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3 부 성소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 13. 분향단 (나의 모든 호흡은 그리스도의 것임)
 중보의 금단은 그 아름다운 왕관에서 부터 향기를 발산하였고 성소는 예수님의 귀하신 이름으로 향기롭게 되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그 봉사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그 위치를 지정하셨다.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 “여호와 앞에” 두라(출 30:6; 레 16:13). 거기서 봉사한 제사장은 속죄소 가장 가까이까지 왔다. (161.1)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그것이 “백향목 단”(왕상 6:20)으로 불리어진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막나무들의 왕 아카시아를 사용한 광야에 더이상 있지 않고 약속의 땅의 왕자 백향목으로 새 단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던가? 70인역은 “그가 지성소 앞에 단을 만들고 그것을 금으로 입혔다”고 설명했다. 믿음은 이 무늬 있는 두꺼운 천 너머의 사랑으로 통치하는 영원한 빛을 지각했다. 지성소에 속한 봉사와 함께 이 “보좌 앞 금단”(계 8:3; 왕상 6:22)은 얼마나 놀라 웠던가. 그 의미를 명상하기 위하여 우리의 신을 벗도록 하자. 은혜로운 성령님, 이 표상을 올바로 읽을 수 있는 빛을 주소서. (161.2)
 나무와 금이 중보의 단에 섞인다
 하나님은 금으로 싸인 싯딤 혹은 아카시아 나무로 이 제단을 만들기로 계획하셨다(출 30:1, 3). 이 표상들에 나타난 성육신을 지각하라. 금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서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나무는 그분의 약한 인성, 곧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히 13:8)신 분 안에 신비롭게 혼합된 특성들에 관하여 속삭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를 위하여 중보하려면 먼저 인자가 되셔야 하고 우리가 매일 여행하는 비천한 길을 터벅터벅 걸어야 하시기 때문이다(히 2:17). 그리고 한 때 흠없는 상태에서 죄인의 누더기를 입으셨던 우리의 형님 제사장은 잘못된 재판 때문에 범죄자의 죽음을 죽으셔야 했다. 이제 그분은 변화된 인성으로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다. 이 진리들을 시사하고자 성령께서는 기도의 기초를 이루기 위하여 소실될 수밖에 없는 나무를 내구성 있는 금으로 입히도록 명령하셨다. (161.3)
 우리의 간구자가 영원하신 분의 뜻의 기초 위에 서 계시기 때문에 제단은 “네모 반듯하게” 서 있었다(출 30:2). (161.4)
 속죄의 쇠그물과 친교의 떡상보다 향로를 더 높이기 위해서 그것은 땅으로부터 2규빗 혹은 44인치 솟아 있었다(출 30:2; 27:1, 5; 25:23). 이 높이에서 그 향은, 기도는 다른 어떤 예배 행위보다 죄인들을 하나님의 마음에 더 가까이 올려 줄 것이라고 속삭인다. (162.1)
 금으로 싼 나무 뿔이 제단 위 매 귀퉁이에 서 있었다(출 30:2; 슥 1:18~21). 이 네 개의 뾰족한 뿔은 중보자의 능력을 선포한다. 다윗은 이것을 명상하고 노래했다. “나를 ∙∙∙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시 22:21). 이 뿔들의 무용담은 승리한 전쟁들과 해방된 노예들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송가는 승리의 뿔들로 원수의 심장을 꿰뚫은 우리의 중보자에 관한 것이다(히 3:4; 슥 1:18~21). (162.2)
 뿔은 우리의 중보자의 능력을 나타낸다
 놋단의 뿔들은 그것들을 굳게 붙잡은 자들에게 피난의 요새를 제공했다(왕상 2:28). 그러나 금단의 뿔들은 오직 제사장들만이 접촉할 수 있었다. 충성된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지금 이 강력한 뿔들을 붙잡을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두려움을 버리자. 요한은 “일곱 뿔”(계 5:6), 곧 완전한 힘에 대한 하늘의 표징으로 무장한 하나님의 보좌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우리 구주께서 지금 “단지 탄원자로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승리를 주장하시는 승리자로서”(실물교훈, 156; 초기문집, 38) 중보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162.3)
 금 장식이 이 제단의 상면(上面)에 이루어졌다(출 30:3). 면류관들이 이 제단과 상의 친교의 식사와 법궤의 속죄소와 연결되어 있고, 그것들은 우리의 중보자가 우리의 왕이라고 선언한다. 그분의 어깨에 정사(政事)를 메워 주시면서 아버지께서는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시 2:6)고 선포하셨다. 이 제단 꼭대기에 있는 면류관은 우리의 눈을 우리의 주권자, 구주요 전능하신 대언자께로 계속 향하게 해야 한다. 비록 그 관이 그것을 두르고 있는 난간처럼 되어 있을지라도(신 22:8), 그 금단의 꼭대기는 지붕으로 불리운다(출 30:3). 팔레스틴의 주택들은 평지붕이었기 때문에 하늘의 율법은 부주의한 자가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하기에 충분히 튼튼한 이 방어용 울타리를 요구했다. 사도 베드로는 정오에 기도하러 이런 방어책 설비의 지붕에 올라 갔다가 민족 차별을 그의 생각에서 씻어버린 이상을 받았다. 안전하고 높은 장소를 말해 준 이 울타리 쳐진 제단은 하늘로 가는 길을 열어 주고 생애의 소란에서 벗어나 격리되어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 곳을 알려 준다. (162.4)
