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요한은∙∙∙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계 1:9)니. 요한이 무슨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예수의 증거”란 말을 사용했을까? 그리고, 요한이 이 장에서 예수에 대해 쓴 다른 말들은 또 무슨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것일가? 충성스러운 증인. 5절에서는 예수님을 “충성된 증인”이라 하였다. 이 말은 우리가 그를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혹 자동차 판매인이나 건축업자나 상원의원이나 심지어는 배우자까지도 신뢰하지 못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만은 신뢰할 수 있다. (79.1)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그가 사망의 열쇠를 가지고 계심을 입증해 보이셨다.
(79.2)
 법정에서는 증인이 “증언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빌라도의 법정에서 심문을 당하실 때 빌라도에게 말씀하시기를, 진리에 대해 증거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노라고 하셨다(요 18:37). 예수님의 충실한 증언은 우리에 관한 진리(진실)를 우리에게 증언함으로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분은

 (a) 우리 자신들에 대해, 그리고

 (b) 우리들의 연약성과 악덕과 인간성의 파괴에 대해 진리(진실)를 증언하고 있다. 그분은

 (c) 사단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사단의 적대적 관계에 대해 진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분은 또

 (d)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을 증언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위의 사실을 밝혀 줄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일차적으로 예수님 자신에 관한 진실을 나타내주는 계시이다. (80.1)
 “예수의 증거”
 예수님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요한에게 자신을 증거하였다(10절). 우리는 여기서 예언의 선물이 성령의 선물의 하나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고전 12:10). 그런데, 요한계시록 19장 10절에서는 “예수의 증거”“예언의 신”(대언의 영)이라 하였다. 요한계시록 12장 17절을 다룰 때 이 정의에 대해 좀더 상세한 검토를 하게될 것이다. (80.2)
 로마 제국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요한을 밧모 섬으로 유배시켰다(계 1:9).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경 말씀이다(호 1:1, 욜 1:1, 딤후 3:15, 16). 요한의 시대에는 신약 성경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는 주로 구약 성경을 뜻했다. 요한계시록에 수백 절의 구약 성경 구절이 인용되고 있는 사실은 요한이 얼마나 구약 성경을 사랑했는지를 웅변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구약 성경의 예언을 믿었으며 우상 숭배와 다른 죄들을 금지한 십계명을 존중했다. 그는 구약 성경을 존중했기 때문에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우상에 대한 숭배를 분명하게 거절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밧모 섬으로 유배된 것이다. (80.3)
 요한은 또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그 곳에 유배되었다. 예수의 증거는 곧 예언의 신(대언의 영)임을 앞에서 보았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영)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벧전 1:10-12). 신약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언의 신의 선물을 받았다. 마태, 마가, 누가. 바울, 베드로, 그리고 요한 등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복음서들과 사도행전과 편지서들을 썼다. “예수의 증거”가 예수에 관한 진리(진실)를 드러내는, 살아서자라나는 저작물을 산출해 놓은 것이다. (80.4)
 요한이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 섬에 유배되었다 함은 그가, 자신을 포함한 신약의 기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님에 대해 기술한 진실을 믿고 가르쳤기 때문이었다는 말이다. (80.5)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
 5절에는 예수님을 일컬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라 하였다. 이 말은 그가 죽은 자 중에 제일 먼저 부활한 분이란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막 5:21~43)과 나인 성 과부의 아들(눅 7:11~17)과 베다니의 나사로(요 11)를 죽음에서 살리셨다. 그러나, 그의 부활이 없이는 아무도 부활할 수 없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만이 다시 살아날 수가 있다(고전 15:22). (80.6)
 성경 시대에는 한 가정의 장자에게 장자의 상속권이 인정되었다(창43:33; 신 21:17). 장자의 특권이 대단히 현저했기 때문에 장자란 말 자체가 “현저한”, “가장 중요한”, “독특한” 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리하여, 욥기 18장 13절에는 심지어 가장 위험한 질병을 말할 때도 사망의 “장자”란 표현을 썼다. (80.7)
 예수님은 일찌기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 중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신 것이다. (80.8)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5절은 실로 간명하게 우리의 심령에 호소한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80.9)
 유배를 당한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할 때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 것인가. 이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잘된 것인가.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요 14:23). (81.1)
 “내가너를사랑한다”는 이 세 황금 음절은 단지 꿈에 젖은 애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도 이 말을 사용해야 한다· 온 가족들에게 이 말이 필요하다· 필자의 모친께서는 우리 4 형제가 자라날 때 거의 매 저녁마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 때 우리의 뺨에 입을 맞추며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필자가 40세가 넘어 어머님을 방문했을 때도 어머님은여섯살어린나이의 필자에게 하시던 그 사랑의 표시를 반복하셨다. 필자는 그 나이가 되서야 비로소 어머님이 오랜 세월에 걸쳐 행해 오신 그 일이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81.2)
 “그대는 요즘 아이들을 포옹해 주었는가? ” (81.3)
 “그리고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5절)하셨다.
 사랑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무엇을 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그 고된 삶을 살기 위하여 하늘을 떠나셨고, 온갖 심한 비난을 한마디 변명도 없이 다 당하시며 십자가의 치욕과 고통의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의 죄 값을 치르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요 15:13)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81.4)
 우리 집 아이가 생후 15개월 만에 병원에 입원하여 4주간이나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필자와 내자는 하나님께서 우리 보다도 이 아이들을 더욱 사랑하고 계심을 기억하며 위로를 얻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아이를 위해 죽으셨다. 우리는 이 아이를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