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3 부 성소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 12. 진설병의 상 (나의 모든 자양분은 그리스도의 것임)
 진설병이 놓여진 금상(金床)은 촛대 맞은편에 놓였다(출 40:22~25). 받침 달린 금 포도즙 잔은 가까운 마루 위에 있었다. 친교와 환대를 나타내는 그림 같은 이 장면은 기쁨의 동산 이래로 지금껏 하나님이 제공해 주신 성찬을 나타냈다. 그 곳에서 그분은 아담과 하와 앞에 여러 가지 풍성한 과일과 곡식과 견과를 펼쳐 놓으시고 그들이 마음대로 먹게 하셨다. 그분은 단 한 가지만 금지하셨다. 그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않아야 했다(창 2:16, 17). 주님께서는 먹고 마시는 것을 당신의 자녀들로 더불어 자주 반복하신 당신의 언약의 토대로 삼으셨다. (150.1)
 우리의 조상은 그들 앞에 놓인 잔치를 외면하고 “귀신의 상”(고전 10:21)을 택하였다. 그들의 후손들 중 대부분이 “주님의 상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망을 차즘 잃어버리고 그분과의 언약의 친교를 벗어났다. (150.2)
 그러나 성령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 55:2)고 격려하신다. 하늘에서 태어난 아담의 자녀들은 각 시대를 통하여 그들의 창조주의 상을 사모했다(벧전 1:2, 3). 이 마지막 날에 신령한 주인께서는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눅 14:17)라고 그분의 손님들을 강권하신다. 그분은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약속하신다. (150.3)
 하나님의 언약의 식물이 성소에서 표상되었다
 이 사상을 당신의 백성들 앞에 계속 주지시키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떡과 포도즙으로 된 당신의 교제의 상을 당신의 성소의 궁전에 펴셨다. 그분은 모세에게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 정금으로 싸고”(출 25:23, 24)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멸할 수밖에 없는 인성이 전능하신 분의 사랑의 금으로 포옹당한, 성육신(成肉身)하신 분을 묘사하기 위하여 나무와 금이 연합되었다. (150.4)
 상의 높이는 놋제단의 불붙은 노(爐)와 금 속죄소의 높이와 같았다(출 27:5; 25:23, 10). 이것은 우리에게 뜰에서의 희생이 참 예배자들을 성소 안에서의 환대의 잔칫상으로, 그리고 지성소 안에 있는 은혜의 보좌로까지 이르게 한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지 않는가? (150.5)
 그것은 갈바리의 제단이 지상의 교제와 하늘의 영광의 기초가 된다고 선포한다. 주여, 당신의 영께서 이 표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우리를 가르치게 해 주소서. (151.1)
 상은 그리스도의 보좌를 상징한다
 상 위의 네 테는 “면류관”처럼 조각 되었다. 상의 다리들을 함께 연결하는 “상의 판(板)”의 낮은 가장자리도 그러했을 것이다(출 25:24, 25; 37:12). 상 사면의 한손폭(10cm 강)안쪽에 테두리가 붙어 있었다. 이것은 맨 위가 “면류관”처럼 조각되어, 표면에서 한것 손폭 높이로 설비된 “벽”처럼 솟아 있었다(출 25:25). 이것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 거기에 놓인 떡덩이들을 제 위치에 간직하기 위한 울타리, 역할을 한 것이었던가? 그 세 “면류관”들은 왕으로서의 제공자 주인의 위엄을 상징한다. (151.2)
 이 상은 성소에서 삼중관(三重冠)을 쓰신 구주를 나타냈다. 왕이 앉는 곳에는 어디에나 보좌가 있다. 주권자요, 제사장이요, 선지자로서 예수님은 당신의 하늘 성소의 잔치석에서 신령한 주인으로 주관(主管)하신다. 그분께서는 왕의 초청을 무례하게 거절한 손님들에 관한 비유에서 이 잔치를 마음에 두셨던가? (눅 14:15~24). 이 언약의 식사는 그분의 “계속적인” 봉사의 부분이다. (151.3)
 예루살렘 성전에서 티투스가 약탈하는 것을 지켜본 요세푸스는 이 기구의 부분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것은 또한 다리가 있었는데, 그 절반 아래에는 도리스 사람들이 그들의 침대에 붙인 것들과 닮은 완전한 다리들이다. 그러나 상쪽 윗부분들은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Antiauities, III:vi:6). 염소 뒷다리를 닮은 이 굽은 다리들은 프랑스의 지방에서, 영국의 안네 여왕 때와 미국의 일부 가구에 사용되고 있다. 이 표상화된 짐승 모양은 그의 몸에 생명의 떡을 지니고 있는 어린 양을 시사하였는가? 그리스도는 당신의 친구들을 위한 이 사랑의 잔치의 소문을 퍼뜨리는 왕되신 주인일 뿐 아니라 상에 놓인 떡과 포도즙이시다. (151.4)
