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아름다워라 12. 엘 가물로트—갚으시는 하나님 (보응을 내리시는 하나님)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이 망할 당시의 선지자였다. 그의 봉사 기간 중 하나님의 백성은 드디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의 가르침을 떠나 보호하시는 하늘의 은혜를 저버린 결과 약탈에 능한 바벨론 군대의 횡포 앞에 가릴 것 없이 노출되었다. 선지자는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불과 20년 사이에 세 번이나 예루살렘을 공략하는 것을 눈물로 보았고, 수많은 인명이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보고 통곡했다. 점점 줄어드는 자기의 청중들을 향해 그는 하늘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재고하고 성령의 지도를 받아들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그들이 당하고 있는 두려운 고난의 원인을 지적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그 모든 진지한 사랑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력은 아무런 성과가 없을 뿐 아니라, 어디를 가든지 다만 말할 수 없는 악랄한 반대와 핍박이 그를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180.1)
 그가 바벨론 군대 제 1 진의 접근을 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신은 그에게 만일 유다 왕과 백성이 싸우기를 거부하고 예루살렘 성문을 활짝 열고 느부갓네살의 통치 앞에 머리를 숙이면 모든 것이 무사할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나 항거하면 유대 나라의 운명은 패망으로 끝나고 백성은 70년 동안 바벨론에 잡혀가 포로 생활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 경고 때문에 선지자는 유다군의 사기를 해치는 친 바벨론 파라는 비난을 받았고, 반역자로 낙인이 찍혔다. 매질과 투옥은 물론 끼니를 거르기가 다반사(茶飯事)였으며, 점차 포악성이 심해지는 가운데 그는 심지어 사형의 위협까지 받았다. (181.1)
 왕과 귀족과 심지어 선지자들이라 하는 자들을 포함한 유다 백성이 하나님과 그의 기별자를 대하는 정신은 철저한 자기 정당화와 오만 불손 그것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늘의 가호하시는 은혜를 벗어난 것이 자기들의 행위 때문이란 견해를 재고의 여지없이 배척해 버리고, 사단의 사주를 받는 적국의 침략과 공격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예레미야가 이것을 지적하기 위해 열을 올리면 올릴수록 그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그만큼 더 심해졌다. (181.2)
 주께서는 심지어 당신께서 왜 바벨론 군대를 동원하여 당신의 백성과 세상을 징계하시는지 그 까닭을 설명하셨다: “바벨론은 주의 손에 있는 금잔으로 온 땅을 취하게 하였도다. 민족들이 그녀의 포도주로 쉬하였으므로 그 민족들이 미쳤도다.... 우리가 바벨론을 치유하였으면 하였으나 그녀는 치유되지 아니하였도다. 그녀를 버리고 우리 각자는 자기 본토로 돌아가자. 이는 그녀의 심판이 하늘까지 미치고 ... 주께서 우리의 의를 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주 우리의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자”(렘 51:7-10). (181.3)
 “잔(盞)”의 상징적 의미
 성경에서 잔이라 하면 사람이나 나라가 선악간에 그들이 저지른 행위 때문에 받는 보상을 말한다(시 23:5; 75:8; 116:13; 사 51:17).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는 아버지께 기도하실 때 가능하면 “이 잔”이 자신으로부터 옮겨지기를 간구했다(마 26:39; 눅 22:42). 이 잔은 타락한 지구가 받을 것을 그분이 대신 마시기로 자원하신 잔이었다. 구세주는 인류가 하늘의 다스림을 거역한 결과 받아야 할 모든 징벌을 대신 받으셨다. 그분이 마신 “잔”에는 죄로 타락한 세상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한 때문에 받아야 할 멸망과 징벌이 들어 있었다. (181.4)
 주께서는 유다뿐 아니라 그 변방 나라들에게 그들이 응당 받아야 할 “잔”을 바벨론을 시켜 부으셨다. 그러나 바벨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보다 훨씬 심한 잔인성과 극단적 보복 정신을 발휘했다(슥 1:15). 그들은 여호와의 의도를 제멋대로 왜곡한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을 가벼이 매질하는 것이었으나 그들은 가혹한 학대와 잔인한 학살로 치달았다. 이렇게 그들은 하늘의 명령을 이행하는 데 실패했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잘못 나타냈으므로 그 결과 자기가 보응을 받아야 했다. (182.1)
 바벨론은 언젠가 망한다
 그 때 주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이 하나님과 인류에게 저지른 범죄로 인해 멸망할 것을 예언하셨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멸망시키는 [바람을 일으켜] 바벨론을 치고 또 나를 대적하는 자 중에 처하는 자를 치되 내가 타국인을 바벨론에 보내어 키질하여 그 땅을 비게 하리니 재앙의 날에 그를 에워 치리로다”(렘 51:1, 2). 그들은 죄로 인해 성전의 저울에 저울질 당하고, 곧이어 하늘의 공의에 따라 마땅히 받아야 할 완전한 보응의 날을 맞이했다(단 5:1-3). (182.2)
 백성이 하늘이 보낸 기별을 배척함으로써 크게 잘못하고 죄를 범하기는 했으나, 그들이 구원을 전혀 못 받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나님은 설명하셨다. 비록 그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잡혀가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그들의 종말은 아니었다. “이는 그들의 땅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거슬려 죄로 가득 찼을지라도, 이스라엘과 그의 하나님 만군의 주의 유다[즉 눈에 띄지 않는 경건한 사람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무리]는 버림받지 아니하였음이라”(렘 51:5). (182.3)
