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의 초기 사본들 사이에는 베데스다 연못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두 개의 중요한 관점에 대한 불일치가 나타난다. 첫째, 연못의 이름이 불확실하다(Brown, 1:206-207; Beasley-Murray,
John, 70). 초기 사본 중에 가장 공통되는 일반적인 이름이 베데스다이지만, 그것은 아마도 같은 이름을 지닌 갈릴리 도성과 혼돈한 것 같다(
1:44). 학자들은 베데스다(자비의 집)는 그 의미 때문에 요한이 선택한 것이라는 주장에 기울어 있다. 예수께서
“자비의 집”에서 이를 구하는 자에게 자비를 보이신 것이다. 그러면 이 이름이 이 복음서의 너무도 탁월한 한 주제를 대신한다는 것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자비의 집을 자신으로 대체시키셨다. 예수께서는 자비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자비를 보여주셨다. 이 사람은 유대주의에서 추구하던 것을 예수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기사 속에 두 번째 불일치는 「제임스왕역」(KJV)의
4절과 관련된 것인데,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새국제역」(NIV)에서 이 구절은
“종종 주의 천사가 내려와 물을 솟구치게 했다. 그렇게 물에 파문이 생길 때마다 연못에 첫 번째로 들어가는 사람은 그가 가진 질병에 상관없이 나음을 입을 것이었다”라는 번역으로 여백에 나타난다. 이 구절이 그 연못에 대한 대중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 신학은 매우 혼란스러운 것이다. 이는 강한 자에게 보상을 주시고, 약한 자를 벌하시며, 무작위로 치유하시는 변덕스런 독재자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인은 엘렌 G. 화잇이 비록 그녀의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에도 이 구절에 대해 의문을 발한 사실에 큰 흥미를 느꼈다(화잇,
시대의 소망,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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