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한다는 뜻이다. 믿음의 고백과 공언은 합당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 점을 예수님은 두 건축자의 비유에서 보여 주신다(마 7:24-27). 말과 형식으로만 자신이 제자임을 주장한다고 행동까지 그렇게 선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 주장은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불안정하다. 그에 비해 반석은 영적, 신체적, 사회적, 개인적 영역에서 그 주장이 실생활로 나타나는 견실한 모습을 상징한다. (785.1)
 이 단원에서는 그와 같은 영적, 신체적, 사회적, 개인적 삶이라는 네 부분을 개략한다. 첫 두 부분은 본서의 다른 글에서 더 충분히 언급되어 있으므로 제한적으로만 다룬다. 첫 단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 또는 쟁점을 확인할 것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해당 주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적 표준에 근거해 살펴보겠다(일반 원칙, 성경적 규범 모델, 행동 지침). 더 깊은 분석은 억측으로 기울 위험이 있다. 실제적인 결정 과정에서는 그리스도인 각자가 성경적인 지침과 한도를 선택해야 한다. (785.2)
 A. 영적인 영역의 기준
 그리스도교 생활양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력한 영적인 영역, 즉 하나님과 맺는 관계이다(출 20:1-11). 인간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산다. 그분이 무소부재하기(시 139편)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이 인간과 친밀하게 관계 맺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슥 2:11). 타인 및 기타 피조물과 맺는 전인적인 관계는 하나님과 맺는 이 영적인 관계와 심오한 종교적 생활방식에서 비롯한다. (785.3)
 1. 그리스도교 세계관
 하나님의 존재 그리고 자연 질서 속의 그분의 지속적인 개입이 그리스도교 인생관을 형성한다. 그리스도교 세계관은 성경적 원칙과 규범에 기초한다. (785.4)
 a. 일반 원칙
 ‘하나님의 내재성이라는원칙’(창 1:1-31; 2:1-25; 렘 23:23)에서는 우주가 폐쇄계(자유주의)가 아니며 하나님이 우주에서 분리(이신론)되지도 않았음을 확언한다. 그와 반대로 자연계와 인간 역사는 그분의 개입에 대해 열려 있다(단 2장).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사를 통제하신다(참조 단 4:34-37; 신론 IV. D). ‘초월성이라는 원칙’(호 11:9; 시 89:6-8)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피조물 위에 계신다고 확언한다. 인간은 그분과 동등하지 않다는 암시가 여기에 담겨 있다. 그분은 초월적인 존재로서 인간을 사랑하시므로 그분을 받들고 그분의 지도를 신뢰하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마 6:25-34; 참조 신론 III. D). ‘대쟁투라는 원칙’(계 12:7-12; 창 3:15)에서는 선과 악 사이의 투쟁이라는 맥락속에 인간의 현실을 둔다. 여기에 인간은 불가피하게 개입되어 있다. 이 투쟁은 그리스도인 생활양식에 영향을 준다. 인간은 자신의 결정과 행동으로 충절을 증명하며, 하나님과 선 혹은 그분에게 도전하는 마귀와 악 둘 중 하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마 6:24). 대쟁투 개념은 무의미한 고통에 의미를, 절망과 죽음에 희망을 부여한다(참조 대쟁투 I-VI). (785.5)
 b. 규범 모델
 욥은 성경적 세계관에 해당하는 생활방식의 모범을 보인 최초의 인물로 나타난다. 그는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을 믿었기에(욥 9:1-12) 하나님을 저주하며 죽지 않았고(욥 2:9, 10) 하나님의 명백한 괴리에도 불구하고 헌신을 확언했다. 욥기의 첫 두 장에서는 이야기의 전말에 대해 빛을 던져주며 욥의 고난이 각 시대에 걸친 대쟁투의 축소판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이 점을 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힘이 생긴다(욥 13:15, 〈제임스왕역). 욥기의 마지막 몇 장에서는 성경적 세계관을 확증한다. (786.1)
