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치유와 관련된 성경의 용어들
 치유라는 말이 주로 신체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는 현대의 용례와는 대조적으로, 구약과 신약에 스며들어 있는 전인적인 의미는 인간 경험의 모든 면이 치유와 관련되어 있고 단지 신체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포괄성은 다수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단어가 “치유하다” 혹은 “치유”로 번역된다는 데 나타난다. 가장 일반적인 히브리어 단어는 라파(36번)로, “치유하다” 혹은 “고치다”라는 의미이며, 종종 넓은 의미로는 내적인 긴장으로부터의 해방 혹은 화해와 회복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루카는 생명의 단축과 대조되는 생명의 연장 혹은 연명으로서의 치유의 개념을 담고 있다. 여슈아는 하나님의 돌보심에서 나오는 안전함이라는 의미를 함축하며, 마르페는 종종 좌절이 있는 곳에 만족을 주는 치유를 의미한다. 트알라는 약함이라는 뜻의 할라와 반대되는 강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샬롬“내 형은 평안하냐”(삼하 20:9)라는 경우에서처럼 삶 전반의 건강이라는 개념을 지닌다. (865.1)
 때로 신약의 헬라어 용어들은 구약의 단어들과 병행되지만, 분명한 차이점도 지닌다. 가장 일반적인 단어는 대개 육체적인 측면에서 “치유하다”를 의미하는 쎄라퓨오인데, 그것은 이미 코이네 헬라어에서 다른 이를 “돌보다”라는 의미로 발전하였다. 이 단어는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치유의 이적을 가리키는 데 주로 사용된다. “치유하다” 혹은 “회복하다”라는 의미의 이아오마이쎄라퓨오와 비슷하지만, 호메로스 시대 같은 초창기에는 의료적 측면과 비유적 측면 모두에 사용되었다. 영어 단어 “hygiene”의 어원인 휘기아이노는 사람의 전반적인 상태가 기민하고 능력이 있으며, 건전하고 기능 수행이 원활함을 의미한다. 주로 히브리어 샬롬이〈70인역〉에서 이 단어로 번역되었다. 특별히 복음서와 바울 서신에서 사용된 휘기아이노는 전인적으로 깊은 치유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의미를 가진다. 분사형인 히기아이논은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를 맞아들이면서 “건강한”이라는 표현에 사용된다(눅 15:27). 헬라어 동사 소조“구원하다, 보존하다, 구하다”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 같은 어원을 가진 소테리아는 종종 “구원, 구속, 보존”으로 번역된다. 소테리아는 전인을 치유하기 위한 구원이라는 의미로 복음서에서 16번 사용된다. 이 단어는 치유와 구원 모두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눅 19:9; 행 27:34). (865.2)
 B. 치유자 하나님
 성경은 치유가 오직 하나님으로 비롯된다고 거듭 거듭 말하는데(출 15:26; 신 7:15; 32:39; 왕상 13:6; 욥 5:17; 시 41:3, 4; 107:17-20; 147:3; 사 30:26; 렘 30:17; 33:6; 호 5:13- 6:2), 간접적으로가 아니라 매우 직접적인 차원에서 말한다. 그러므로 홍해를 건넌 직후에 야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과 특별한 언약 관계를 맺으신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유하는 야훼임이라”(출 15:26). (866.1)
 6세기 후에 그분께서는 그분의 언약 백성들에게 그분의 구원과 서약을 상기시키시며 열정적으로 말씀하신다. (866.2)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것을 두었노라”(히 1:1-4). (866.3)
 바벨론 포로 전에 주께서는 그분의 배역한 백성들이 돌아와 치유될 것을 선포하셨고(렘 3:22), 회복을 약속하셨다(렘 30:17-22). 다른 많은 구절처럼 이 구절들도 하나님과 온전히 화목하게 된다는 넓은 의미에서 치유를 언급하며, 말라기도 야훼의 날을 치유의 때로 내다본다(말 4:1-3). (866.4)
 비록 성경의 첫 번째 관심은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있지만, 전 세계적인 돌봄이라는 일관된 흐름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이스라엘과 함께하기로 선택한 거류민들은 히브리인들의 공동체에 참여한다는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출 12:48, 49). 거류민들은 특별히 안식일 계명에도 포함되어 있으며(출 20:8), 명백하게 율법에도 포함되어 있으며(레 24:22; 민 9:14), 야훼께 제물을 드리는 일에도 참여하며(민 15:14; 사 56:6-8), 비록 어떤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혜택에도 참여할 수 있다. 언약적인 치유가 그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분의 창조된 자녀들로서 모든 인류는 그분의 가납하심과 치유의 능력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버림받은 애굽조차도 그 과거를 치유 받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참여할수 있다(사 19:19). (866.5)
 1. 질병과 치유의 시편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은 오직 하나님만을 치유자로 소개한다. 쇠약함과 질병은 그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광범위하게 정의되며, 따라서 해결책도 건강의 창시자이며 그 유일한 근원이신 분과 화목함으로 이르러 온다. 회복은 회개, 용서를 통해 그리고 하나님이 손을 뻗으심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에는 분명 육체적인 차원뿐 아니라 영적이며 관계적인 차원도 포함된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나는 너희를 치유하는 야훼임이라”(출 15:26)고 자신을 나타내신다. 육체적인 치유도 포함되지만 더 넓은 의미의 치유도 포함됨이 분명하다. (866.6)
