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서 하나님의 치유와 심판은 그분께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증거가 된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는데, 신약적인 의미의 치유와 가장 근접한 것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구원(단 3:1-25; 6:27)과 느부갓네살의 회복이다(단 4:34-36). 구약의 표적과 기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의 운명에 집중되지만 이사야서에 나오는 메시아 구절들(사 35:3-6; 53; 61:1-3; 63:1)과 그밖의 책들은 메시아가 행할 치유의 사역을 예언한다. 육체적인 치유는 신약에 두드러진 기사이며, 특별히 예수님의 사역에서 두드러지지만 사도 시대의 교회에서도 계속된다. (868.3)
 D. 예수의 치유 사역
 예수님이 행하신 치유들은 성경에 나타나는 주제 중에서 가장 광범위한 직접적인 토론거리이다. 구약이 치유를 용서와 화목으로 폭넓게 강조하는 면을 유지하시면서 신약에서 예수님은 질병과 고통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악의 세력과 직접 맞서서 거듭거듭 그것들을 이기셨다. 예수의 사역은 광범위한 치유를 반영하는데,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낫게 할 뿐 아니라 죄와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셨다. 신약은육체적인 치유를 더 강조한다. 징벌이라기보다는 압제로 여겨지기도 하는 고통은 인류의 타락의 결과로 참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꾸짖음을 받아야 할 어떤 것이다. 예수의 개입은 의도적이고 강권적이며 강력하다 (868.4)
 1. 예수의 치유에 관한 기록
 대충 계산해 보아도 복음서의 약 20퍼센트는 치유와 그 결과에 할애하고 있다. 복음서의 자료를 이야기(내러티브 또는 담론으로 분류해야 한다면 치유를 다루는 기사들은 이야기이며, 놀랍게도 그중 3분의 1이 치유를 다루고 있다. 몇 사례는 중복되기도 하지만 사복음서에는 41개의 구체적인 치유 기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보고도 포함된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이 본문을 바탕으로 예수를 주로 순회 치유자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분이 치유하실 때 함께 제공한 가르침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묘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사복음서는 모두 그분을 치유자로 묘사하는데, 주로 일정한 형식을 따르고 있다. 먼저 필요가 묘사되고, 그런 다음 예수께서 개입하셔서 종종 병자 혹은 적대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셋째로, 치유가 일어나며, 특별히 누가복음에서는 구경꾼들의 환호가 뒤따른다. (868.5)
 사복음서는 모두 사탄과의 우주적 대쟁투라는 배경 속에 예수의 사역을 두고 있으며, 그것은 그분의 사역이 시작될 때부터 죽음에 대한 그분의 개인적 고뇌의 투쟁이었다. 마지막에는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갔으며, 그를 통해 사탄은 예수와의 투쟁에서 절정에 이른다. 예수께서는 그의 대적을 “이 세상의 임금”(요 14:30)으로 칭했으며, 그 악한 존재는 쫓겨날 것이다(요 12:31). 사실, 복음서의 이야기는 이 우주적 대쟁투와 떼어놓고거의 이해할수 없다. (869.1)
 예수의 치유에 대한 기록은 각 복음서의 특별한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마가는 네 번 귀신을 쫓아낸 사건을 기록하며(막 1:23-28; 5:1-20; 7:24-30; 9:14-29), 여덟 번의 치유를 말한다. 즉 열병(1:29-31), 나병(1:40-45), 중풍병자(2:1-12), 손 마른 사람(3:1-6), 혈루병(5:25-34), 귀 먹고 말 더듬는 자(7:31-37), 맹인(8:22-26, 10:46-52) 그리고 특별한 범주로서 소녀의 부활(5:21-24, 35-43)에 대해 기록한다. 그분은 신성모독(2:7), 안식일을 범했다는 죄(3:1-6)에 대한 고소, 귀신의 능력을 의지한다(3:22)는 것에 대한 비난을 견디셨다. 마가는 그의 특유의 박진감으로 사탄의 통치에 대한 예수의 공격을 기록하는데,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마가는 치유 기사에서 건강과 관련된 문제에는 덜 주목하며, 그보다는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으려는 데 관심을 더 기울였다. 만약 그분이 메시아라면, 어떤 메시아인가? 예수께서는 그분이 치유하신 자들에게 그들의 나음을 공개하지 말라고 거듭거듭 당부하셨으며, 분명 그것은 부적절한 시기에 권세자들과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869.2)
