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존 웨슬리는 은사주의자(charismatic)는 아니었다. 그와 그 당시의 청교도들은 퀘이커 교도들이 너무 감성적이며 그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부르는 것의 나타남을 자제하기 위해 성경을 충분히 의지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19세기에는 많은 전도자들과 교회들이 웨슬리의 생각에 동의했다 여기에는 찰스 피니(Charles Finney), R. A. 토리(R. A. Torrey), 그리고
‘고상한 삶’을 사는 전도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성결 운동이 미국 감리교회와 형제회 가운데서 번성했고, 회중교회, 침례교회, 독일어를 말하는 복음주의자들, 연합형제교회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들에게는 감성적 황홀경이 아닌 순종과 사랑이 성령의 임재에 대한 참된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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