 예수님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그분과 끊임없이 교제하는 삶에 대한 최고의 본보기이다. 그러나 그분의 경험은 욥의 경험을 뛰어넘는다. 욥의 고난은 죽음까지 이르지는 않았다(욥 2:6). 예수님의 경우는 달랐다(빌 2:6-8).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 땅의 동료들과 자기 아버지에게 버림받으면서도(마 27:46) 자기 생명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눅 23:46) 평화롭게 죽으셨다. 선지자, 제자들 및 그리스도교 시대 순교자들의 역사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성경적 세계관이 다른 세계관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궁극적 문제를 다룰 수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이런 까닭에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길을 그려 나가고 엄청난 난관을 견디면서도(시 23:4) 여전히 끝까지 충성 할 수 있다(계 2:10). (786.2)
 c. 행동 지침
 성경의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교 세계관이 반영된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몇 가지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시편 14:1-5; 19:1-14; 23:1-6; 24:1-10; 91:1-16; 104:1-30; 139:1-24; 마태복음 6:25-34; 사도행전 17:22-31. (786.3)
 2. 그리스도교의 경건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본성을 의식하고 자각하면 피동적인 두려움과 소원한 관계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리스도교에서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맺는 친밀한 관계이다. 경건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깊고 친밀하고 사회적인 활동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십계명의 첫 네 계명은 경건의 여러 원칙을 나타낸다. (786.4)
 a. 일반 원칙
 ‘일신론의 원칙’(출 20:1-3)에서는 오직 하나이시며 살아계신 참된 하나님의 존재를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분에게서 최종 권위를 찾는다. 이 동일한 원칙에서는 피조물과 사물의 형상 혹은 그 상징물이 살아계신 유일한 하나님에 비견되는 것을 금한다(4-6절). 하나님은 피조물에게서 오직 배타적이고 전적인 헌신만을 받아들이신다. 우상숭배와 간음은 하나님께 똑같이 혐오스럽다. ‘하나님에 대한 존중의 원칙’(7절)에서는 말이나 태도의 부주의와 천박함을 금한다. 맹세, 농담, 저주 혹은 하찮은 일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죄이다. ‘안식일 준수의 원칙’(8-11)에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임재로 다가오도록 초청한다. 안식일이란 창조주와 피조물이 잠깐 동안 신비한 방식으로나 격리된 장소에서가 아니라 가족들과 가정에서, 그리스도인 동료들과 교제하면서, 예배와 기도로 또 혼자서 찬양하면서 서로에게 열리는 시간이다. 이날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날이며(사 58:13) 그리스도인은 그분에 대한 헌신의 표시로 제칠일을 지킨다. (786.5)
 b. 규범 모델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교제하는 사건을 주로 다루고 있다. 에덴동산에서(창 3:8), 부조 시대에(창 5:22-24; 12:7, 8; 13:18), 이스라엘 국가 시대에(출 25:8; 사 57:15) 그리고 확실히 그리스도교 시대에도 하나님은 인간과 교제하고자 하셨고 허다한 남녀가 예배와 충절로 반응했다. 아벨 이후 수천 년간 하나님의 충실한 자녀들이 박해와 죽음을 견뎠다. 세 히브리 청년(단 3:1-30)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여 하나님께 구원받은 이들을 대표한다. 그들의 친구인 선지자 다니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단 6:1-28). (787.1)
 예수님의 생활방식은 참된 그리스도교 경건을 완벽하게 예시한다. 하나님에 대한 그분의 전적인 의존(요 6:38), 아버지께 예배하는 습관(막 1:21; 눅 4:16, 17), 기도 생활, 제7일 안식일에 대한 존중(마 12:9-12; 막 2:27) 그리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태도는(요 4:34)는 모두가 따라야 할 본보기이다. 이 모본은 성경적인 그리스도교 경건의 정신적 근거이며 성경적인 행동 규범을 묘사한다. (7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