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실에 비추어, 바로 지금이
“바리새인들”과 오늘날 교회의 다른 율법주의자들이 이웃에 대한 아가페(사랑)를 그 복음에 대한
“값싼” 왜곡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을 중지해야 마땅한 그 때이다. 예수의 요구는 율법주의적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명하고 규정하는 적은 금욕들과 예식들 보다 무한히 더 많다. 그리고 불행히도, 바로 저 금욕들과 예식들은 더욱 더 자신의 성취에 대한 교만으로 인도할 수 있다. 복음의 요구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그의 모든 존재의 총체적인 굴복이다. 루터가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그는 그의 경건한 자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남겨놓고 떠났다”고 본회퍼는 술회하였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심지어 그것조차도 그에게서 취해감을 당했다”(Bonhoeffer, 51).
(1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