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3 부 성소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 12. 진설병의 상 (나의 모든 자양분은 그리스도의 것임)
 어떤 목자도 산 말씀이 아닌 꼴을 하나님의 양떼에게 주지 말 것이다. 성경만이 “알곡”을 넣어 둔 성령의 창고이다. 여호와께서는 설교자와 그의 백성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사 55:2)고 경고한다. 부주의한, 어떤 설교자들은 “여호와를 버리며 ∙∙∙ . 갓에게 상을 베”푼다(사 65:11). 대중의 갈채를 갈망하여 그들은 귀를 즐겁게 하는 부드러운 것으로 만족한다(딤후 4:1~5). 굶주린 양들과 염소들이 먹을 수는 있지만 여전히 약하고 배고픈 상태가 된다. (158.5)
 새 언약의 포도즙
 이 “진설병은 향상 드리는 예물로서 여호와 앞에 늘 놓여 있었다”(부조와 선지자, 354; 레 24:8). 그것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하늘의 떡에 대한 그들의 아버지의 끊임없는 선물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이 제물은 피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인의 제물처럼 하나님께 존중히 여김을 얻지 못했다. (158.6)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진설병 가까이 마루 위에 “포도의 피”로 채워진 금병을 두셨다. 성소에서 떡을 먹고 있는 동안 제사장은 하나의 “영원한” 제물로서 이 포도즙을 뜰에 있는 제단 위에 부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화제”(레 23:9)로 드리는 전제가 되었고, 피의 상징이 진설병에 첨가되었다. (159.1)
 뭉개진 포도송이에서 짜내진 이 포도즙은, 겟세마네에서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사 63:1~3)을 때, 그리고 갈바리에서 당신의 피를 쏟았을 때 영원한 언약을 비준한(마 26:27, 28) “참 포도나무”(요 15:1)의 피를 증거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포도즙을,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고 설명하시고 진설병과 포도즙의 의미를 성만찬에다 초점을 맞추셨다. (159.2)
 세 행동이 이 의식을 완성했다. 곧 떡덩이들을 제사장들이 먹었고, 향이 금단 위에서 사르어졌고, 포도즙이 번제단 위에서 매일 바쳐지는 희생 제물 위에 전제로 부어졌다. 모든 “전제” 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겟세마네의 불 풀무불 속에서 땀을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눅 22:44)쏟으시고, 한편 골고다에서 당시의 육체의 병을 깨뜨리신 분께 대한 감사를 나타냈다. 보는 눈을 가진 자들은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슥 13:1)으로서의 물과 피로 된 두 줄기의 흐름을 관찰했다. 이 놀라운 진리를 우리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새기기 위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찢어진 육체와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즙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한 그 투쟁을 목격한다”(시대의 소망, 661). “랍비들도 떡을 먹는다는 것은 영적 의미로 율법을 연구하고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었으며 메시야가 오시면 이스라엘을 다 먹여 주실 것이라고 흔히 말하고 있었다”(시대의 소망, 386). (159.3)
 주님의 식탁으로 초청받은 그리스도인들
 지금의 그리스도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가장 겸손한 자녀는 왕같은 제사장이 된다(출 19:5, 6; 벧전 2:9; 계 1:6; 5:10). 그러므로 그는 왕의 식탁에서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다. 이 진리는 원수에게서 쫓겨다니던 다윗과 그의 굶주린 부하들의 이야기에 숨겨져 있다(삼상 21:4~6; 민 12:13, 4). 그들의 생애가 하나님께 올바른 것이었기 때문에 대제사장 아비아달은 “부정한 중에서는 먹을 수 없는 진설병”을 먹도록 그들에게 허락했다(Pesahim 7:4). (159.4)
 모든 제사장은 하나님의 떡을 개인적으로 먹어야 한다. 예수님에 관하여 듣거나 그분의 사랑스러움을 이따금 일별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분의 향기에 황홀해지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보좌로부터 나는 음성은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 34:8)라고 명령한다. 예수님은 이 원리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는 말씀으로 강조하셨다.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 곧 단순히 성찬식에서가 아니고 영혼의 주림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날마다 생명의 떡에 참여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을 행함으로 이루어질 것이다”(TBC, 1140). (159.5)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예수님의 교훈과 모본은 영원히 우리의 힘과 우리의 건강과 우리의 기쁨이 될 것이다.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요 6:34)라고 끊임없이 부르짖도록 하자. (159.6)
 요점을 되풀이해서 강조해 보자
 진설병에 관한 고찰을 마무리 지으면서 잠시 동안 성막 안에서 머뭇거려 보자. 그리고 찔림을 받은 하나님의 떡덩이들은 생기를 주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희망의 기별에 대한 예언임을 기억하자. 나무와 금으로 만들어진 상은, 떡을 반죽하는 자인 나사렛 여인의 도움으로 떡을 지키는 자이신 주님께서 떡집에서 만드신 생명의 떡의 지상 생애에 초점을 맞춘다. (159.7)
 유향과 포도즙과 함께 한 진설병의 삼중관으로 된 상은, 아버지께서 당신의 구속받은 가족을 위하여 예비하신 “길이가 여러 마일 된 순은으로 된”(초기문집, 19) 그분의 잔치 식탁을 베풀게 될, 시대 저편의 재창조의 땅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고무시킨다. 그들의 속박은 영원히 지나갔다. 그분의 속량 받은 왕같은 제사장들은, 그들이 장차 “내 상에서 먹고 마시”(눅 22:30)리라고 한 구속주의 약속의 성취를 즐기기 위하여 그분의 잔치 자리에 그분과 함께 앉을 것이다(계 3:21). (159.8)
 이 식탁에 예수님은 왕다운 주인으로 앉으신다. 이 멋진 기회에 신랑의 들러리는 왕의 신부에게 빛나는 순결의 예복을 줄 것이며, 그와 함께 혼인 잔치에 참예할 것인데(계 19:9) 그 때 그 위에 있는 깃발은 사랑이다(계 19:9; agape, LXX, 아 2:4). 특별히 친절한 동작으로 우리의 거룩한 주인은 당신의 가장 영광스런 자리에서 일어나서 “띠를 띠고 ∙∙∙ ” 그들의 영원한 종으로 “수종하리라”(눅 12:37). 그리고 그분은 “친구들이여, 먹고 마시라, 사랑하는 자들이여, 풍족하게 마시라”고 은혜롭게 초청하실 것이다. 영원하신 성령님, 우리를 도와주셔서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요 6:34)라고 한 이 기도로써 기쁨과 감사로 반응하게 해 주소서. 그러면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 나는 예수님이 그 노래를 부르시는 것을 듣기 원한다. (1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