일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다. “예언의 선물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부인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계시와 꿈으로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야훼께서 친히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고 선언하신 모세에게는 더 밀접한 교제를 허락하셨다.”(부조와 선지자, 385). 그녀는 꿈과 이상들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지만, 예언적인 꿈은 사탄이 불어 넣은 꿈과 이상뿐 아니라 일반적인 꿈과 구별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꿈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상(異像)으로 분류되며, 이상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예언의 영의 열매이다. 그런 꿈들은꿈을꾼사람과꿈을 꾸게 된 정황등을 고려해 보면 그 자체로 진실성의 증거들을 지닌다.”(교회증언 제1권, 569, 570). (81.4)
 C. 성경과 영감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의 저자이며 절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경의 결정적인 역할을 부정하거나 폄하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이다.”(교회증언 제8권, 319).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고 듣고 느낀 자들은 이렇게 증언할수 있다 “나는도움이 필요했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도움을 발견했다 모든 부족한 것은 공급되었고 내 영혼의 갈증은 채워졌다. 나에게 성경은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성경이 내 영혼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성경을 믿는다.”(위의 책, 321;참조 정로의 계단, 112). (81.5)
 그녀는 영원한 말씀 곧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성경이라는 기록된 말씀 사이에서 의미 있는 유비를 본다. 그녀는 〈각 시대의 대쟁투〉라는 자신의 책의 매우 유익한 서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사람의 말로표현된 진리들을 포함하고 있는성경은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나타낸다. 그와 같은 연합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본성 가운데 존재하였다. 따라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요 1:14)는 진리는 그리스도에게 해당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경에도 해당된다.”(각 시대의 대쟁투, vi; 참조 교회증언 제5권,746-749). (82.1)
 이렇게 그녀는 성경이 인간적인 측면과 신적인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고 인식했지만 부분 영감이나 영감의 차등 이론은 철저하게 배격했다. 1880년대에 재림교회의 어떤 지도자들은 성경의 부분들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지만 어떤 부분은 단순히 인간적인 생각을 제시한다고 주장했다 엘렌 화잇은 개인적인 편지로나 출판물들을 통해 이런 사상에 대응했다. 그녀는 〈교회증언〉의 통찰력이 번뜩이는 “성경의 오묘는 곧 그 영감의 증거임”이라는 장에서 인간의 이성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성경의 난제와 신비들을 상세히 논한다(교회증언 제5권, 698-711). 그녀는 “회의론자들이 성경의 난제가 성경을 반대하는 논증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만, “그런 난제가 바로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다는 강력한 증거를 이룬다.”라고 반박한다. 한편으로 성경은 “단순하게 그리고 인간의 마음의 필요와 소원에 가장 알맞게 진리를 드러내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렇게 쉽게 이해될 수도 있는 진리 뒤에 하나님의 영광을 숨겨놓은 오묘, 곧 연구자의 마음을 압도하지만 진지하게 진리를 찾는 구도자에게는 존경심과 믿음을 불어넣어 주는 오묘가 들어 있다. 그가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것이 살아 계신 말씀이라는 확신은 더욱 깊어진다. 그리하여 인간의 이성은 하나님의 장엄한 계시 앞에 머리를 숙인다”(위의 책, 700). (82.2)
 같은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는 “하나님의 영의 인가를 받지 않은 성경의 영감에 관한 견해들”에 대해 경고한다.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둘러싸여 있는∙∙∙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잘못을 따져 묻고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판단할 때 그들은하나님의 권고 없이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위의 책, 709). 그런 다음 그녀는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원래 있는 그대로 서게 하라. 인간의 지혜가 성경의 한 말씀의 능력도 감소되게 하지 말라.”(위의 책, 711)고 촉구한다. (82.3)
