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교리·신학 핸드북 제17장 영적 은사(조지 E. 라이스, 윤재성) XI.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엘렌 화잇이 지닌 역할과 기능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그 시초부터 예언의 은사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을 받아들였다(참조 XIII. E). 기름을 바르는 일과 기도를 통해 육신을 치료하는 기적은 교회가 존재하던 아주 초창기부터 있어 왔다. 교회 역사를 통하여 가르침의 은사와 행정의 은사는 엘렌 화잇의 사역에서뿐 아니라 그녀의 남편 제임스와 같은 두드러진 인물들의 사역에도 분명히 드러났다. 다른 모든 은사들도 어떤 면으로든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726.1)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엘렌 화잇의 경험 속에 나타난 예언의 은사 및 그녀의 생애와 사역에 나타난 이 은사의 열매인데, 그 이유는 이 은사가 교회내에서 다른 모든 영적 은사의 경험보다 훨씬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726.2)
 A. 엘렌 G. 화잇
 엘렌과 그녀의 쌍둥이 자매 엘리자베스는 1827년 11월 26일에 태어났다. 8남매 중 이들 둘은 부모인 로버트(Robert)와 유니스(Eunice) 하몬(Harmon)과 함께 고햄(Gorham)의 작은 농장에서 살았다. 그 쌍둥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하몬 가족은 동쪽으로 12마일 떨어진 포틀랜드로 이사했다. 아홉 살 때 엘렌은 급우가 던진 돌에 얼굴을 맞아 심각한 상처를 입고 고통당해야 했다. 3주 동안이나 의식을 잃고 있어서 살아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엘렌은 고통스럽지만 서서히 회복되어갔다. 그녀의 공식적인 교육은 끝나고 말았다. (726.3)
 1840년에 열두 살이 된 엘렌은 감리교 야영회에 참석하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쳤다. 2년 후 그녀는 메인(Maine) 주 포틀랜드의 캐스코 베이(Casco Bay)에서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았다. 1840년에서 1842년 사이에 하몬 가족은 재림운동 집회에 참석하여 임박한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윌리엄 밀러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께서 재림하시지 않자, 엘렌과 다른 재림신자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그들 앞에 다가오는 어려운 날들을 견딜 수 있도록 빛과 인도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726.4)
 이런 모임을 갖던 1844년 12월 어느 날, 열일곱 살의 엘렌은 다른 네 명의 여인들과 함께 성경 연구와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녀에게 임하시고 첫 번째 이상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70년 동안 약 2, 000번의 이상을 받았다. 이상이 주어진 후에 그녀는 그 이상에 반응하여 친구들과 친척들을 찾아다니고 동료 신자들에게 자신에게 계시된 첫 이상과 그 이후의 계시들을 나누었다. 1846년 8월에 엘렌은 재림교회의 젊은 설교자인 제임스 화잇과 결혼하였다. 결혼한 지 몇 주 후부터 화잇 부부는 조셉 베이츠가 쓴 제칠일 안식일의 기원에 관해 가르치는 48쪽짜리 팸플릿으로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성경적 근거에 확신을 가지고 그들은 성경의 안식일을 받아들였다. 6개월 후인 1847년 4월 3일에 엘렌은 하늘 성소에 있는 하나님의 율법 중 넷째 계명 주위에 빛이 비치는 이상을 보았다. (726.5)
 화잇 부부에게 태어난 네 명의 아들 헨리, 에드슨, 윌리엄, 존 가운데 어른으로 장성한 아들들은 에드슨과 윌리엄뿐이었다. (726.6)
 성경 연구와 예언의 은사를 통해 주어진 인도를 통해 성장하고 번성한 재림신자들은 1844년의 대실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전에 밀러주의자였던 이 작은 무리는 1860년에 총회를 열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이름을 채택하게 되었다. 1881년 8월 6일에 제임스 화잇이 미시간 주 배틀크리크에서 사망하였다. 그 후 34년 동안이나 엘렌은 그녀의 사역을 미국과 유럽과 호주에서 계속해 나갔다. 그녀는 1915년 7월 16일에 향년 87세의 일기로 캘리포니아 주 세인트 헬레나의 엘름스헤이븐(Elmshaven) 자택에서 사망했다. (726.7)
 B. 엘렌 화잇의 자기 이해
 엘렌 화잇은 자신의 사역을 되돌아보면서, “선지자”(prophet)라는 칭호가 그녀의 사역을 나타내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녀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그분의 “기별자”(messenger)라는 칭호를 선호했다. 비록 다른 이들은 종종 그녀를 가리켜 선지자로 칭했으나 그녀는 자신의 사역이 그 용어가 의미하는 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개인의 명예와 보상을 추구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하여, 그녀는 스스로 대담하게 선지자라는 칭호를 내세우면서 그리스도의 사업에 비난거리가 되는 이들에 대해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가려 뽑은 기별 제3권, 74). (727.1)
 엘렌 화잇은 예언의 은사를 받음으로써, 비정경 문서 선지자로서의 자신의 사역에 주어진 권위를 인식하였다. 수많은 경우에 그녀는 자신의 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음성과 펜으로 말씀을 전하였다. 그녀는 이 권위가 자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전하라고 주신 기별에 있다는 것을 늘 인식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끼게 하였다(엘렌 화잇의 글과 거룩한 정경의 관계에 대해서는 VIII. B를 참조하라). (727.2)
 그녀는 하나님을 위한 대변인으로서, 장차 전 세계를 두를 교회 사업 개발을 위한 조언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시키는 상담자로서의 역할을 맡았다고 보았다. 그녀는 비록 정식 신학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글은 다른 방법으로는 놓치기 쉬운 성경 구절의 의미를 심오한 신학적 통찰로써 드러냈다. 이것은 특별히 다섯 권으로된 각 시대의 대쟁투 총서에서 그러한데, 거기에는 창조로부터 죄의 최종적 파멸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기록을 다루고 있다. 그 다섯 권의 책은〈부조와 선지자〉, 〈선지자와왕〉, 〈시대의 소망〉, 〈사도행적〉, 〈각 시대의 대쟁투〉이다. (727.3)
 화잇 여사는 성령의 지도를 통한 하나님의 기별자로서의 역할 안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이끌어가야 할 책임을 느꼈다.