 가시덤불에 걸린 아브라함의 수양의 뿔은(창 22:13) 가시관으로 둘린 하나님의 양순한 수양의 이마를 묘사했다. 아담의 저주의 엉겅퀴(창 3:18)는 둘째 아담의 승리의 꽃관이 되었다(마 27:29). 아버지는 “많은 물소리”(계 1:15; 단 10:6)와 같은 그리스도의 음성, 도처에서 사람들이 흐느껴 우는 소리(계 17:15), 나의 말의 메아리를 들으신다. 인류의 대변자로서 그분의 입술은 나의 무언의 외침과, 나의 모호한 신음 소리까지도 하늘의 웅변으로 말해 준다(롬 8:26). 그리고 그분의 승리의 중보 때문에 그분의 왕관은 찬란하게 빛나고, 사신 바된 영혼들로 보석 장식을 이루었다. (162.5)
 기도의 금단은 가장 필요한 곳으로 이동된다
 이 단의 각 반대편 두 끝에 고리가 붙어 있었다(출 30:4). 이것은 그것이 각 방위(方位)를 위협하는 피묻은 뿔을 갖고 성소의 축(軸)을 향해 비스듬히 서 있었던 것을 시사한다. 이 도전적인 뿔들은 그들을 반대하여 진을 친 네 군주 지도자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준비된 상태를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자세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원수를 대항하는 기도의 공세력(攻勢力)을 선포한다. (163.1)
 이 각각의 두 고리들을 통하여 금을 입힌 막대기가 끼어졌고(출 30:4, 5), 불과 구름이 하나님의 발걸음을 어디로 인도하든지 제사장들이 금단을 옮겨가는데 사용되었다. 이 운반 가능성은 이 기별을 찬미한다. 장소가 기도를 가두어 놓을 수 없다! 우리의 간구자는 속박되어 있지 않다! 두 세 사람이 그분의 이름으로 모였을 때는 언제든지 그분께서 오셔서 들으시고 축복하신다. 구원의 무용담에서 많은 성도들은 그들의 기도에 대하여 극적인 응답을 받았다. (163.2)
 야곱의 고독한 밤동안에 그의 중보자는 야곱의 돌베개 곁에 서 계셨고, 도망자의 발길을 하늘로 향하도록 용기를 주기 위하여 그 자신이 사다리이신 분이 사다리를 내려 주셨다(창 28:10~15; 요 1:51). 여호와께서는 애굽 노예들의 고민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약속의 땅을 향한 길에서 그들을 돕기 위하여 불과 구름으로 내려오셨다(출 3:7, 8). 주님께서는 솔로몬의 성전에서 열광적인 찬양을 들으시고, 당신의 영광으로 그것을 충만케 하셨다(대하 7:1~3). 엘리야의 구주께서는 죽음을 위한 엘리야의 절망적인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의 세미하고 작은 영의 음성으로 그의 마음을 소성케 하고 마침내 그를 낙원으로 데려갈 불말을 준비되게 하셨다(왕상 19:9~14; 왕하 2:16).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히브리의 세 청년들과 함께 풀무 속에 계셨으며, 힘을 잃은 불꽃 사이로 그들과 함께 거니셨다(단 3:15, 25). 가장 깊은 감옥 속에서 바울의 탄원은 응답되었고 그의 피곤한 마음은 노래로 고양되었다(행 16:25).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그리스도께서는 기도로 당신께 이르는 자들에게로 내려오신다(살전 5:17).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중보의 금 대좌(臺座)를 이스라엘 진영의 바로 중심에 서 있는 성막의 바로 중심으로 옮겼다. (163.3)
 운반할 수 있는 제단은 기도를 드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가 없다는 것을 예배자들에게 납득시켰다. 살인적인 파도에 휘말려 난파한 배(행 27:22~25), 바다의 고기 배속(욘 2:1~9), 독재자의 사자 굴(단 6:10, 22), 또한 성전의 황금 성역(행 3:1, 2), 어디에서나 각 사람은 응답받은 기도의 체험자가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의 분주한 진영의 중심에서 언제나 운반할 수 있는 막대기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금단은, 감사의 경우나 어려움의 경우를 막론하고 언제나 믿음으로 기도를 하늘로 향해 던지라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영원하신 성령님,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163.4)
 기도는 성도를 하늘과 접촉하게 한다
 이 제단에서 봉사할 때 제사장은 하나님의 보좌로 가장 가까이 옮겨갔다. 심홍색 글씨를 가진 놋단은 영광으로 가는 순례자의 길을 가리켰다. 그 피는 봉사자에게 성소로 들어가는 권한을 주어서 확신을 갖고 빛과 떡을 지나서 중보의 금 스탠드를 향해 가게 했다. (163.5)
 두 제단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향해 가는 그의 행진을 정해 주었고 그가 각 제단에 뿌린 피는 하나였다. 놋단에서 불꽃 튀는 죽음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숨결같은 금단의 향기는 평화롭게 살라고 선포한다. 이 제단들의 피는 십자가와 면류관과 관련되어 있고, 여행자의 세상 길을 특징짓는다. 왜냐하면 오직 영광만은 저편 쪽에 있기 때문이다. (164.1)
 그러므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에 있는 휘장을 걷고 담대하게 그 안에 있는 장면을 바라보라. 그대의 대언자는 은혜의 보좌 앞에 서 계신다. 은밀한 기도의 장소에서 이 친교의 기쁨을 얻는 자는 그의 손에 자비를, 그의 눈에 영광을 얻게 된다. 도말된 죄는 바다의 깊음 속에 가라앉고 하늘의 평안이 그의 영혼에 갑자기 나타난다. 제단의 피로 얼룩진 금이 이 진리를 빛나게 한다. (1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