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상적인 봉사에서 자기가 죄인임을 깨달았던 사람은 속죄제물로 어린양 한 마리를 끌고 와야만 했다. 이 속죄제물이 없이는 제사장은 결코 그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가 없었다(
레 4:27~29). 그 전반적인 봉사는 매우 초보적인 교훈에 불과했는데, 그 구원의 길은 너무나 단순하게 이루어졌으므로 누구라도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음을 깨닫고 우리의
“어린양”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죄를 고백할 때, 그의 이름으로 그 죄들은 용서함을 받으며, 그 다음 그분께서는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제사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하시는 것이다. 그는 그의 피 공로로 탄원하시며, 죄로 더러워진 우리의 생애를 그의 흠 없는 의의 옷으로 덮어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엡 1:6) 인정된 자로 아버지 앞에 서게 된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그분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대하여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 생명을 버렸기 때문”(
요 10:17)이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다. 자신의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도 그 행위로 말미암아 증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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