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13 장 심판과 재림소망
 마지막 심판의 기대. 재림심판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서 로마 천주교와 같은 역사적인 교회들은 임종 직후에 순간적으로 믿는 자가 주님을 만나고 뒤따라 심판이 열린다고 기대해 왔다. 안토니 빌헬름(Anthony Wilhelm)은 천주교 신조에 대한 최고의 판매 부수를 기록한 책인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Christ Among Us)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우리가 죽음 후에 가장 분명하고도 긴밀한 방법으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만나게 될 분은 그리스도시다.”17 (249.6)
 이러한 신앙의 결과는 재림보다 죽음이 우리 생애의 최고의 경험이 되게 한다. 앞에서 주목한 것처럼, 각 사람이 그리스도와 마지막 심판:낙원, 연옥 또는 지옥을 만나게 되는 것은 임종 시이기 때문에 그런 신앙은 궁극적으로 재림과 마지막 심판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249.7)
 마지막 심판을 여러 가지도 구분하는 견해.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셋, 넷 심지어 일곱 가지 유형으로 심판을 구분하여 마지막 심판의 다양한 묘사를 조화시키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면 복음주의 그리스도들이 넓게 사용하는 미국판 스코필드 성경(The Scofield Bible)은 7가지 심 판들을 구분한다.

   (1) 재림시의 믿는 자들의 심판,

   (2) 재림과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 후의 이스라엘 국가의 심판,

   (3) 재림전 바벨론의 심판,

   (4) 재림시의 짐승과 거짓 선지자 그리고 그들 군대에 대한 심판,

   (5) 재림시 그리스도께서 그들 군대를 물리치신 후의 국가들에 대한 심판,

   (6) 천년기 끝의 사단과 그의 천사들에 대한 심판,

   (7) 천년기 후 큰 흰 보좌 앞에서의 구원받지 못한 죽은 자들에 대한 심판.18 (249.8)
 4. 마지막 심판의 통일성과 종국성
 복합적 사건이 아닌 하나의 사건임. 마지막 심판을 임종시에 고정시키거나 마지막 심판의 다른 유형들 사이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성경이 부여하는 단일성, 종국성, 종결성을 그 사건에서 제거한다. 성경은 미래의 단일한 것으로 말한다. 성경은 심판의 여러 다른 날(different days)이 아닌 심판의 그날(the day)을 기대하도록 가르친다. (250.1)
 바울은 하나님께서 “여러 때의 날들(days) 이 아닌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한 날(a day)을 작정하셨다”(행 17:31)고 말한다. 이 심판 날은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 모두에 해 당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 29; 벧후 3:7; 롬 2:5~8)고 하시면서 “그 때”를 말하고 있다. 이 말에서 그리스도는 부활과 마지막 심판을 여러 사건이 아닌 한 사건으로 나타낸다. (250.2)
 통일성의 보존이 필요됨. 마지막 심판을 신적 행위로 묘사하는 성경절들과 하늘 존재와 인간 존재들을 포함하는 조사심판적 소송 과정으로 묘사하는 성경 구절들 사이에 조화를 꾀하는 시도에서 마지막 심판의 통일성과 종국성의 이 성서적 의미를 보존하는 것을 중요하다. 우리의 견해로는 재림교회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이해는 그것의 통일성과 종국성을 가장 잘 나타내며, 마지막 심판의 집행 행위와 그것과 연관된 사법적 소송 사이의 긴장을 가장 잘 해소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250.3)
 불행하게도 과거에 마지막 심판에 대한 재림신자들의 견해는 적절한 신학적 체계의 부족으로 인해 잘못 이해되고, 잘못 해석되어 왔다. 이 책이 이토록 중요한 성서적 가르침에 대한 재림신자들의 이해를 분명히 하는데 기여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염원이다. 여기서는 재림신자들의 여론을 설명하고자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재림신자들의 신조에 전혀 모순이 되지 않는 마지막 심판에 대한 “재림신도의 이해”를 명확히 하고자 한다. (250.4)
 5. 마지막 심판에 대한 재림교회의 견해
 대쟁투적 개념. 마지막 심판에 대한 재림신자들의 이해의 기초는 “대쟁투” 개념에 있다. 이 개념은 선과 악의 쟁투의 기원과 전개 그리고 종국적 해결을 포함한다. 이 쟁투의 기원은 사단과 그의 천사들이 패배하여 쫓겨나는 하늘에서 일어난 전쟁을 말하는 계시록 12장의 잘 알려진 상징에서 가장 극적으로 묘사되었다(계 12:7~9). 하늘에서 시작된 이 쟁투는 지상으로 확 대되어(13~17절) 사단이 일천년 동안 결박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계 20:1~3). 이 기간의 끝에 사단은 궁극적으로 “불과 유황못에서” 멸망하게 될 것이다(계 20:7~10). (250.5)
 재림신학에 있어서 마지막 심판은 인간 세상을 넘어서 하늘의 존재들까지 포함하는 “대쟁투”의 거룩한 해결의 중요하고도 절정적인 국면으로 나타난다(엡 3:10, 6:12; 골 1:16, 2:15; 롬 8:38). 마지막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최소한 두 가지의 중요한 목적을 성취하신다. 하나는, 인간과 하늘의 반역을 종결시키고 자신의 영원한 왕국으로 인도할 그의 “의로우신 판단”(롬 2:5, 6)을 드러내고 집행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마지막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영생을 주시고, 다른 사람에게는 영원한 사망을 내리시는 자신의 공의를 도덕적 피조물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계 15:3, 4). (251.1)
 평가적이고 집행적인 국면. 도덕적 세계의 영원한 안전은 이성적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공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정도에 의해 크게 결정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다는 것을 신 뢰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재림시에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상급과 보복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일방적이고도 불가해한 집행 행위로 구성된 마지막 심판으로부터는 거의 얻어질 수 없다. (251.2)
 그러므로 재림신자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평가적인 국면과 집행적인 국면을 모두 포함한다고 믿는다. 집행적인 국면은 그가 살아 있는 신자와 부활한 신자들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고 살아 있는 악인들에게는 사망의 형벌을 내릴 자신의 재림시에 행해질 것이다. (251.3)
 평가적인 국면은 재림 전과 후에 일어난다. 우리가 다음 장에서 보게 될 이 조사 과정의 중요한 목적은 하늘 존재와 인간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의로움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있다. 마지막 심판이 평가적인 국면과 집행적인 국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재림신자들의 이해는 성경이 이 사건에 부여한 그 단일성과 통일성 그리고 종국성을 보존한다. (251.4)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 이런 이해는 마지막 심판을 집행 행위로 묘사하는 구절들과 하늘 존재들과 인간들을 포함하는 조사 과정으로 묘사하는 구절들을 조화시키는 명확한 기준을 제공한다. 궁극적으로, 마지막 심판에 대한 재림신자들의 이해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높이고 재림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더욱 강하게 할 것이다. (251.5)
 각주
 1. 미래의 최후의 심판을 무시하거나 거절하는 신학자들에 대한 짧막한 논의를 위해서 레온 모리스(Leon Morris)의 The Biblical Doctrine of Judgment(Grand Rapids, 1960), pp. 54~58을 참조하라.