 주님은 어느 날 바벨론이 고레스가 지휘하는 페르시아 군의 침략을 받아 멸망될 것을 이미 2세기나 앞서 예언하셨다(사 44:24-45:4). 포로된 하나님의 백성은 그 때 풀려나 도주하게 된다. “바벨론[여성 명사] 가운데서 도피하여 각인은 자기 생명을 구하라. 그녀의 죄악으로 멸망당하지 말지니, 이는 이것이 주의 복수의 때임이라. 그녀에게 보응하시리라(gemul, 그물)”(렘 51:6). (183.1)
 성경의 사건의 배경은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한다
 예레미야 51장은 나라와 민족들이 왜 고난을 당하는지 그 이유를 간략하게 말해 준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당신의 백성에게 이렇게 설명하셨다: “이는 그 파괴자가 그녀, 곧 바벨론에 왔으므로 그녀의 용사들이 잡히고 그들의 활들이 모두 부러졌음이니, 이는 보응의 주 하나님께서 정녕 [그것을] 요구하신 까닭이라”(렘 51:56). 구원의 역사 전반을 통해 여호와께서는 시종일관 “복수와 보응은 내 소관”임을 강조하신다(신 32:35). 모세의 표현 방법이 조금 달라 보이긴 해도 그 뜻은 예레미야의 말한 것과 같다. (183.2)
 바벨론의 운명에 대한 이 예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 이름이 사용된 유일한 경우를 발견한다. 그 배경은 반역과 죄와 심판과 공의이다. 하나님은 여기서 나라들과 당신의 백성을 다루시는 당신의 방법을 나타내셨다. 그는 모든 사람의 권익을 존중하시는 당신의 절대적 원칙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그들에게 보낸 당신의 경고와 호소를 상기시킨 후 그들이 당신의 권위를 계속 거부하고 반역했음을 지적하셨다. 그러나 이제 보응의 날은 왔다. 그는 모든 미결 사항을 당신께서 직접 해결하신다고 선언하셨다. 그들의 잔은 차고 넘치고 있었다. 그는 보응의 주 하나님이란 당신의 이름을 기꺼이 과시하신 것이다. (183.3)
 보복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구․신약 성경은 사람이 자기에게 잘못한 자에게 앙갚음하기 위해 손수 보복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르친다. 사람은 올바른 판단에 필요한 사실적 정황 파악에 과오를 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지식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판결권과 형 집행권은 하나님만 소유하시게 마련이다. 사도 바울은 법과 공의 문제에 예리한 관심을 소유했던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썼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 너희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하였으되, ‘원수 갚는 것은 나의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롬 12:17, 19). 솔로몬도 같은 사상을 말했다: “너는 ‘내가 악을 갚으리라’고 말하지 말고 주를 기다리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잠 20:22). (184.1)
 가물로트(gamuloṯ)란 말의 어원은 가말(gamal)이란 동사의 원형이다. 이것은 “갚다, 셈을 치르다, 줄 것을 주다”란 뜻의 말이다. 이 말은 좋은 의미로 쓰일 수도 있고 나쁜 의미로 쓰일 수도 있다. 이 동사의 용도는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마땅히 받을”(삿 9:16), “갚다” “보응”(삼하 19:36; 사 3:11), “보응으로 갚다”(애 3:64), “보복으로 갚다”(사 59:18). 사람은 남에게 은혜를 입을 때 그 은혜를 갚을 의무를 느낀다. 그러나 한편 억울한 피해를 받을 때는 원수를 갚으려 한다(시 7:1-17).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금하는 것이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경고하신다: “복수와 보응이 나의 소관이니, 그들의 발이 정해진 때에 실족하리라. 그들의 재난의 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임할 일들이 속히 되리라”(잠 32:35). 하나님의 백성은 사태의 귀결을 기다리며 참아야 한다.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섭리가 모든 원한을 다 풀어 주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184.2)
 이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는 그물라(gemulah)이다. 그 뜻은 혜택, (버림받은 뜻에서) 사막, 황야, 보상이나 마땅히 받아야 응보를 포함한다. 또 이 말은 보응이나 보상을 받을 결정적 순간의 성숙과 도래를 의미한다. 아론의 지팡이에서는 아먼드[扁桃]가 익었다(yigmal, 익말)고 기록되었으며(민 17:3-5; 비교 사 18:5), 아이가 젖을 뗄 때 엄마의 젖먹이는 일은 끝난다 (창 21:8; 삼상 1:22-24). 이 그물라(gemulah)는 절정이나 위기에 다다름을 의미하기도 한다. (184.3)
 그러면 이 말이 사용된 경우를 살펴보자. 현모양처는 평생 남편에게 선한 일만 행한다(gamal, 가말, 잠 31:12). 사울은 다윗에게 “나는 네게 악으로 갚았어도 너는 내게 선으로 갚았다”(삼상 24:17)고 말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좋은 것으로 만족하겠으나, 사람의 손의 보응은 그에게로 돌아올 것이라”(잠 12:14). “강건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복수하러 오시며, 하나님이 보응하시리니, 그가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실 것이라”(사 35:4). “그들의 행실에 따라(보응에 따라—난외주) 그렇게 갚으시되, 그의 대적들에게는 분노로 하시고 그의 원수들에게는 보복으로 하실 것이며, 섬들에게도 보복으로 갚으시리라”(사 59:18; 참고 마 25:14-46). 하나님은 “너희 보복을 너희 머리 위로 돌릴 것이며”(욜 3:7; 참고 4절). (185.1)
 성경의 인물 중에는 이 말에서 파생된 가말리엘(하나님은 나의 보응)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사람 있다. 하나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고(민 1:10; 2:20; 7:54, 59), 다른 한 사람은 유명한 바리새인이며 존경받는 성경 교사였다. 그는 동료 산헤드린 회원들에게 예수의 제자들을 공정하게 다룰 것을 종용한 사람이었다(행 5:34; 22:3). 그는 진실로 자기의 이름에 합당한 생애를 산 사람이었다.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