 마가의 복음은 귀신과의 투쟁을 특별히 주목하고 있으며, 귀신에게 붙잡힌 자들에 대한 동정을 보여준다. 마가는 이적과 관련되어 지체함의 요소도 포함시킨다. 귀신들은 예수와 논쟁을 벌이며(5:6-12) 나오기를 지체했고, 예수께서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고통받은 여인을 고치시면서 지체하므로 야이로의 딸이 죽게 되었으며(27-43절), 또한 소년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예수께서 변형산에서 내려오실 때까지 지체되었다(9:22-29). (869.3)
 마태의 복음은 마가가 기록한 거의 모든 치유 기사를 다시 기록하지만, 예수와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좀 더 많이 기록하고 있다 마태는 예수의 긍휼히 여기심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마 9:35, 36; 14:14; 20:34; 9:27; 15:22). 마태는 특별히 예수의 사역으로 성취된 구약의 예언들을 주목하고 있으며, 특히 그분의 종의 역할에 주목한다(8:17[사 53:4에서 인용]; 12:15-21[사 42:1-4에서 인용]). 마태는 예수의 사역 후 반부에 성전에서 치유하신 일이 제사장들을 얼마나 불쾌하게 했는지에 대해 특별하게 기록한다(21:14). (869.4)
 누가의 기사는 다른 복음서보다 많은 16개의 치유 기사를 포함하고 있다(눅 4:31-39; 4:38, 39; 5:12-26; 6:6-11; 7:1-17; 8:26-56; 9:37-43; 11:14-16; 13:10-17; 14:1-6; 17:11-19; 18:35-43; 22:50, 51). 누가가 의사로 교육받았음을 감안한다면(골 4:14), 이런 점이 우리에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는 나사렛의 회당에서 하신 예수의 설교로부터 시작하여 치유자로서의 그분의 사역을 추적하고 있다(눅 4:16-21). 그곳에서 예수께서는 잘 알려진 메시아 구절인 이사야 61:1, 2을 읽으신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예언을 자신에게 적용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메시아 구절을 성취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사역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누가의 복음은 예수께서 많은 사람을 질병에서 고치셨으며 그들로부터 귀신들을 쫓아내셨다고 추가로 기록하는 일곱 개의 요약적 진술도 포함하고 있다(눅 4:40, 41; 6:17-19; 7:18-23; 9:10, 11; 10:13-15; 13:31-33; 24:19-21). 이 기사들은 뚜렷한 해방의 주제, 즉 귀신, 죄, 사회적 장벽으로부터의 해방을 언급한다. 누가는 또한 비유대인과 소외된 자들의 믿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백부장의 종(7:1-10), 오랜 혈루병으로 소외된 여인(8:43-48), 고침을 받은 열 명의 나병 환자가운데 한사람만이 돌아와 감사를 표현한 사마리아인 나병 환자의 믿음(17:11-19)의 기사이다. 누가는 치유를 구주이신 예수님의 사명의 중심적인 부분으로 제시한다(4:40, 41; 6:17-19; 9:11). 심지어 그분의 제자들도 치유자들이 된다(9:1, 2; 10:9-17). 또한 그는 고침 받은자들의 반응들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한다. (869.5)
 특별히 누가복음에는 고통 받는 자들에 대한 예수의 동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7:11-17), 세 번의 안식일 이적, 손 마른 남자(6:6-11), 18년 동안 꼬부라진 여인(13:10-17), 수종병 든 남자(14:1-6)의 치유와 관련되어 표현된다. 누가의 건강과 치유에 대한 풍부한 기사들은 예수님에 의해 나음을 입은 자들에게서 나타난 높은 만족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870.1)
 요한의 복음은 더욱 선별적이어서 오직 일곱 개의 이적만 포함시킨다. 그는 그것들을 “일”(에르가) 혹은 “표적”(세메이아)이라고 일컫는데,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행위를 뜻한다(요 5:17, 19-21). 오직 세 개의 치유 사건만을 기록하는데, 각 사건들은 예수님의 긴 강론의 배경을 이룬다 이 세 이적은 신하의 아들(4:46-54), 38년 동안 앉은뱅이로 있다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치유 받은 남자(5:1-15), 날 때부터 소경된 남자(9:1-34)와 관련된다. 이 중에서 두 사건은 안식일에 일어나 종교 지도자들과의 논쟁을 촉발시켰다. 한 번의 부활 사건, 곧 나사로의 부활이 있었는데, 거기서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으로 제시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 는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11:25, 26). 믿음은 요한의 복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표적에 기초한 믿음이 아니라, 생명의 수여자이신 인격체로서의 예수님께 기초된 믿음이다(20:24-29). 예수님은 건강의 근원이실 뿐 아니라, 그분 안에서 모든 건강의 결론인 영생을 발견한다. 요한복음은 귀신 들림에 관한 기록을 포함시키지 않으며, 그리스도와 마귀와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 있지만 상당히 미묘하다. (870.2)
