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과정들은 단일 절차로 묘사되기 때문에, 어떤 질문들이 제기될 수 있다. 왜 장로들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분명해 보이는데, 그들은 신자들의 공동체를 대표하며, 따라서 그들의 참여로 온 교회가 참여한 셈이기 때문이다. 어떤 제사장적 역할도 그들에게 부여되지 않았고, 그들은 존경받아야 마땅하지만(딤전 5:17-20) 신약 어디에서도 장로들에게 치유를 위한 특별한 기능을 부여하지 않았다. 은사는 모든 신자에게 성령의 뜻에 따라 부여된다. 야고보도 이 사실을 야고보서 5:16에서 언급하는데, 죄의 고백은 모든 회중에게 다 필요한 것이지 교회의 특정한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878.2)
 기도와 함께 장로들은 환자에게 기름을 바를 것이었다. 기름을 바름을 언급하는 유일한 평행 구절은 마가복음 6:13에 나타나는데, 치유를 위해 제자들이사용하였다. 기름을 바르는 것은 의료적 시술인가 종교적 행위인가? 진정제로 감람유를 사용하는 것은 신약 시대에 잘 알려져 있었다. “기름을 바르다”(알레이포)라는 말은 단어는 신약 다른 곳에 8번 나타나며, 언제나 비종교적인 문맥에서 사용된다. 기름 자체가 신비한 힘을 가진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지만, 중세 유럽에서 그런 사상이 형성되었다 본문은 기름 바름이 임종에 이른 자들만을 위한 하나의 의식으로 규정되었다고 말하지 않으며, 따라서 어떤 병자에게도 적용할수 있는 것이다. (878.3)
 본문은 믿음의 기도 그 자체에 치유력이 있으며, 특별히 의인(약 5:16) 장로들의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효력을 가질 것이라고 말한다. 비록 헬라어 단어들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세 가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첫째로, 주께서 병든 자들을 구원하고 일으켜 세우실 것이며, 만일 그들이 죄를 지었다면 용서받을 것이다. 모든 결과를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것이 신약의 다른 부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인데도, 야고보는 그 약속들을 절대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878.4)
 간략하고 개괄적인 본문 연구를 통해, 기도와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진리가 부각된다.

   (1) 효과적인 기도는 믿음에 기초하며 믿음으로부터 나온다.

   (2) 중보 기도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드려야 하며, 그들의 동기와 행동은 하나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3) 기도는 일반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되고, 특정 환자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4) 그 결과는 장로들의 믿음과 직결된다.

   (5) 치유/구원이 일어날 것을 기대한다. (878.5)
 기름을 바르는 것은 장로들의 기도와 함께 행해야 한다. 야고보가 사도교회에게 명령한 이 간단하면서도 믿음에 기초된 의식은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치유의 본보기를 제시한다. 치유와 교회에 관하여, 본문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 준다.

   (1) 교회는 교인들 가운데 병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며, 치유는 그리스도교 사역의 일부이다.

   (2) 치유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근간이다. 최근에 와서 치유가 육체를 고치는 세속적인 사업이 되었지만, 그것은 치유에 대한 성경의 관점과 거리가 먼 제한적인 견해이다.

   (3) 하나님의 치유 과정에는 육체적인 면과 영적인 면 모두가 융합되며, 그분의 치유의 능력은 이 두 영역 모두에 영향을 끼친다.

   (4) 질병과 치유는 육체적인 면을 넘어, 전 인격의 광범위한 부분을 포함한다.

   (5) 이런 배경에 비추어, 죄로부터 놓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위대한 행위 안에서 구속과 치유를 하나로 묶는 것을 말한다. (878.6)
 H. 치유에 대한 성경의 관점
 성경은 건강보다는 치유에 대하여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는데, 그것은 당면한 문제가 해결책이 있는 문제보다 더 긴급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 9:12)는 예수님의 말씀은 고통을 건강으로 바꾸어 놓으시려는 거룩한 의사로서의 그분의 의도를 보여 준다. (879.1)
 성경에서 예수님은 의심의 여지없이 병자를 치유하는 일에 있어서 중심인물이다. 갈릴리와 그분의 사역의 본부인 가버나움에 많은 비유대인, 적어도 절반은 비유대인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치유 사역에는 이방인 공동체에 널리 퍼져 있던 마술적인 접근을 사용했다는 암시조차 없었다. 자주 그분은 하나님의 치유 능력으로써 모든 질병에 식별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고 보셨는데, 그것은 어떻게 질병과 치유가 원인과 결과를 연관 짓는 합리적인 관계 위에서 서로 충족되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의 합리적 건강 치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879.2)
 예수께서는 그분의 치유 사역이 그분의 제자들과 교회에 의해 지속되기를 원하셨던 것이 분명하다. 제자들에게 이러한 사명을 부여하신 것과 사도시대 교회에 치유의 역사가 나타난 것은, 표적으로 그리고 인간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치유가 계속된다는 증거였다. 마지막 때에 신자들의 사역에서 이와 동일한 사역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마땅하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치유는 즉각적인 나타남이든지, 그분의 인도 아래서 회복시키시는 권능의 역사로 일어난 것이든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치유의 두드러진 특성은 육체적 회복이 고통당하는 자와 하나님의 화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점이다. (87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