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반원칙
 ‘하나님의 보살핌을 신뢰한다는 원칙’(마 6:25-34)에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자유를 일깨워 준다. 시간 관리에 그 무엇보다 영향을 주는 것은 미래와 생필품에 대한 염려이다. 하루 중 가장 유용한 시간과 신체, 정신, 의지의 가장 유용한 에너지가 생계유지에 죄다 소모되고 있다. 생존과 안락을 위해 몸부림치고 이웃과 경쟁하느라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가족과 타인과 함께해야 할 더 중요한 시간을 빼앗기는 문제에 대해 예수님은 우려를 표하셨다. (805.4)
 ‘쉼의 원칙’(출 20:8-11)에서는 우리의 시간을 휘어 잡는 요소가 걱정거리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시간 자체가 일이기도 하다. 존재한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끊임없이 활동 상태이며 무언가를 성취하고 달성한다. 하나님이 쉬라고 요구하시지 않았다면 인간은 단순히 일하고 잠만 잘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제칠일을 남겨두셨다.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 인간은 추구하고 꾀하기를 중단해야 한다. 획득과 소비라는 폭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자기 자신, 가족, 친구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또 이 원칙에서는 덧없는 것, 썩어버릴 것, 변질되고 사라져 버릴 것에서 벗어나 쉬라고 요구한다. 이원칙으로 우리는 시간을 초월하게 되고 우리가 갈망하는 영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전 3:11). (805.5)
 안식일은 죽음의 공포가 없는 삶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안식일은 세속의 그 무엇도 큰일로 여겨지지 않는 시간이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이 점을 잘 요약한다. “시간과 노역이라는 광포한 바다 가운데 고요의 섬이 있다. 인간은 거기서 항구에 안착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되찾는다. 그 섬은 제칠일 안식일이다. 사물, 수단, 현실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그만큼 정신에 집착하는 하루인 것이다.”(29). (805.6)
 ‘근면의 원칙’(출 20:9)에서는 부지런함과 정직한 근로가 시간의 청지기인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게으름은 그리스도인 제자도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일하라고 하셨다. 게다가 휴식이란 일의 중단이다. 일은 휴식에 앞선 것이다. 마지막으로 휴식은 게으름처럼 수동적이지 않다. 쉼이란 생명 자체, 생명의 의미 그리고 생명의 창조주에게 초점을 맞추는 활동적인 상태이다. ‘적시(適時)의 원칙’(전 3:1-8)에서는 시간의 신중한 활용을 요구한다. 규칙성은 자연 법칙의 기초이다. 생명 자체가 규칙성에 의존한다. 늑장은 함께 활동하는 타인의 시간을 헛되게 한다. 이것은 또 불안정과 불성실을 암시한다. (805.7)
 (2) 규범 모델
 하나님은 시간의 선한 청지기직분에 대해 최고의 모본이시다. 그분은 창조 주간의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창 2:2, 3; 출 20:11). 그분은 세상의 사건에 능동적이시며(단 4:34-37) 천체 그리고 지 구상의 생명을 보존하신다(시 104:1-30). 그리고 은혜의 기적을 일으켜서 시간에 속박된 인간의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변화시키신다(요 4:14). 그분의 행동은 더디거나 성급하지 않다(렘 25:12; 막 1:15; 갈 4:4; 엡 1:10). 그러면서도 쉬면서 자기 자녀들과 교제할 시간을 마련하시고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그분은 땅을 돌보시고 땅이 휴식할 시간을 명하신다(레 25:4). 그분은 밤 시간을 창조하여 생명체들이 쉼을 얻게 하셨다. (806.1)
 예수님의 생활방식에서는 사명을 성취하려는 강한 의욕과 휴식을 위해 구분된 시간 사이의 건강한 긴장감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몸과 마음과 영혼을 새롭고 상쾌하게 해 준다(막 6:31). (806.2)
 (3) 행동 지침
 D. 개인적 책임에 대한 표준
 행동, 말, 태도는 저마다 인상과 흔적을 남긴다. 이것을 영향력이라고 부른다. 그 위력은 첫째로 당사자가 느끼고 둘째로 타인들도 느낀다. 성경은 이 위력을 책임감 있게 사용하라고 역설하며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해 선하고 고상한 행동을 고양해야 한다고 촉구한다(롬 14:19, 20).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이 어떤 점에서 자신과 타인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지 또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긍정적인 힘이 되게 하는 성경적 표준은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806.4)
 1. 복장의 표준
 창조는 복합적이고 기능적일 뿐 아니라 아름답다. 꽃 새, 동물, 식물, 산 그리고 특별히 인간에게서 완벽하게 드러나는 수많은 형태, 색상 소리 등은 지극히 위대하신 예술가의 존재를 가리키고 있다. 인간의 삶은 아름다움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므로 선천적으로 인간은 아름다움을 사모하고 찾게 되어 있다(창 2:9). (806.5)
 수천 년간 의복은 주로 몸을 가려 주고 보호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그에 덧붙여 부유한 사람들은 의복을 심미적 요소로 여긴다. 의상은 사람을 돋보이게 하려고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은 아름다움과 단아함을 반대하지 않지만 유행과 과시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주의해야한다. (806.6)
 (1) 일반원칙
 ‘검소의 원칙’에서는 돈과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자 한다. 질이 좋으면서도 사용자에게 어울리고 경우에 알맞은 옷이라면 최상의 복장이다. 질보다 양은 결코 이득이 되지 않는다. ‘단정의 원칙’(딤전 2:9)에서는 외모의 수수함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인의 외모는 파격적이거나 현혹적이지도, 옷차림으로 이목을 끌지도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신체를 드러내거나 질번질번한 복장은 그리스도인 예모와 품격에 어긋난다. ‘내면적 아름다움의 원칙’(벧전 3:3, 4)에서는 색상과 스타일이 아니라 마음을 보고 감탄하게 한다. 외모의 아름다움은 피상적일 뿐이고 그 매력은 잠시뿐이다. 내면적 성품의 아름다움, 즉 조화롭고 평화롭고 호의적인 기질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은 지속적이며 참된 아름다움이다. 그 영향력은 도덕적 미덕을 고취한다. 신뢰와 사랑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스도인의 자아상은 이러한 내적 아름다움에 기초한다. 따라서 그들은 외모로 자기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잠 31:30). (806.7)
 (2) 규범 모델
 그리스도인 의복의 행동 규범이 될 만한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예수님은 단정하고 검소한 복장의 뚜렷한 모본이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병사들은 그분의 옷이 서로 나눠 가질 만큼 가치 있다고 보았다. 그분의 이음매 없는 겉옷은 값지게 평가 받았다(요 19:23, 24). (807.1)
 두로의 왕을 애도하는 이야기에서 상징적으로 묘사된 루시퍼는 자신의 아름다움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져서 타락했다(겔 28:1-10). 천사라고 해도 아름다움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마력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이것은 외모의 매력에 의존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부정적인 사례임을 그리스도인이라면 깨달을 것이다. (8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