 상은 왕의 선택대로 어디든지 이동되었다
 그 네 개의 금고리를 상 위의 귀퉁이 아래 짧은 측면들에 달았다. 금으로 싼 막대기들은 이 고리에 꿰어서 들고 운반하기 쉽게 했다(출 25:26~28). 이 설비는 상을 옮겼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 이동은 하나님의 자비와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분께서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신 곳은 어디든지 그들을 위한 당신의 음식이 마련되었다. 시편 기자는 이 사실을 기쁨으로 깨달았다. “주께서 ∙∙∙ 내게 상을 베푸시고 ∙∙∙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151.5)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 북편으로 ∙∙∙ 상을 놓”으라고 명령하셨다(출 40:22). 이 위치는 중요한 표상이다. 창조 전에 “북쪽”은 루스벨의 탐욕의 장소를 나타냈다(사 14:13). 여러 세기를 통하여 사단의 지도를 받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은 북쪽에서부터 약속의 땅에 침입했다(렘 1:13~15; 4:6; 6:1; 46:20; 47:2; 50:3). 다윗이 하나님의 “상”“내 원수의 목전에서” 자기를 위하여 베풀어졌다고 했을 때 그의 관찰 속에 이 위치의 의미가 지각되었던가? (시 23:5) (151.6)
 성막 북쪽에서 이스라엘의 적대자들과 대결하고 있는 이 언약의 음식은, 당신의 백성들을 방어하고 모든 비상 사태에서 그들 필요를 채워 줄 그분의 능력을 믿는 우리 구주의 확신을 묘사한다. (152.1)
 웹스터는 “주(主)”라는 우리의 말이 “떡의 보관자”라는 의미를 가진 색슨 어의 어근에서 유래되었으며 “숙녀”“떡을 반죽하는 자”를 시사하는 어간(語幹)에서 온 것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우리 주님은 얼마나 주의 깊이 생명의 떡을 보존하셨는가! 그분은 그것을 얼마나 관대하게 각 시대를 통하여 굶주린 영혼들에게 공급하셨던가! “때가 차매”(갈 4:4) 생명의 떡은, “떡을 반죽하는 자” 나사렛의 숙녀의 “떡집”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 그분의 출생에서부터 그분의 원수들은 공격했고, 이방들은 분노했고(시 2:1, 3), 그분의 일생동안 그들의 증오심을 그분에게 쏟아 놓았다. 마침내 “한 알의 밀”은 자신이 죽임을 당하도록 수락했고(요 12:24) 굶주린 세상을 위한 생명의 떡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 주기 위하여 매장되었다. 우리 주님은 떡의 보관자이실 뿐만 아니라 떡이시다. (152.2)
 떡은 상 위에 진설되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제사장에게 떡을 그분의 상 위에 “정돈”하도록 요구하셨다. 그것은 마치 전쟁을 위하여 대오를 갖추거나 정렬하듯이 준비되었다. 신구약에 다 같이(prostheosis, 출 25:30; 레 24:5, 6; 마 12:4; 히 9:2) 그 말은 진설병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진열되었지 어떤 사후(事後)고안에 의해 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롬 8:28, 9:11) 교인들을 묘사하기 위하여 이 말을 사용했다. 진설병처럼 교회는 주님의 잘 정리된 계획을 나타내고 구원의 구경 거리로서 우주에 보여져야 한다(고전 4:9) (152.3)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넣은 받침 달린 금잔들이 상 가까이 마루 위에 놓였다(출 25:29). 이 그릇들에는 놋단 위 번제물에 붓는 제물이 들어 있었다. 진설병은 “소제”였기 때문에 율법은 이것에 “전제”가 수반되기를 요구했다(민 15:1~16). (152.4)
 떡과 포도즙이 언제나 성소에 바쳐 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의 지원이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위로를 받았다. 구주께서는 “산 떡”“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고 설명하셨다(요 6:48~58). 진설병(레 24:5~9)은 그분의 생활 양식을 나타냈다. “생명의 떡”으로서 그것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흡수된다. 사단은 맛좋은 것들로 유혹한다. 그러나 거기에 동참하는 자들은 먹고 죽는다. 자아는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다. 그러나 아무도 지금껏 이 병든 식탁에서 생기를 얻은 적은 없다. (1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