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13. 엘 깁보르—강력하신 하나님 (우리의 전사(戰士))
 이사야 9장은 영원한 광채로 빛나는 계시의 다이아몬드이다. 그 눈부신 광채 속에는 몇 가지 영광스런 메시야의 칭호가 들어 있다. 그 중에 엘 깁보르(Él gibbor)란 칭호가 있는데, 그것이 이 장에서 다루어질 주제이다. (191.1)
 이미 잘 아는 바와 같이 엘 은 강하고 능한 것을 뜻하며, 성경에서 그것 하나만 홀로 쓰였을 경우에는 전능자를 의미한다. 그 이름에 성령께서는 깁보르 란 말 속에 숨은 다른 의미들을 첨가하셨다. (191.2)
 깁보르(gibbor)는 어근 가바르(gaḇar)에서 나온 말로 힘세고 강함을 뜻하나 거기엔 구체적인 특성이 있다. 이 말 속에는 한 나라와 민족을 수호하기 위해 일어서는 전사(戰士)의 개념이 들어 있다(삼상 17:51). 골리앗은 체구가 엄청나게 크고 힘이 강하기 때문에 자기 백성에 의해 블레셋 군대의 대표로 선발되었다. 그들은 온 민족과 각 개인의 운명을 기꺼이 그의 손에 맡겼다. 그는 이스라엘 진영 앞에 나타나 누구든지 용기 있는 자는 나와서 자기와 일대일의 결전으로 단판을 지어 이기는 편이 진 편을 종으로 삼자고 도전했다. 다윗은 골리앗을 맞이하기로 자원하고 나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를 쳐죽이고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이 깁보르(gibbor)의 고전적 예증이다. (191.3)
 영어 성경에는 이 말이 champion으로 번역되어 이 장에 두 번 나온다(삼상 17:4, 23). [한글 성경들에는 이 말이 투사, 장수, 싸움을 돋우는 자 등으로 번역되었다—역자 주] 그러나 실제로 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이 말의 원뜻은 그와 유사한 뜻이나 조금 다른 이쉬-하-벤야민(íš-ha- benyamin), 즉 “오른손의 사람”을 그렇게 옮긴 것이다. “벤야민”이란 이름은 야곱이 이 말을 본따 지은 이름이다(창 35:18 난외주). (192.1)
 엘 깁보르 의 특성
 그러면 자기의 백성이 곤경에 처했을 때 찾아오는 그 깁보르 의 자격을 살펴보기로 하자. 골리앗은 최고의 투사로 선발되어(삼상 17:51, gibbor) 블레셋 온 민족을 대표하여 이스라엘 군에게 자기를 상대할 대표를 내놓으라고 도전한다. 골리앗은 그 인상, 체격, 힘, 용기, 명성, 무기, 경험, 그리고 성질로 보아 모든 필요한 조건을 제대로 구비한 사람으로 보인다. 다윗은 선뜻 자원하여 그를 대적하기로 자원했으나 사울은 마지 못해 그를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로 내보낸다. 다윗은 골리앗이 구비한 조건에 비하면 어느 면으로 보나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승리를 거두고 이방 신을 섬기던 전사를 죽여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 이야기에서 깁보르 의 기본적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192.2)
 또한 이 이야기는 “대쟁투”를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악인들의 최고 지도자인 사단은 모든 인생에게 일일이 생사 결단의 투쟁을 걸어온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대로 최고의 투사를 가지고 있다. 그는 단 한 번도 전투에 패한 일이 없는 엘 깁보르 이시다. 그는 40일 동안이나 금식을 계속하신 후, 여위고 약하고 탈수된 불리한 조건에서도 마귀와 그의 세력을 단숨에 패배시키고 당신의 백성을 위해 번복할 수 없는 승리를 쟁취하셨다. (192.3)
 깁보르 란 말이 성경에 어떻게 쓰였나?
 그러면 이 말이 성경 다른 곳에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다윗은 친구 요나단의 전사(戰死) 소식을 접하고 그의 체력을 묘사할 때 가바르(gaḇar)란 동사를 썼다. 사울과 요나단은 “사자보다 더 강하였도다(삼하 1:23; 참고 시 65:4)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그들은 마치 사자들에게 쫓기는 무력한 양 떼를 지켜 준 용감한 목자와 같았다. 다윗은 이미 사울에게 주께서 주신 힘으로 사자와 씨름하여 이긴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했다(삼상 17:34-37). 그는 요나단이 자기의 병기 든 자와 함께 믹마스에서 블레셋 군과 접전하여 이교의 적군을 쳐서 격퇴시킨 일에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던 일을 회상했다(삼상 14:15). (193.1)
 가바르(gaḇar)는 내적 취약성과 유혹을 이기기 위한 투쟁을 말할 때도 쓰인다. 야곱의 열 아들은 말다툼과 시기로 마음들이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막내 동생 요셉에게 증오의 화살을 집중했다. 그들 생애의 위기는 그들이 아버지의 간섭을 멀리 떠나 들에서 양 떼를 돌볼 때 요셉을 잡아 마음대로 처치할 수 있을 때 찾아왔다. 그들은 처음엔 요셉을 죽일 생각이었으나, 유다의 만류로 깊은 웅덩이에 그를 던져 넣어 굶겨 죽이려 했다. 철든 맏형 르우벤은 몰래 돌아와 그를 꺼내 살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가 없는 틈에 다른 형제들은 생각을 바꾸어 그를 “이스마엘인들의 한 무리”에게 팔아 넘겼다(창 37:23-36). (193.2)
