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동이 흘러나오는 두 중심은 마음과 생각이다. 행동과 말은 마음에 근거한다고 예수님은 마태복음 12:33-35에서 지적하셨고 지혜자는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이 라고 말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 마음과 생각의 명세서를 검사하여(시 26:1-7) “악한 행위”(시 139:23, 24)를 제거해 달라고 거듭 기도한다. (808.5)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악을 삼가게 하는 기준들을 세워 마음과 생각을 순결하게 유지한다. 심지어여가와 오락의 시간에도 마음으로 연결된 통로를 세심하게 지켜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이 생각을 파고들거나 마음을 끌어당기지 못하게 해야 한다. (808.6)
 (1) 일반 원칙
 ‘순결의 원칙’(시 51:10)에서는 악한 생각이나 욕망을 거북하고 위험한 것으로 거절한다. 외설을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을지, 타협의 허용 선은 어디까지일지, 위험 수위에 얼마만큼 접근해도 안전한지를 놓고 옥신각신하며 뭉그적거리는 어정쩡한 태도는 이 표준에 어긋난다(시 24:4; 마 5:8).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시듯 그리스도인은 순결을 사모한다(요일 3:3).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의 원칙’(마 22:37; 빌 4:8)에서는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무엇보다 높이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그분의 모습을 더 잘 드러낼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자제의 원칙’(고전 9:24-27)에서는 몸과 마음과 영혼을 성령의 지배 아래 두라고 지시한다. 그리스도인은 원수의 땅을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그곳은 언어가 낯설고 음식이 해롭고 가치관과 관습이 다르고, 발걸음마다 힘주어 정신 차리며 걸어야 하고 반대를 견뎌내야 하는 곳이다. 베드로는 “더욱 힘써” 자신을 다스리라고 조언한다(참조 벧후 1:5, 6; 갈 2:22, 23). ‘휴양의 원칙’(사 40:31)에서는 참된 휴양의 영적 특성을 강조한다. 여가 시간이 더 고상하고 숭고한 목적을 지지하고 격려하고 고무하는 시간이 될 때,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때 마음과 생각은 참다운 새 힘을 얻는다. (809.1)
 ‘하나님의 임재의 원칙’(시 139:2-12)은 격려가 되는 동시에 경각심을 일깨운다.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진술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들으시고 우리의 언행을 정확히 기록하신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이 모든 기록을 마주 대할 것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고 지낸다면 우리는 죄 짓기가 두려울 것이다. 청년들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자신이 항상 하나님 앞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행동 중 어느 것도 감찰하시는 눈길에서 벗어날수 없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도 죄인을 숨겨 주지 못한다. 자기 혼자밖에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보이지 않는 증인이 모든 행위를 보고 있다.”(부조와 선지자, 217,218). (809.2)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는 숨이 막히거나 위협적이지 않다. 그분의 목적은 형벌, 정죄, 파괴가 아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손이 언제나 자신을 이끌고 붙들고 있음을 경험했다(시 139:10).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절대로 죄와 함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생각과 감정 속에서 그분의 임재를 끊임없이 의식하면 우리는 죄를 멀리할 수 있다. (809.3)
 (2) 규범 모델
 요셉은 순결, 자제력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 지내는 삶의 아름다운 본보기이다. 어쩌면 그는 매일의 과중한 업무와 학대가 보상 받는 기쁨의 순간이 오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셉은 결과를 저울질하거나 상황을 따져보지 않았다. 만만치 않은 유혹에 그는 단호한 용기로 맞섰다. 그의 마음 상태를 엘렌 G. 화잇은 “의식적(意識的) 순결(conscious innocence)”이라고 묘사했다. 죄는 순결을 저버리게 하지만 요셉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결정적인 근거는 하나님의 임재였다.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도 요셉은 곁에 하나님이 계심을 인식했고 그점을 소중하게 여겼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그는 맞받아쳤다(창 39:9-11). 죄의 길은 삶의 목표에서 벗어나는 길이었다. 그는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는 길을 더 좋아했다. (809.4)