   (1) 교회의 조직

   (2)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선교의 전 세계적인 안목

   (3)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해외 선교 전략 수립

   (4) 병원, 보건소, 의료 교육 기관의 설립

   (5) 교회와 지역사회를 위한 건강과 절제 프로그램 운영

   (6) 초등교육으로부터 대학원에 이르는 교육 시스템 구상

   (7) 출판과 인쇄 사업을 통해 그리스도인 문서를 사람들의 손에 전달하는 체계를 세우는 것. (727.4)
 C.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와 엘렌 화잇의 역할
 엘렌 화잇에게 주어진 예언의 은사에 대한 인식과 지원이 점차 증대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가장 초기의 문서 기록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창설자이며 초창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조셉 베이츠의 펜으로부터 나왔다. 베이츠는 엘렌 화잇이 받은 여러 이상의 내용과관련하여 그녀로부터 들을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가졌었다. 그는 자신이 들은 것중에 성경과 반대되는 것은 발견할 수 없었지만 그녀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말에 놀랐다. 한동안 그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그녀가 어린 시절에 당한 부상의 결과라는 것 이상으로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727.5)
 1847년에 베이츠는 엘렌 화잇이 이상을 받는 장면을 보고 그녀의 본 것을 보고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과 얘기한 후, 자신이 직접 그녀의 이상 받는 장면을 몇 차례 목도한 후, 그리고 엘렌과 더불어 대화한 후에, 자신이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보고 들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제 확신 있게 내 자신에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업이 1844년 10월에 닫혀진 이래 하나님께서 당신의 ‘흩어지고 찢기고 상한 백성’을 위해 일하고 계시며, 위로하시고 강건케 하신다고 믿는다.” 베이츠의 초기 진술 이후에 행정자들과 목회자들과 교사들은 베이츠의 생각을 반복해서 인쇄물에 실었다. (727.6)
 교회 총회에서 나온 첫 번째 출판된 진술은 1855년 12월 4일에 교회 소식지인 〈리뷰 앤드 헤럴드(Review and Herald) 지에 나타났다. 조셉 베이츠, J. H. 왜거너, Μ. E. 코넬이 교회에 주어진 “은사”에 관하여 “존경하는 성도들에게” 총회를 대신하여 발표할 진술서를 준비하도록 경영위원회에서 임명되었다. “1855년 11월 16일 미시간주 배틀크리크에 모인 총회에 드리는 보고”라는 서명된 문서에서 베이츠와 왜거너와 코넬은 모든 회중을 대신하여 고백하기를, 교회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는 재림성도들에게 주신 영적 은사를 충분히 인식하거나 지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상”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있었다.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교회에 두신 영적 은사들, 특히 예언의 은사에 대해 그분께 감사를 돌리도록 요청하였다. 이에 더하여 모두는 그 “이상”으로부터 주어진바 기록된 것을 읽고 자신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주신 권면에 헌신하도록 권고하였다. (728.1)
 1867년부터 영적인 은사, 특히 예언의 은사에 대한 신뢰가 세계 총회의 경영위원회 안건으로 결의됨으로써 재확인되었다. 1867년 결의문은 다음과 같다. (728.2)
 “결의: 우리는 복음시대 동안에 주어진 영적 은사들의 지속성에 대한 우리의 계속적인 믿음을 표현하며, 예언의 은사와 셋째 천사 기별의 선포를 밀접히 연결시키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RH, 1867년 5월 28일). (728.3)
 1990년 7월에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개최된 55차 대총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7월 13일에 예언의 은사에 관한 결의문이 대표자들에게 소개되었고 투표로 채택되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을 뿐 아니라, 마지막 시대에 엘렌 G. 화잇의 생애와 사역을 통해 주어진 예언의 은사의 나타남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녀의 영감 받은 글들은 전 세계 교회를 통해 헤아릴 수 없는 방법으로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AR 1990년 7월 26일-8월 2일). (728.4)