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행동 지침
 그리스도인 직업 관계에 대해 다음의 여러 지침을 적용할 수 있다. 예레미야 22:13-19; 에베소서 6:5-9; 데살로니가전서 4:11, 12; 데살로니가후서 3:6-12; 디모데후서 2:6; 야고보서 2:1-9. (800.2)
 b. 시민의 책무
 그리스도인은 시민 공동체의 중요한 일부로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다음은 공공 생활과 관련된 성경적인 행동 표준이다. (800.3)
 (1) 일반원칙
 ‘하나님을 첫째로 따른다는 원칙’에서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이 시민의 의무를 올바른 관점으로 접근하도록 돕는다(행 4:19). 세상에서는 각 단계의 법이 하나님의 계명과 상충할 때도 있다. 판사는 법에 대한 책임을 담당하지만 각 시민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이 있다. 이런 경우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신념을 설명하고 양심의 자유를 호소해야 한다. 양심의 자유는 하나님께 받은 권리로서 그 자유의 근거는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호소가 거절됐을 경우는 하나님을 우선으로 따르다가 벌금형, 박해, 징역 또는 과거 수백 년간 그리스도인들이 겪어야 했던 희생을 당할 수도 있다. ‘법과 질서에 순종한다는 원칙’ 또한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이다(롬 13:1-7). 하나님께 첫째로 순종하라는 것이 독자적으로 행동하거나 사회 불화와 혼란을 일으켜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세금을 납부하고, 시민의 의무에 동참하고, 교통법규와 재산권 규제를 존중하고, 범죄와 폭력 억제를 위해 행정 당국에 협조한다. 공무원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합당하게 순종하기 위해 지역의 법을 열심히 익히며 지역사회 행사를 적절히 통지받고 사희생활에 적극 동참할 것이다. ‘사회적 정의의 원칙’에서는 인간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은 그와 같은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요구한다(렘 5:1-6). 교회 안에서부터 시작하여 시민의 영역으로 확대된 관계에 이르기까지 인종, 성별, 지위에 다른 차별에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반대를 표시해야 한다. 교회는 부도덕하거나 정치적인 수단을 의지할 수는 없지만, 국가의 정치 조직이 허용하는 모든 방법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교회는 공직에 소명을 느끼는 이들에 대해서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800.4)
 (2) 규범 모델
 바로의 궁정에서 요셉은 정직하고 창의적이고 통찰력 있는 행정자로 숭고한 행동 규범을 설정했다. 그러면서도 권력을 휘두르며 하급자를 학대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재정을유용하지 않았다(창 41:37-57). (800.5)
 바벨론과 메대-바사 궁정에서 히브리인 공직자 몇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왕의 뜻을 거역해야 할 때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타는 풀무에 던져졌고(단 3장), 다니엘은 충성했기에 사자굴에 던져졌다(단 6장). 그 결과 이방의 궁정과 나라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목격했다. (800.6)
 메대-바사왕 아하수에로의 궁정에서 왕후 에스더는 하나님 백성에 대해 충성할 것을 잊지 않았다. 기도하고 금식한 뒤 그녀는 용감하게 행동하여 부도덕한 칙령을 뒤엎어 놓았다. 에스더는 옳고 선한 일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에 4:16) 하나님을 첫째로 따른다는 높은 규범을 세웠다. (800.7)
 바울은 견문이 넓은 시민의 뚜렷한 모범이다. 그는 세상의 법에 순종했지만 그 법이 남용될 때는 잠자코 있지 않았다(행 25:8-12). 예수님 자신도 합당한 이유 없이 자신을 때린 병사에게 학대를 중단시켰다(요 18:23). (800.8)
 (3) 행동 지침
 c. 사회적 책무
 그리스도인은 사회 안에 거하기 때문에 인간의 곤경, 불안, 부조리를 접한다. 그리스도교 생활방식은그리스도의 생활방식을 따라야 한다. 그분은 두루 다니며 선한 일을 행하며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셨다. 스스로 모범적인 삶을 사셨을 뿐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비유로 가르치면서 자기 제자가 되려면 타인을 보살펴야 한다는 의식을 불어넣으셨다.누군가의 고통을 목격하고 곤란한 상황을 느끼면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예수님은 이런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신다(마 25:31-46). (801.2)
 (1) 일반원칙
 ‘자기부정의 원칙’은 사회적 본분을 실천하는 생활 방식에서 첫 번째로 가장 어려운 단계이다. 자기를 살피고, 자기에게 마땅히 필요한 것을 찾고, 교육과 수련에 시간과 재정을 투자하고, 건전한 목표와 이상을 추구하고 심지어 십계명을 지키면서도 자기 자신만의 구원에 치중하여 남의 곤란한 사정은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가서∙∙∙팔아∙∙∙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예수님은 젊은 부자 법관에게 명하셨다(마 19:21). 예수님은 자아를 보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분을 위해 자아를 버리는 것이라고 단언하신다(마 10:39). ‘동일시의 원칙’은 자기부정으로 생긴 빈자리를 채워준다(사 53:4-6). 그리스도인이란 가난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가난한 사람이 존재할 뿐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다. 고난, 절망, 전쟁, 질병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단지 고난당하는 사람, 집없는 사람, 싸우는 이웃, 아픈 사람이 실재할 뿐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종교적 생활방식이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는 것”이 아니겠는가?(사 58:6-7). 이 원칙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마치 자기 자신이 무기력한 곤경에 처한 당사자인 것처럼 동일시한다. 예수님이 불행한 사람의 자리에 자신을 두신 것처럼 말이다(마 25:31-46). (801.3)
 ‘희생의 원칙’에서는 자기부정과 공감 능력이 수동적인 데 그치지 않게 한다(약 1:27). 이론, 프로그램, 약속, 기도로는 과부와 고아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자기 재정과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인은 곤경에 빠진 사회를 돕기 위해 결코 시간, 재정, 의욕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체계적인 자선의 원칙’에서는 불우이웃 돕기 활동을 훨씬 믿음직하고 견실한 사업으로 만들어 준다(고전 16:1-4). 재난이 닥쳤을 때, 산발적이고 무계획적인 구호활동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욱 지속적인 도움, 더욱 밀접한 개입과 동참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에서는 체계적인 자선으로 이러한 도움을 제공한다. (801.4)
 (2) 규범 모델
 신정 체제 하의 이스라엘 경제 전반에서는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이 보살핌을 받았다. 땅의 휴식, 노예 해방, 원소유주에게 재산 환원 등을 지시한 희년 제도는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행운아와 불행한 사람의 차이를 해소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레 25장). 이스라엘은 체계적인 자선의 가르침을 배웠다. 수확의 일부를 거두지 말고 놔두어 가난한 이들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게 하라고 지시 받은 것이다(레 19:9, 10). (8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