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역사의 여러 세기 동안 결혼에 있어서 성은 단지 자녀를 낳기 위한 필요악으로 생각되어 왔다. 오늘날 성적 혁명이 있기 전에 숙녀를 “섹시하다”고 부르는 것은 모독으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많은 숙녀들이 찬사의 말로 받아들인다. 메이(Rollo May)는 “빅토리안 가(家)의 사람들은 성교 없이도 사랑을 추구하였다. 현 대인은 사랑 없이도 성교를 즐길 수 있다”1고 기록하였다. (81.1)
성에 대한 사회의 태도는 참으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성을 출산을 위한 필요악으로 보았던 청교도의 입장으로부터 쾌락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성을 상품화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만물의 영장(Homo sapiens)인 인간이 성의 쾌락과 기교를 추구하는 동성연애자(homo sexualist)가 되어 가고 있다. (81.2)
두 극단주의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성에 대한 기능을 이루는 데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성에 대한 과거의 부정적인 견해는 결혼한 사람들이 갖는 성교조차도 죄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성에 대한 현재의 염세주의적 개념은 사람들이 성을 즐기되 어떤 의미나 재미조차도 없는 형식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성교에 대한 기교를 담은 수많은 책들이 증가해 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욱 더 결혼 상담자들을 찾아가서 말한다. “우리는 많은 관계를 가졌어요, 그러나 사이가 좋지 않아요. 어떤 의미나 아무런 재미도 없어요!”라고. (81.3)
이 장의 목적
이 장은 성에 대한 성서적 개념을 살펴본다. 성서의 빛에 비추어 결혼 안팎의 성에 대한 여러 관점들을 조사할 것이다. 이 장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부분은 성에 대한 과거의 태도 곧고 대 이스라엘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조명한다. 둘째 부분은 성서적 개념의 성의 본질과 기능을 살펴본다. 윤리냐 혹은 부도덕이냐 하는 상반된 개념이 초점이 될 것이다. 셋째 부분은 장차 올 세상에 결혼이 있는지 혹은 없는지의 질문을 다룰 것이다. 이 장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성을 이해하고 경험하도록 그리스도인을 도움으로 성에 대한 세속적이고 쾌락적인 이해에 대처하도록 하는 데 있다. (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