 이 비극적 사건이 있은 후 유다는 형제들을 떠나(창 38:1), 그들의 영향을 벗어나 자기 나름대로 독립적 성품을 계발하여 드디어 형제들의 존경을 받기에 이른다. 여러 세대 후에 역대기를 쓴 기자는 그 때 일어난 기질적 변화와 지위의 교체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맏아들 르우벤의 아들들이라—그가 맏아들이었으나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그의 장자권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아들들에게 주어졌더라. 그러므로 그 계보가 장자권을 따라 계수될 것이 아니니, 이는 유다가 그의 형제들보다 ‘뛰어났으며’(gaḇar) 그에게서 최고 치리자가 나왔으나 장자권은 요셉에게 있었음이더라—”(대상 5:1, 2). 여기 “최고 치리자”는 예언적으로 먼저 다윗에게 적용되었고, 후일 다윗의 가장 위대한 아들 예수가 유다 지파에서 나옴으로 그에게 적용되었다. 다윗과 그리스도는 실로 이스라엘의 “용사들”이었다. (193.3)
 엘 깁보르 는 거인 전사 (巨人戰士)
 가바르(gaḇar)는 거인으로 번역된 일도 있고(욥 16:14), 실제보다 큰 인물, 그 용맹과 파괴력을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성경에서는 이 말이 동료들에게 용사로 인정받는 소수의 군인들(대상 7:2, 5; 11:26), 즉 위태로울 때 믿을 만하고, 도전하는 적군을 쳐부수고 승리할 힘과 능력이 있는 자들을 말한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된 땅을 향해 행군하는 중에 처음으로 부닥친 적군은 아말렉이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그들의 중보자 모세가 하늘의 보호와 도움을 구하는 기도의 손을 내릴 때마다 반드시 아말렉이 “이겼다”(gebber)(출 17:11; 삼하 11:23). 여러 세기 후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 나라의 “모든 용사 칠천 명”을 바벨론으로 잡아가자(왕하 24:16), 이스라엘의 남은 무리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이 글의 문맥의 전후 관계로 보아 용사들은 그들이 도와야 할 일반 백성으로부터 구별된다는 것이 지배적인 인상이다. (194.1)
 한나는 그녀의 환상적 영감의 예언을 통해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은 하늘의 보호를 받고도 남음이 있음을 노래했다. 사람의 힘으로는 그들을 도저히 이길 길이 없다(삼상 2:9). 깁보르(gibbor)는 또 초인적 용기와 지구력의 의미를 포함한다(시 19:5; 욜 3:10; 전 9:11). 솔로몬은 깁보르 를 자기의 영토를 지키는 사자 떼 중 왕 사자의 힘에 비교했다(잠 30:30). 실망한 예레미야는 원수가 이겼음을 인해 극심한 슬픔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애 1:16). 같은 뜻으로 홍수 때문에 지면에 물이 불어나(창 7:18-24), 물이 가는 곳마다 모든 것을 밀어 덮쳐 그 앞에 남아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모든 의미가 깁보르 에서 발산되는 다채로운 무지개 색깔이다. (194.2)
 엘 깁보르 는 강력한 구원자
 깁보르(gibbor)의 역어(譯語)으로 영문 성경에 가장 많이 쓰인 낱말은 mighty이다. 100번 이상 그렇게 번역되었다. 깁보르 란 말은 홍수 전에 살던 거인들을 가리켜 “용사들”이라 할 때 쓰였고(창 6:4), 가나안을 정복할 때 이스라엘의 무장한 용사들을 그렇게 불렀으며(수 1:14), 입다를 비롯한 그 밖의 다른 여러 용사들이 그렇게 불렸다(삿 11:1). 이 말은 또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악인의 무리를 물리칠 하늘의 군대를 부르는 말로 쓰이고 있다(욜 3:11). (195.1)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야곱은 아들 요셉의 경험을 회상할 때, “야곱의 막강한 하나님”[이 “하나님”은 성경 역자들이 첨가한 말이다]의 축복으로 말미암아(창 49:24) 아들이 원수들의 해로운 영향과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승리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 때 부조 야곱은 좀 특이한 낱말을 사용했다. 즉 그는 아비르(áḇir, 전능자)란 말로 자기의 하나님을 수식한 것이다. “야곱의 전능자”란 그의 어휘는 모두 6번 성경에 나온다. 이사야(1:24)의 “이스라엘의 전능자”도 창세기(49:24)에서 직접 인용된 사례들 중의 하나이다(시 132:2, 5; 사 49:26; 60:16). (195.2)
 야곱이 사용안 아비르(áḇir)란 말도 깁보르(gibbor)와 뜻이 비슷하다. “야곱의 전능자”는 그의 백성이 위기와 투쟁에 직면할 때마다 그들을 위해 싸워 준 용사이시다. 이사야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일어나 그들의 모든 대적과 싸워 이기시는 여호와를 “용사 같다”고 말할 때, 깁보르 를 썼다(사 42:13; 참고 시 78:65, 66). 예레미야도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고난의 때에 구원자”를 그런 “용사”(gibbor)로 보았다(렘 14:8, 9). (195.3)
 시인 다윗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그의 자비가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크심(gabbor)이라” 하였다(시 103:11; 참고 117:2). 그는 긍휼을 당신을 두려워하는 자들 편에 선 무패의 용사인 예수 안에 구체화된 하나님의 성품의 일면으로 보았다. (195.4)
 엘 깁보르 는 메시야적 구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