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는 그 시초부터 은사 공동체였다. 예수께서는 열두 사도를 부르심으로 새로운 교회의 핵이 되게 하시면서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눅 9:1). 그분께서는 그들의 현장 경험을 위해 둘씩 보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마 10:8)고 하셨다. 성령의 능력으로 강화된 사도교회(요 20:22; 행 2:1-4; 4:31)는 역동적이고 성령으로 충만하였으므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카리스마타(영적 은사)를 통해 주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사명(마 28:19-20)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초기교회는 은사의 공동체였다. (731.1)
 영적 은사에 대해 그리스도교 내에서도 다양한 태도를 가진 그룹들이 있었으나, 수 세기에 걸쳐 영적 은사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었다. 이 역사적 개관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사도교회에서 활발했던 이 은사들을 되살리려는 초기의 시도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영적 은사에 대한 몇몇 그리스도교 교단의 현재 태도에 대해 고찰 할 것이다. (731.2)
 A. 몬타누스주의
 2세기 후반에 로마제국에 속한 소아시아 지방의 브루기아(Phrygia)에 한 작은 그리스도교 그룹이 성령의 은사를 회복하는 데 관심의 초점을 모았다. 172년에 이교도에서 최근에 개종한 몬타누스(Montanus)는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얼마 안 있어 프리스킬라(Priscilla)와 막시밀라(Maximilla)라는 두 여인이 그를 따르게 되었는데, 그녀들도 이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그들의 운동을 “새로운 예언”(New Prophecy)이라고 불렀으나, 이에 반대흐느 사람들은 “브루기아의 이단”으로 규정한다. 4세기에 이르러 이 운동은 그 창설자의 이름을 따서 “몬타누스주의”(Montanism)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교회가 시도한 첫 번째 신오순절 운동이었다. (731.3)
 1. 영적 은사에 대한 견해
 몬타누스주의자들은 사도 시대에 제한 없이 주어졌던 영적 은사는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이에 대한 증거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욜 2:28)고 하신 약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프리스킬라막시밀라와 같은 몬타누스를 따르는 자들의 경험 때문에 당연히 예언의 은사가 가장 많이 강조되었다. (731.4)
 몬타누스주의는 영적 쇄신을 위한 불타는 열망에서 자라났다. 초기 지지자들의 목표는 교회를 초기의 단순함으로 회복시키고, 카리스마타(영적 은사)를 다시 경험하며, 파라클레토스 또는 성령의 임재와 인도를 확신하는 것이었다. 몬타누스주의는 그 당시 교회안으로 스며들어온 타락에 대항하기 위한 반작용적인 운동으로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운동은 또한영지주의와 이교주의, 규율의 해이함 계급주의의 발생 그리고 교회 생활에서 영적 은사의 유효성을 불신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것이기도 했다. (731.5)
 2. “새로운 예언”에 대한 역사의 평가
 어떤 그룹이 종교적 실행의 규칙에서 떠날 때 그 그룹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들이 떠돌고, 종종 이 이야기들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몬타누스주의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기에는 몬타누스주의 자들의 모임에 그리스도와 파라클레토스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집단 흥분과 함께 무아지경을 경험하고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보고도 있었다. (732.1)
 A.H. 뉴먼(A. H. Newman, 1:204)은 굉신주의가 초기 몬타누스주의의 성장에 자연스러운 토양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브루기아 사람들은 이교 여신인 퀴벨레(Cybele)를 지나치게 숭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난잡하고 부도덕한 행위뿐 아니라 황홀경에서 이상을 본다거나, 광란의 흥분에 빠지거나, 혹은 스스로 수족을 절단하여 불구가 되는 일을 자행했다. (732.2)
 비록 예언의 은사의 존재를 인정하고, 몬타누스주의자들을 이해하자는 요청이 기성교회 안에서 있기도 했지만, 교회의 권위자들은 이와 같은 모험을 거절하였고, 몬타누스의 추종자들을 이단으로 몰아세웠다. (732.3)
 최근의 학자들은 좀 더 친절하게 말한다. 그들은 몬타누스주의자들이 단지 “새로운 예언”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만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을 지적인 이단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몬타누스주의의 뿌리는 이단이나 전투적인 계시 신앙에 있지 않고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합당한 그리스도인 훈련을 받도록 말씀하실 수 있다는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Fox 409). (732.4)
 N. 본웨치(N. Bonwetsch, 408)는 “새로운 예언”이 어떤 새로운 진리를 드러낸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새로운 예언”의 주장은 교회의 전통을 지지하고, 죽은 자의 부활을 옹호하며, 풍부한 종말론을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732.5)
 D. 라이트(D. Wright, 23, 28, 29)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1)몬타누스주의를 정죄하는 것은 비정통이라기보다는 비정상적인 운동에서 흠을 발견하려는 ‘가톨릭 비평가들’의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이었고,

   (2)“새로운 예언”에 대한 광범위한 정죄와 파문의 정당한 이유가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3) “그 운동을 거절하는 것은 몬타누스주의 대신 가톨릭주의를 발전시키려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4)“몬타누스주의는 이단이라기보다는 지나친 광신주의였다고 하는 것이 옳다” (732.6)
 3. 영적 은사에 대한 테르툴리아누스의 변증
 라틴 교회의 교부였던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AD 160-230년경)가 영적 은사에 대한 이 가르침을 받아들였을 때, 몬타누스주의는 든든한 변호자를 얻은 것이었다. R. 바우스(R. Baus 203)에 따르면, 테르툴리아누스는 몬타누스주의를 이 운동의 처음 세 선지자들과 브루기아(Phrygian) 배경으로부터 분리시켰다. 테르툴리아누스“ 그리스도교인들과 일반인들이 파라클레토스의 사역을 통하여 성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몬타누스주의의 사명이라고 보았다. (732.7)
 몬타누스주의를 이단으로 보는 사람들은 “새로운 예언”에는 이상한 황홀경이 수반되어 그 영에 사로 잡힌 사람은 광란에 빠지고 횡설수설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지경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라이트(Wright, 21-23)는 지적하기를, 거기에는 글롯솔랄리아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으며, 황홀경의 경험에 대해 논한 바 있는 테르툴리아누스글롯솔랄리아에 대한 어떤 암시나 대중적 개념의 어떤 황홀경도 포함시키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테르툴리아누스가 묘사했듯이 황홀경은 인간의 이성이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에 들어가는 때인 잠자는 동안에 정상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꿈과 이상으로 나타났다. (732.8)
 테르툴리아누스에게 있어서 카리스마타의 나타남은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활동하신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자신들의 성직 지배권을 세우는 데 몰두하던 교회 권세자들은 카리스마타의 나타남을 보면서 “몬타누스주의의 진정한 취지는 지나친 과장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목표를 왜곡하고, 교회의 전통을 와전시키는 대표적인 경우라고 생각했다.”(Bae, 204). 이리하여 몬타누스주의에 이단이라는 딱지가 붙게 된 것이다. (733.1)
 4. 존 웨슬리와 몬타누스주의
 그러나 그때로부터 15세기 후에 존 웨슬리는 몬타누스를 정죄했던 교회 권세자들을 가리켜, 언제나 수적으로 우세하고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2세기에살았던 가장 경건한 사람들”의 진정한 믿음을 비웃었던 “부유하고 고매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평가했다. 웨슬리는 몬타누스를 거룩한 율법에 대한 순종 및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였으나, 다른 무엇보다도 성령으로 충만할 때 흘러나오는 능력의 나타남에 더 큰 강조점을 둔 것으로 보았다. (7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