 2. 치유의 종류와 방법
 헬라적인 치유와 예수의 치유 사이에 나타나는 현저한 대조는 하나님의 치유와 다른 치유를 구분할수 있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대부분의 헬라 치유자들과 대조적으로 예수의 치유 사역은 고립된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자주 군중들 사이에서 진행되었다. 그는 주문을 외우지도, 권위를 위해 외부적인 힘의 근원을 부르지도, 최면 상태로 유도하지도, 주술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분의 방법은 몇 마디의 말씀을 하고 손을 대는 정도로 단순했다. 예수께서 치유하신 사례들은 중병들이었으며, 때때로 만성적인 질병들이었다. 그분의 사역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았다. (870.3)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예수께서는 광범위한 상태의 질병들을 다루셨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신체와 관련된 표현으로 묘사되었다. 간단한 동작으로 그분은 잘린 귀를 다시 붙이셨고(눅 22:51), 만지심으로 나 병을 깨끗하게 하셨으며(참조 눅 5:12-16), 맹인의 시력을 회복시키셨고, 어떤 때는 물질적인 수단 없이, 어떤 때는 물질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치유하셨다(요 9:7, 11). (870.4)
 그분이 치유하실 때 가장 자주 사용하신 방법은 간단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었고, 그 즉시로 병자는 좋아졌다. 다른 경우에 그분은 간접적인 수단을 선택하셨고, 단계적으로 치유하시거나 완치를 지연하기도 하셨다(막 8:22-26; 요 9:1-11).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 내실 때는 언제나 말씀으로 하셨으며, 따라서 복음서에서 그분이 귀신 들린 자를 만지셨다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귀신들도 그분이 누구인지 알았다(막 1:24; 5:7). 심지어 귀신들과의 논쟁이 가장 뜨거웠을 때에도 그분의 명령에는 권위가 있었다. 복음서들은 세 개의 평행 기사에서, 예수께서 귀신들에게 직접적으로 명령하실 때 같은 단어들을 사용했음을 기록하고 있다(막 1:25; 5:8; 9:25; 눅 4:35). 오직 한 경우에만 그분께서 이적을 행하시면서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으며, 거기에는 구경꾼들의 유익을 위해 그렇게 하셨다고 설명되어 있다(요 11:41, 42). (871.1)
 때때로 예수의 이적들은 매우 가까이에서 실행되었으며, 다른 때에는 먼 거리에서 이루어졌다(마 8:5-13; 막 7:24-37). 예수께서는 고통 받는 자들의 탄원에 응답하셨고(마 9:27; 눅 17:13; 막 10:47),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요청하는 것에도 응답하셨다(막 1:30; 2:3; 7:26; 9:17; 마 8:5; 요 4:47; 9:2). 또 어떤 경우에는 고통 받는 자의 탄원이 없지만 치유를 원하는지 물음으로 치유를 시작하셨다(요 5:6-9; 눅 7:14; 13:12; 22:51). (871.2)
 몇 가지 사항을 살펴보는 것은 예수의 치유 사역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분에게 질병은 하나님의 질서에서 벗어난 것이고 마귀의 역사이며, 따라서 그분께서는 마귀와 싸워 그를 무너뜨리고자 오셨다(눅 13:16). 그분은 약하고 병든 자들을 경멸하는 태도가 아니라 희생자로 긍휼히 여기고 그들을 용납하셨다. 그분의 접근 방식은 결코 냉정하게 치료만 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사람을 존중하는 방식을 취하셨는데,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구약에서 가르치는 전인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이해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심오한 연결점을 다시 세우고자 하셨고(눅 7:11, 21), 따라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인격을 믿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871.3)
 3. 치유의 목적
 이사야 61:1, 2의 명령은 다섯 가지 사명을 기술한다.

   (1)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

   (2)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것,

   (3) 눈먼 자에게 시력을 회복시키는 것과 같은 신체적인 치유,

   (4) 죄나 직접적인 마귀의 능력에 압제받는 자들을 자유케 하는 것,

   (5)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

 마태는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라고 기록한다. 비슷한 구절이 마태복음 9:35에도 나타나는데, 거기에서 그분은 그분의 사명을 12제자에게 위임하셨다. (8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