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해결되지 않았다. 동성애가 습득된 행동이라는 증거도 있는 반면, 동성애가 늘 의식적인 선택의 결과나 초기의 영향에 의한 것만은 아니며 유전적일 수 있다는 연구도 발표됐다. 어떤 경우든 동성애 요인들은 그리스도인 생활방식에 부분적으로만 관련된다. (798.3)
 만약 동성애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면 이것은 단순히 행동이 아니라 게이나 레즈비언이 스스로에 대해 인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고유한 방식이라는 주장도 있다. 동성애 행위는 이 고유한 자아 개념에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동성애는 자연스러운것이며 불법이나 죄악으로 간주할 수 없게 된다. (798.4)
 이 추론을 받아들이려면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입장을 포기해야 한다. 동성애가 순리적이고 대안적인 지향이라는 주장은 로마서 1장 26, 27에서 바울이 진술한 내용과도 상충한다. 또 이 주장은 동성애자에게 사형을 승인하신 하나님을 부당한 존재로 여기게 한다(레 18:22; 20:13). (798.5)
 더군다나 동성애가 순리적이고 그 행위도 죄가 아니라고 여기면 그리스도교 복음의 능력에도 문제가 생긴다. 예수님은 습득된 무질서는 물론 유적전이고 물려받은 성향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러 오셨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개인은 완전한 선택권이 주어진 행위에만 책임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죄악 중에서” 출생했다(시 51:5). 그럼에도 이 사악함이 우리의 삶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동성애자, 알코올중독자, 절도광 어떤 죄인이든 자신의 죄에 대해 죽어야 한다. 즉 이 상태에서 물러나야 한다. 모두가 하나님께 자신을 내맡기고 죄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새 삶을 얻도록 초청받았다(롬 6:1-23). (798.6)
 (2) 규범 모델
 성경에서 동성애 행위를 암시하는 사건은 딱 두 가지이다. 두 사건 모두에서 동성애적 집단 강간의 위협을 받지만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창세기 19:1-11에서 소돔 남자들이 롯의 집에 방문한 천사들을 찾아온다. 사사기 19:16-22에서는 기브아 남자들이 비슷하게 행동한다. 두 이야기는 모두 해당 남자들의 사악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술된다. (798.7)
 (3) 행동 지침
 다음 명령들은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명백한 지침을 규정하고 있다. 레위기 18:22; 20:13; 로마서 1:27; 고린도전서 6:9-11; 디모데전서 1:8-11. (798.8)
 4. 시민 생활
 인간이 그리스도인으로 살라는 부르심을 접하는 것은 직업적 및 사회적 현장 속에서다. 때때로 이 부르심은 소명의 변화를 뜻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동일한 일터에서 동일한 이웃, 동일한 가족과 어울리면서 단지 삶의 방식이 바뀐 모습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초청이다. 그와 함께 다소 역설적인 상황도 발생한다. 예수님은 이것을 요약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세상에 거하나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다고 했다(요 17:14-18). (798.9)
 역사에 걸쳐 교회는 세상에 거하면서 세속성을 피할 최선의 방법을 찾아 왔다. H. R. 니버(H. R. Niebuhr)의 유명한 연구(1951년)에서는 그리스도교와 세상의 다섯 가지 다른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이다. 이 관계에서는 교회가 밀폐된 폐쇄적 상태로 존재한다(테르툴리아누스). 다음으로 “문화의 그리스도”이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교가 주어진 문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도록 장려된다(영지주의자). “문화 위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와 문화의 통합을 추구한다(아퀴나스). “역설 관계에 놓인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입장에서는 이원론적 변증을 지지한다(루테. 마지막으로,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이다. 여기서는 변혁을 사회에 대한 교회의 사역으로 규정한다(아우구스티누스). (799.1)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분명 세상의 소란으로 돌입하면서도 둘러싼 문화의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운 교회를 그리셨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는 세 가지 영역을 고려해야 한다. 직장 관계, 시민의 책무, 사회적 책무이다. (799.2)
 a. 직장 관계
 직업이 무엇이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행동 표준을 받들어야 한다. 지위가 무엇이든 그리스도인은 상관, 부하 동료를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대해야 한다. (799.3)
 (1) 일반 원칙
 ‘합당한 근로에 상응하는 합당한 보상이라는 원칙’에서는 그리스도인 고용주와 관리자에게 직원을 공정하게 대하라고 요구한다(눅 10:7; 고전 9:8-10; 약 5:4-6). 역사적으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격변은 노동자들의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가속화 됐다. 그리스도인 사업주라면 종업원의 급료와 이익을 결정할 때 탐욕을 앞세우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대가를 공정하게 지불해야 한다. ‘합당한 보상에 부응하는 합당한 근로라는 원칙’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인 종업원이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고(살전 4:11; 살후 3:10), 업주를 속이려는 유혹에 맞서라고 요구한다. 성실, 정직, 책임감, 독창성, 근면이 그리스도인의 특성이다. 성실한 그리스도인은 일에 합당한 보상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의 평등이라는 원칙’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상관이든 부하가 되었든 서로를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한 존재로 여기고 대하라고 요구한다(갈 3:28). 그리스도인 관리자는 직원들에게 형제 자매이다. 그는 남다른 특권을 찾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그리스도인 고용주나 관리자는 인종, 성별, 국적, 사회적 지위나 종교의 차이로 직원들을 다르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인 직원도 인종, 성별, 국적, 사회적 지위나 종교의 차이로 특별하게 대우 받으려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임금, 승진, 표창 채용 또는 해고, 좌천 등은 그리스도교적인 공정성과 동등성에 입각해야 한다. ‘진실성의 원칙’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중요하지만 특별히 직장 관계에서 적용될 수 있다. 절대적인 정직이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요구된다. 직원과 고객 또는 환자의 관계에서 진실성은 특별히 중요하다. 그와 동시에비밀보장을 분명하게 약속하지 않은 경우라도 기밀을 유지해야 한다. 직업윤리에서 요구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799.4)
 (2) 규범 모델
 성경은 그릇된 직업 관계의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며 이런 행위에 명백하게 반대한다. 라반과 야곱의 이야기에서는 상급자가 속임수를 쓸 뿐 아니라 이러한 착취에서 버티기 위해 하급자가 계략을 꾸미려는 유혹을 받는다(창 29-31장). (799.5)
 요셉은 수감 생활 중에도 모범적인 행동으로 동료 죄수들과 간수장에게 존경 받는다. 그 결과 그는 관리자가 되고 감옥에서 왕궁으로 옮겼고 신분이 급상승한다(창 39-41장). (799.6)
 빌레몬서에서 바울은 노예 소유주와 노예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사이라고 진술한다. 노예는 여전히 주인에게 순종해야 하지만 그 노예를 부릴 때는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 일터에서 빌레몬은 주인이지만 인간적 견지에서 둘은 서로 형제이며 교회에서 노예 오네시모는 그의 주인보다 연장자일 수도 있다. (8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