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깊은 접촉을 해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나의 혼인 잔치,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 우물가의 여인,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와 비근할 만큼 잘 알려진 것이 바로 베데스다 연못가의 중풍병자 이야기이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자, 유대인 통치 협의회의 분노를 불러 일으키셨다. 질문에 답하라는 요청을 받자, 그는 안식일에 생명을 주는 자신의 권한에 대해 길고도 감동적인 변호를 하셨다. (147.1)
 ■ 말씀에 들어감
 요한복음 5장을 적어도 두 번 읽은 후에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147.2)
 1. 베데스다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처음 질병에 걸리게 된 이유를 보여주는 것은 어느 절인가? 이 이야기와 이 복음서의 다른 “치유”의 사건들(4:46-54; 9:1-38; 11:1-44)과 비교해 보라. 질병과 죽음의 원인에 대해 알게 된 것을 기록해 보라. (147.3)
 2. 유대인들은 그 치유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들이 예수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고소를 제기했는가? 예수께서 이 이적은 다른 날이 아닌 안식일에 행하심으로 고의적으로 그들을 화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48.1)
 3. 이 장에 의거하여 예수께서 그의 아버지와 동일하심을 여러 방법으로 설명해 보라. 그와 아버지가 가진 관계와 그들이 공통으로 수행하는 행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들을 열거해 보라. 이 용어들 중에서 어느것이 이 복음서의 서언(1:1-18)에서도 사용되었는가? (148.2)
 4. 그대가 그룹의 일원으로 이 책을 공부하고 있다면 반원들 중의 한 사람을 예수의 위치에 두고 5:24-30의 말씀을 마치 자신에 대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장엄하게 낭독하게 하라. 그와 같은 낭독을 들으면서 그 사람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해 그처럼 거칠게 반응한 이유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낭독이 어떤 식으로 도움을 주었는가? (148.3)
 5. 이 장에서 예수에 대해 호의적인 증언을 한 모든 진술과 증언을 한 모든 사람을 열거해 보라. 이 증언 중에 예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148.4)
 ■ 말씀을 탐구함
 문단의 구조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에서 12장까지 계속되는 새로운 부분의 출발점에 위치해 있다. 전체 부분의 핵심 강조점은 예수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있다. 두 번째 강조점은 유대인 절기의 대체에 있다. 유월절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으로 대체되었다(6장). 예수께서는 수전절의 물과 빛을 대체하셨다(7-9장). 성전의 봉헌을 축하하는 절기를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성별되는 것으로 대체하셨다(10:22-39). 본질적으로 예수, 즉 생명의 시여자(施與者)이신 그분만이 우리의 필요를 진실로 충족시켜 주는 유일한 분이시기에 생명의 모든 근원을 대체하신다(10:10). 요한복음 5장은 쉽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1-18절)은 베데스다 연못가의 치유 이야기(1-9절), 치유에 대한 유대인의 반응(9-18절), 그리고 예수의 간단한 반응(17절)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장의 마지막 두 부분(19-30절; 31-47절)은 유대 통치자들의 고소에 대한 응답으로 기록된 것이다. (148.5)
 예수께서는 자신의 독백처럼 이 장의 두 번째 부분에서(19-30절) 신성의 특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하며(23절; 또한 17, 18절을 보라), 그는 영생을 주실 수 있고(21, 24절), 그는 생명의 근원이며(26절), 그리고 그는 심판자이시다(22, 27, 30절).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자신에 대해 제시하신 증거에 불만을 품었기에, 이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31-47절), 자신의 주장에 대해 자신을 지지하는 다른 증인들을 열거하고 있다. 여기에는 침례 요한(33-35), 자신의 사역(36절), 아버지(37, 38절), 성경(39, 40절), 그리고 모세(45-47절)가 포함되어있다. (149.1)
 문단의 배경