 질병과 치유의 시편은 회개와 치유하는 용서에 대한 묘사를 보여 준다 시편 6, 38, 41, 88, 102편은 거의 전체가 치유를 주제로 하고 있으며, 31, 32, 71, 91편 등과 같은 시편들도 치유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사야 38장은 히스기야의 고백적 시편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런 시편들은 고백, 애가, 호소, 확신의 표현을 통해 인간의 도움을 넘어 구원하시는 창조주를 바라본다. 이 시편들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은 그들의 잘못을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연단하고 계심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호소는 신체적인 회복뿐 아니라 옹호와 구원을 향해 발해지고, 그로 인해 감사와 기쁨이 터져 나오며 하나님께서 그분께 나아오는 자들에게 하신 일에 대한 살아있는 간증을 올리게 된다. (867.1)
 2. 창조와 치유
 치유란 원래의 온전한 상태로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원래의 선한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인간의 행위는 하나님의 목적과 조화를 이룬다 영어 단어 “heal”(치유하다)과 “whole”(온전한)은 동일한 어원에서 나왔으며, 그것은 마치 구원(salvation)을 의미하는 라틴어 살부스가 영어 단어 “salve”(구원하다)에서 다시 나타나는 것과 같다. 창조주가 우선권을 가지며, 피조물은 언제나 파생적이며 종속적인 지위에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언제나 청지기인데,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최초의 죄가 된다. 이 개념은 성경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치유자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면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분이 의도하신 원래 목적에 충실하시다(참조 I. A. 1). (867.2)
 3. 천연계에 나타난 치유
 천연계의 치유 능력은 매우 분명하다. 그것은 창조주께 부여받은 본능적인 기능이며, 죄로 오염된 피조물들을 고치고 치유하고자 하시는 천연계 속에 남아있는 그분의 “지혜”의 한 부분이다. 이런 치유력을 비록 자연주의 철학에서는 단순히 자연적인 기능으로 여기지만, 분명 그것은 하나님의 활동의 표현이다. “나는 상처를 처매고, 하나님은 그것을 치유하신다.”라는 앰브로즈 페어(Ambrose Pare) 의 간결한 격언은 하나님과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회복에 관한 성경적 이해를 분명하게 묘사한다. (867.3)
 자연 법칙들은 창조자께서 질서 있게 활동하신다는 전제를 기초로 고안되었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천연계 속에서 일하시는 방법에 대한 관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 법칙들은 기술적인(descripitive) 것이지 원인으로 사역(使役)하는(causative) 것은 아니다. 적절하게만 이해하면, 자연법칙들은 하나님의 치유력이 적용될 수 있는 규범적인 잣대를 제공한다. 이 원리는 신자들이 자연 법칙들을 존중함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고 질병에서 회복되는 일에 하나님과 협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 법칙들은 도덕법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분께서 치유자이시기 때문에, 자연 법칙의 작용을 통해 이르러 오는 회복도 하나님의 치유력의 표현이다. 체내에 있는 재생력과 저항력은 치유와 회복을 위한 그분의 계획 중의 일부가 된다. 과학적 발견과 발전하는 의약 또한 하나님의 치유를 이루는 적합한 부분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연 법칙들의 기능을 인정하며 그것들과 잘 협력하기를 권하고 있다(참조 시 19편; 롬 1:19, 20; 히 1:1, 2). (867.4)
 C. 성경에 나타난 치유의 종류
 구약의 책들은 더 넓은 영역에 비추어 볼 때 야훼의 치유하시는 은혜를 그분의 백성들에게 상기시키지만, 육체적 치유에 대해서는 비교적 적은 사례만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들을 위해 그분으로부터 사람을 분리시켰던 죄를 치유하시며(시 107:17-22), 또한 슬픔, 비통 낙심, 외로움, 불신, 그분과 사람으로부터의 소외, 절망 자기 가치에 대한 상실감 등 사실상 우리의 타락한 상태의 공통적인 문제를 전반적으로 치유하신다. 그분의 치유는 또한 나라들에도 적용된다(출 23:22-25; 레 26:14-21; 신 7:15). (868.1)
 육체적 치유를 말하는 첫 번째 기사는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낸 후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아내들을 회복시키신 것이다(창 20:18). 여러 상황 속에서 다른 사례들이 뒤를 잇는다. 사울이 하나님을 따르는 일에 실패하면서 물러나자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임했으며(삼상 16:14), 그 일로 인해 수금을 치는 다윗의 음악이 치유에 사용되었다(23절).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과부의 아들을 치유하셨다(왕상 17장). 주께서는 엘리사를 통해 수넴 여인의 아들을 부활시키셨으며(왕하 4장), 아람 사람 나아만은 나병에서 치유되었다(왕하 5장). 히스기야의 치유 사례에서는 반죽 형태의 찜질 치유법이 사용되었다(사 38:16-21). 이 사례들이 구약에서 기적적인 치유의 역사적 사건의 거의 모든 것으로, 복음서의 수많은 사례와는 대조적이다. (8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