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성행위, 결혼의 의무 및 특권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이해하려면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 가정과 교회는 청소년을 강하고 고결하게 준비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796.4)
 (2) 규범 모델
 성경은 성적 비행이라는 불행한 사건 그리고 악을 이겨낸 순결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솔직하게 기록해 놓았다. 이들 이야기에서 인간의 부패한 모습 그리고 환경과 상황에 아랑곳 않고 경건하게 죄를 거부하는 견실함을 확인할 수 있다. 보디발의 아내와 그녀의 생활방식은 요셉과 충돌했다. 여기서는 간음과 음행이 무조건적으로 거절된다(창 39:6-23). 이 이야기에서는 부자이든, 착취하고 죽일 힘이 있는 권력자이든, 아무런 권리가 없는 노예이든 혼외정사가 누구에게든지 금지 사항이라고 가르친다. (796.5)
 기브아 주민 일부가 저지른 난폭한 집단 강간 사건에서는 인간이 성의 노예가 되어 성에 탐닉하면 얼마나 추잡해지는지를 보여 준다. 나라 전체가 그 희생자의 죽음에 대해 성읍에 보복을 가했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삿 19, 20장). (796.6)
 충동적이고 버릇없는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에게 저지른 근친상간적인 강간(삼하 13:1-20) 사건은 또다른 충격적인 가정 비화의 신호탄으로 나타난다. 암논은 압살롬에게 살해됐지만 다말은 수치와 치욕을 평생 지울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 가정에서는 성을 포함하여 모든 욕구와 충동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순결을 실천하고 배우며 그릇된 혼란 없이 바른 성 관념을 제시하고 논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부모와 자녀는 도움의 필요를 인식하고 성적인 잘못을 단호하게 다루어야 한다. 순결은 그리스도인 행동의 표준이다. 덧붙여 교회는 존엄성이라는 규범을 강하게 주장할 엄숙한 책임이 있다(고전 5:1, 2). (796.7)
 잠언 7장에서는 창녀에게 유혹받는 청년 이야기를 전한다. 창녀는 그의 마음을 끌기 위해 정서적인 만족감 그리고 둘의 사랑을 남김없이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하고 은밀한 장소를 약속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녀는 사실 성행위의 육체적인 측면만 제공할 뿐이다. 밤이 지나면 공허감, 수치, 자기 멸시만이 남아 있다. 음탕한 육체적 영역의 욕구만을 위해 인격의 나머지 영역을 희생해 버린 청년은 내면의 부조화와 자아상의 혼란 밖에 얻는 것이 없다. 쾌락만을 추구하면 친밀감에 대한 관점이 왜곡되고 정신과 신체가 괴리된다. (796.8)
 그와 반대로 솔로몬의 아가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발전한 연인 사이에서 느끼는 매력과 친밀감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는 더러운 욕망도 또 쾌락 자체만을 위한 이기적인 쾌락 추구도 엿볼 수 없다. 오히려 상대의 행복을 위한 자기희생으로 둘다 크게 기뻐한다. 아가서는 그리스도인 성생활의 표준을 제시한다. (797.1)
 (3) 행동 지침
 성경에는 성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지침이 많고 이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된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출애굽기 20:14; 22:19; 레위기 20:11, 12, 17-21; 신명기 22:23-30; 잠언 5:15-19; 7:25-27; 마태복음 5:27, 28, 31, 32; 19:3-9; 마가복음 10:2-9; 고린도전서 5:1, 2; 6:15-19; 갈라디아서 5:19-21; 에베소서 5:3-5, 25; 히브리서 13:4; 요한계시록 21:8(참조결혼 II. A-D). (797.2)
 b. 그리스도인과 독신
 그리스도인은 한동안 또는 줄곧 독신으로 지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성적 특성을 긍정적으로 발휘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삶을 즐길 수 있다. 덧붙여 그리스도교에서는 독신으로 지내면서도 성 정체성을 표현할수 있다고 단언한다. (797.3)
 결혼으로 채워줄 수 있는 인간의 여러 가지 필요는 결혼이라는 결합 없이도 상당 부분 해결이 가능하다. 대가족, 교회 공동체, 직장 동료, 다양한 사회 참여등으로 적절하게 정서적, 영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성 충동은 갖가지 방식으로 승화되거나 해소될 수 있다. 긴밀한 유대는 단지 성관계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개인과 인생의 사명 사이에도 그런 관계가 생길 수 있으며 그 사명은 종종 전적인 헌신으로 이어진다. 침례 요한 사도 바울, 예수님 자신이야말로 인간과 인생의 사명 사이의 긴밀한 유대를 보여 주는 최고의 예증이다. 고린도전서 7:25-35에서 바울은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797.4)
 개인의 선택이나 주어진 환경에 의해서 독신으로 지내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풍요롭고 생산적인 삶으로 부르신다고 확신할 수 있다. 바울이 독신으로 지내면서 엄청나게 헌신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자신의 운명에 완강하게 저항한 결과가 아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행 22:10) 하고 질문한 데서 비결을 찾을 수 있다. 그때부터 바울의 삶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갈 2:20). (797.5)
 오늘날 사회에서는 독신자가 결혼 이외의 성관계로 성 표현 욕구를 채우도록 압박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결혼 이외의 성관계를 금한다. 내면에 거하시는 성령을 힘입어 그 유혹에 저항할 수 있다. (797.6)
 독신자의 자위행위에 관해서는 간단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성경에는 자위에 대한 확실한 지침이 없지만 성행위는 전적으로 결혼한 사람 사이에 있어야할 것으로 진술하고 있다. 따라서 자위를 통한 성욕해소를 지지하는 이들은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자위행위를 반복하면 훔쳐보기, 성적 환상, 포르노에 빠질 수 있고 그러면 정신이 불순해지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이 행동은 강박적일 수도 있다. 수음에 빠진 결혼 배우자는 깊은 죄책감과 낮은 자아상을 지닌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기방종을 통제하지 못하여 결혼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건강에도 영향이 미친다. (797.7)
 c. 그리스도인과 동성애
 동성애(남녀 모두의 경우)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대응은 성경적인 원칙과 규범에 근거해야 한다.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동성애 지향과 행위를 분명하게 구분해야만 한다. 동성애 지향은 제어가 거의 불가능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동성애 행위는 본인의 선택이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전적인 순결이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이 이 문제를 다룰 때는, 동성애 성향을 지닌 이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며 유혹에 맞서 싸우는 그들에게 교회의 사랑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유념해야만 한다(참조 결혼 II. B). (797.8)
 (1) 일반 원칙
 ‘이성애의 원칙’에서는 그 근거를 창조에 둔다(창 2:24, 25). 아담과 하와는 “한 몸”으로 연합하여 서로를 보완하고 완성하도록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은 단순히 두 성별을 포함할 뿐 아니라 아담에게 결여된 여성성과 하와가 아담에게서 찾아야 할 남성성도 포함한다. 이 개념은 동성애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798.1)
 분명 동성애는 창조 시에 없었고 타락 이후에 발생했다. 이것은 창조된 인간 본성이 아니며 하나님 형상의 또 다른 차원도 아니다. 동성애 지향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에 죄가 영향을 끼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바울은 어떤 경우든 동성애는 “역리”(롬 1:26), 다시 말해 “순리를 거역하는 것”(한글킹제임스역)이라고 보았다. (7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