 2. T. Francis Glasson, “The Last Judgment in Rev. 20 and Related Writings,” New Testament Studies 28(1982), p. 537.

 3. Anthony A. Hoekeam, The Bible and the Future(Grand Rapids, 1979), p. 253.

 4. Seventh-day Adventist Yearbook 1985(Washington, D.C., 1985), p. 14.

 5. 토렌스(T. F. Torrance)는 중세교회에서 “종말론은 교회안에서 길들여지고 안주하므로 마지막 심판 과는 멀리 떨어진 채 교회의 맺고 풀음에 의해 교회가 종말론을 좌우했다”고 올바르게 토로한다(Kingdon and Church〔Landon, 1956〕, p. 2).

 6. 밑줄친 부분 강조.

 7. 밑줄친 부분 강조.

 8.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목하시고 댓가를 요구하시기에 충분히 중요하다는 것은 거절되거나 피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꺼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것은 복음의 한 부분이다”라고 적절하게 언급한다(n. 1), p. 65.

 9. Ellen G. White, The Desire of Ages(Mountain View, California, 1940), p. 638.

 10. 마지막 심판에서 행함과 믿음의 역할 사이의 긴장을 해결하려고 제안된 다양한 견해의 간략한 요약을 위해서 불리즌(Ivan T. Blazen)의 “A Tension Resolved,” Adventist Review(August 11, 1983), pp. 7~9을 참조하라.

 11. Acts of the Council of Trent with the Antidote, cited by Anthony A. Hoekema(n. 3), p. 261.

 12. Emil Brunner, The Letter to the Romans(London, 1959), p. 20.

 13. Ellen G. White, Testimonies for the Church(Mountain View, Califor, 1948), vol. 1, p. 620.

 14. H. Richard Niebuhr, The Kingdom of God in America(New York, 1959), p. 193.

 15. Leon Morris(n. 1), p. 69.

 16. J. E. Fison, The Christian Hope(London, 1954), p. 129.

 17. Anthony Wilhelm, Christ Among Us(New York, 1975), pp. 418~419.

 18. 이 심판들의 간략한 논의를 위해서 디이슨(Henry C. Thiessen)의 Lectures in Systernatic Theology(Grand Rapids, 1979), pp. 388~392를 참조하라. 펜티코스트(J. Dwight Pentecost)는 심판을 넷으로 축소한다.(Things to Come. A Study in Biblical Eschatology〔Grand Rapids, 1980〕, pp. 412~426). (2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