 성경에는 곁길로 가거나 불건전한 여흥에 빠졌던 사람들의 부정적인 사례가 많다. 소돔과 고모라 거민은 방탕한 삶의 결과로 멸망했다(창 19:13, 24, 25). 삼손은 자제력이 부족해 결국 자살로 삶을 마쳤다(삿 16:28-30).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건전하고 순결한 삶의 완전한 모본이다. 침례 후에 다가온 세 가지 시험(마 4:1-11) 그리고 왕위와 세상 즐거움을 위해 자신의 사명을 저버리게 하는 유혹 모두에 강경하고 단호하게 대항하셨다. 마침내 십자가의 죽음은 비길 데 없는 모범이 되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즐거움을 인간 행복의 지침으로 삼고 따르도록 초청한다. (809.5)
 (3) 행동 지침
 그리스도인의 여가 활용에 안내가 되는 여러 지침이 있다. 시편 1:1-6; 잠언 25:28; 전도서 11:9; 12:1; 로마서 1:28; 8:6; 갈라디아서 5:22, 23; 빌립보서 1:9-11; 골로새서 3:2. (810.1)
 4. 휴양에 관한 쟁점들
 그리스도교는 건전한 즐거움과 진정한 휴양을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사실 경기, 음악, 독서, 라디오 청취나 TV 시청 등은 유익과 행복을 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불건전한 활동에 가담하려는 유혹도 받는다. 사회 가치관의 영향 그리고 유별나게 보이지 않으려는 심리가 결합해 타협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 몸, 생각, 마음을 강하게 휘어잡는 오락의 매력에 대해 의지가 약한 그리스도인도 있다. 건강하고 건전한 오락을 제공하기 위해 교회와 사회가 창의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을 다하지 못하여 지루함이라는 위험한 공백이 생기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어른들이 본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가르침과 주장에서 엇나갈 수도 있다. (810.2)
 a. 독서
 인쇄물은 사상 견해, 관념을 전달하는 강력한 매체다. 뛰어난 저술가는 스크린이나 무대의 공연과는비교도 안 될 만큼 멋진 장면을 독자의 생각 속에 그려 넣을 수 있다. 그와 같이 인쇄물은 마음과 생각의 저장고를 열고 내용물을 제공하여 우리의 행동과 반응을 이끌어 낸다. 부적절한 독서는 여러 면에서 위험하다. 예를 들어 가공의 이야기를 읽으면 현실과 괴리될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즉각적이고 어려운 결정을 요구받을 때 판타지의 세계는 손쉬운 도피처이다. 해롭고 심지어 죄악적인 가치관이 자극적인 문체와 흥미진진한 플롯으로 위장하여 생각과 마음에 파고들 수도 있다. 천천히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읽는 대로 된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책을 고를 때는 휴양에 대한 성경의 원칙을 동일한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모든 독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고전 10:31) 마음과 영에 덕을 끼쳐야 한다. (810.3)
 b. 라디오와 텔레비전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투입되는 금액은 어마어마하다. 거의 예외 없이 이들 프로그램은 생각과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다. 시청자들은 보고 들으면서 끊임없이 광고에 노출된다. 광고들은 노련한 판매 기법으로 한 가정의 사생활에 침투하여 욕구를 자극하며 이는 구매와 소비자 심리로 이어진다. (810.4)
 프로그램에서 표현되는 행동 기준들은 본서에서 묘사한 그리스도인 생활방식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노래와 프로그램 속에는 섹스와 폭력이 스며들어 있다. 권위를 무시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비하하는 내용도 수시로 내보낸다. 뉴스 방송과 토크쇼도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합당하지 않은 의제를 다룰 때가 흔하다. (810.5)
 보통 가정에서는 서로 가족애를 나누고 활동하는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텔레비전 시청에 쏟는다. 따라서 오늘날 아이들에게는 텔레비전이 역할 모델이자 멘토가 된다. 그리스도인 가정에서조차 가정 예배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밀려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라디오 청취에 소비하는 시간도 그에 못지않게 상당하다. (810.6)
 텔레비전을 들여 놓지 않으면 더 안전하겠지만 그런 선택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 어쨌든 시청할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는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신문이나 프로그램 안내 책자에서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지 신중하게 규칙을 정하여 실행, 적용해야 하며 집안에 어린이가 있을 경우는 특히나 그렇다. 신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을 위해 아이들의 시청 시간을 제한해야 한다. 아이들이 무엇을 보는지 확인하고 그 프로그램의 유익과 위험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부모가 함께 시청해야 한다. 해당 프로그램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명되면 즉시 채널을 돌리거나 텔레비전을 꺼야 한다. 그럼에도 인간의 두뇌는 사상, 태도, 감정을 매우 빠르게 포착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그리스도인 표준에 맞지 않다고 깨닫는 순간이면 사상 말, 심리적 이미지가 생각과 마음에 파고들지 못하게 막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을지도 모른다. 직접 대면하든 스크린으로 시청하든, 집안에 나타나 말하고 노래하는 존재가 누구여야 하는지를 신중하게 택해야 한다. (8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