 성경에 신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이 결합된 것은 성령께서 택함 받은 인간 존재들에게 역사한 결과이다. 엘렌 화잇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종들의 정신과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셨다. 그분께서는 꿈과 이상과 표상과 상징을 주셨고 진리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그 사상을 각각 인간의 언어로써 구체적으로 표현했다.”(각 시대의 대쟁투, v). 다른 곳에서 그녀는 더 자세히 설명한다. “영감을 받은 것은 성경의 단어들이 아니라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영감은 인간의 단어나 표현에 작용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화로 말미암아 사상으로 물든 사람에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어들은 개인적인 정신의 감명을 받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의 정신으로 물들여진다. 신적인 정신과 의지가 인간의 정신 및 의지와 결합되어 인간의 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가려 뽑은 기별 제1권,21). 성령은 각기 다른 기자들의 개성을 말살하지 않았다. “성경은 신분과 직업, 지적 및 영적 소양이 크게 다른 사람들로 말미암아 각기 다른 시대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다루어진 주제의 성격뿐 아니라 그 문체도 크게 다르다. 기자에 따라서 그 표현 방법이 각각 다르며 때로는 같은 진리라도 어떤 기자는 다른 기자보다 그것을 더욱 예리하게 표현한 경우가 있다.”(각 시대의 대쟁투, v). “성경은 초인간적인 숭고한 언어가 아니라” “인간적인 언어로”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그 표현들은 인간적인 불완전함에 매여 있다. 그녀는 “성경은 실질적인 목적을 위해 주어졌으며” “하나님은 성경에서 자신을 말이나 논리나 수사법 속에 둠으로써 시험의 대상이 되게 하지 않으셨다.”(가려 뽑은 기별 제1권, 21, 22)라고 역설했다. 그녀는 성경을 필사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비롯될 수 있다는 가능성 또는 개연성을 인정했다(위의 책, 16). (82.4)
 그렇다고 이런 모든 사실이 어떤 사람에게 성경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게 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 거듭 거듭 엘렌 화잇은 성경을 비평하는 비참한 결과에 대해 강한 경고를 발했다. 예컨대 이렇게 말했다. “성경을 해부하고 추측하고 재구성하는 고등 비평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 신앙을 파괴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간의 삶을 제어하고 향상시키고 고무시키는 능력을 빼앗고 있다.”(사도행적, 474). (83.1)
 그녀에 따르면, 영감의 가장 중요한 효과 가운데 하나는 영감 받은 기자가 자신이 기록한 것을 전적으로 신뢰했다는 사실이다. 엘렌 화잇은 1876년에 처음 출판하고(ST Feb. 24) 나중에 좀 더 영구적인 형태로 출판한(교회증언 제4권, 9-15) “성경의 전기들”이라는 기사에서 그런 점을 강조했다. 성경의 비평가들은 성경의 많은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문자적인 역사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엘렌 화잇은 강조하는 표현을 써서 이렇게 말했다.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의 생애는 실재한 인물들의 진실된 역사이다.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후 사도 시대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일어난 일 및 실재 인물들의 진실한 경험에 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인간적인 연약성과 허물로 인해 거룩한 역사의 페이지들이 흐려졌다는 사실에 대해 논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의 서기관들은 자신의 의도대로 기록하지 아니하고 성령이 지시하는 대로 기록하였다. 그들은 실재 그대로의 진리를 기록하였고, 이 준엄하고 말하기 힘든 사실들을 드러낸 것은우리의 유한한 마음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 때문이다.” 그녀에게 이런 진실성은 “성경이 지닌 신뢰성을 보여 주는 최상의 중거 가운데 하나이다.”(위의 책, 9). (83.2)
 그러나 성경의 영감성은 인간의 죄와 반역을 말하는 진실된 기록에서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보여 주는 놀라운 계시들에서도 나타난다 “성경의 역사는 낙심하는 마음을 하나님의 자비의 소망으로 붙들어 준다 ∙∙∙영감의 말씀은 잘못을 범한 영혼을 위로하고 격려한다.”(위의 책, 15). 엘렌 화잇에 따르면,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라는 최상의 증거”“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위대한 것들을 명상할 때”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역사하여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이런 변화 자체가 이적 중의 이적이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변화는 말씀의 가장 깊은 오묘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고, 다만 성경이 천명한 대로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골 1:27)임을 믿을 뿐이다”(교육, 171,172). (83.3)
 엘렌 화잇은 자신의 글 전체를 통해 개인적인 성경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경은 우리 귀로 분명하게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따라서 성경을 읽고 명상하는 자는 “무한하신 분의 청중으로 여겨져야 한다.”(ST Apr. 4, 1906). 다른 곳에서 그녀는 또 이렇게 천명했다. “성경에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배우는 것이 이성을 가진 모든 존재의 첫째요 가장 숭고한 의무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598). 그녀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대한 그들의 확신을 저해하는 잘못된 교리들에 기만당하지나 않을까 깊이 염려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 연구를 “면밀하고 철저하게 그리고 온유함과 목적의 진실성을 가지고 수행하라”고 촉구했다(RH Apr. 24, 1888). 그녀는 개신교 개혁자들처럼 배웠든 배우지 못했든 성경을 스스로 연구하는 것이 모든 신자의 특권이자 의무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이해해야 하는 성경”이라는 기사에서 “성경과 영혼은 서로를 위해 있는 것이며, 따라서 말씀과 성령의 매개를 통해 하나님은 마음에 역사한다.”고 주장하면서, “성경이 모든 사람, 사회의 모든 계층, 모든 민족과 시대에 전해졌다.”라고 덧붙였다(ST Aug. 20,1894). 모든 사람은 구원이 제공되는 조건들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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