 5:1에 언급된 절기는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이 밀 수확기(5월/6월)에 일어났고,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내셨다면, 이 절기는 가을 절기 중 하나일 것이다(나팔절, 대속죄일, 혹은 초막절). 요한복음의 특성들 중의 하나는 절기가 언급될 때마다 이야기 속에 묘사된 예수의 중요 특성들이 절기의 주요 특성과 교차되는 경향을 지닌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월절이 언급될 때마다, 십자가와 주님의 만찬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후자의 경우는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다—2:13, 19-21; 6:4, 11, 51-58; 13:1-17; 18:1-19:42). 또한 예수께서는 초막절의 주요 주제인 물과 빛을 자신에게 적용시키고 있다(7:37-39; 8:12; 9:5). 그러므로 예수께서 5장에서 자신에 대해 주장하신 중요한 특성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다면, 유대인의 절기들 중의 어느 것이 이에 해당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149.2)
 5장의 주요 주제는 생명을 주는 창조(17, 21, 24-26, 28, 29절)와 심판(22, 24, 27, 29, 30절31-47절은 법적 용어인 “증거”에 관한 것이다)인 것처럼 보인다. 창조와 심판은 유대인의 일곱 번째 달의 첫날, 유대인의 신년에 거행하는 나팔절의 주요 주제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5장의 절기는 제7월 10일, 대속죄일의 궁극적인 심판의 날을 위한 엄숙한 준비의 시간과 관련이 있는 나팔절인 것 같다. (150.1)
 베데스다 연못은 최근에 예루살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다. 그것은 성전 구역의 바로 북쪽에 위치해 있다. 고르지 않은 직사각형(사다리꼴)으로 폭이 165-220피트(약 55-70미터)이고, 길이가 315피트(약 105미터)의 크기로 바위에서 절단해 낸 것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Talbert, Reading John, 121). 연못은 네 방향 모두 전각으로 둘려 쌓여 있었는데, 중심의 전각에 의해 두 부분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연못에 다섯 개의 전각이 있었다는 성경의 기록을 확증해 주고 있다(2절). 연못은 간헐천에 의해 지하에서 솟아 나온 물로 채워졌는데, 이는 종종 못이 동한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질병이 회복되기를 너무나 갈망하던 다양하게 섞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150.2)
 문단의 세부 사항
 요한복음의 초기 사본들 사이에는 베데스다 연못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두 개의 중요한 관점에 대한 불일치가 나타난다. 첫째, 연못의 이름이 불확실하다(Brown, 1:206-207; Beasley-Murray, John, 70). 초기 사본 중에 가장 공통되는 일반적인 이름이 베데스다이지만, 그것은 아마도 같은 이름을 지닌 갈릴리 도성과 혼돈한 것 같다(1:44). 학자들은 베데스다(자비의 집)는 그 의미 때문에 요한이 선택한 것이라는 주장에 기울어 있다. 예수께서 “자비의 집”에서 이를 구하는 자에게 자비를 보이신 것이다. 그러면 이 이름이 이 복음서의 너무도 탁월한 한 주제를 대신한다는 것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자비의 집을 자신으로 대체시키셨다. 예수께서는 자비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자비를 보여주셨다. 이 사람은 유대주의에서 추구하던 것을 예수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기사 속에 두 번째 불일치는 「제임스왕역」(KJV)의 4절과 관련된 것인데,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새국제역」(NIV)에서 이 구절은 “종종 주의 천사가 내려와 물을 솟구치게 했다. 그렇게 물에 파문이 생길 때마다 연못에 첫 번째로 들어가는 사람은 그가 가진 질병에 상관없이 나음을 입을 것이었다”라는 번역으로 여백에 나타난다. 이 구절이 그 연못에 대한 대중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 신학은 매우 혼란스러운 것이다. 이는 강한 자에게 보상을 주시고, 약한 자를 벌하시며, 무작위로 치유하시는 변덕스런 독재자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인은 엘렌 G. 화잇이 비록 그녀의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에도 이 구절에 대해 의문을 발한 사실에 큰 흥미를 느꼈다(화잇, 시대의 소망, 201). (150.3)
 이 사람은 삼십 팔 년 동안(당시의 평균수명) 비정상이었다(5절). 거대한 치료센터가 그에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는 전적으로 버려진 사람이었다(7절). 그에게 제공될 더 이상의 제도도 없었지만, 그가 달리 선택할 것이 없다는데 집착하고 있었다. 사실 예수께서 특별히 그를 선택하신 것은 거기 있는 모든 사람 가운데 그가 가장 비참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원하시는 자는 누구에게든지 생명을 주실 수 있다는 21절의 진리를 예증하는 행동화된 비유이다. 생명을 주시는 그분의 능력에는 전혀 한계가 없다.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